무궁화는 피었는데
모처럼 비가 개이고
녹음하러 방송국에 갔다가
오금을 펴기 위해
한라수목원엘 들렀다.
아직 온실과 난원은 공사중인데
꽃을 피운 나무들이 드물다.
월요일 구좌읍 일주도로변에 그렇게 피어
마음을 들뜨게 하던 황근은 아직도 감감하고
연못에 수련도 아직 이른데,
돌아 나오는 곳에서 만난
토종 무궁화가 마음 놓고 피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제헌절
기념으로 찍어다 밤에야 올린다.
♧ 무궁화 - 박두진
빛의 나라 아침 햇살 꽃으로 핀다.
머나먼 겨레얼의 굽이쳐 온 정기,
밝아라 그 안의 빛살
은은하고 우아한,
하늘 땅이 이 강산에 꽃으로 핀다.
초록 바다 아침 파도 물보라에 젖는다.
동해, 서해, 남해 설램 오대양에 뻗치는,
겨레 우리 넋의 파도 끓는 뜨거움,
바다여 그 겨레 마음 꽃으로 핀다.
무궁화, 무궁화,
낮의 해와 밤의 달
빛의 나라 꿈의 나라 별의 나라
영원한 겨레 우리 꿈의 성좌 끝없는 황홀,
타는 안에 불멸의 넋 꽃으로 핀다.
그 해와 달
별을 걸어 맹세하는 우리들의 사랑,
목숨보다 더 값진 우리들의 자유,
민주, 자주, 균등, 평화의 겨레 인류 꿈,
꽃이여 불멸의 넋 죽지 않는다.
♧ 무궁화 - 양수창(梁達)
이른 아침부터 신경통(神經痛)골라 가며
머리 정수리에 금침(金針)을 꽂으신 어머니,
수시로 쿡쿡 쑤시는 등허리는에는
굵은 대침(大針)꽂아 놓고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으신다.
나를 출산(出産)하던 날에도
밭에 나아가 온종일 김매기하며
진통(陳痛)을 온몸으로 견디시더니
집 마루에 포대(포대) 깔아 놓고
혼자 구푸려 아들 낳고
스스로 태를 가르신 어머니,
지금은 집 울타리로 무궁화를 심어
송이송이 피워 놓고
어머니는 신경통을 깊이 앓으신다.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김종제
무궁화꽃 피었습니다
저 꽃이 피어 있을 때까지
나도 이 겨울에는 꼼짝하지 않고
술래가 되어 세상을 지켜보고 있으리
백의(白衣)의 단심(丹心)의
희고 붉은 무궁화꽃으로 피어 있으리
뒤돌아본 눈빛에 걸려 죽은 것들
이어서 피고 따라서 피고
언제나 예대로 새로운 꽃으로 피고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으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한 겨울 얼음 속에서도 피었습니다
다른 꽃들 추위에 꽃대궁 바들바들 떨며
꽃이파리 바닥에 다 떨어뜨렸는데도
무궁화꽃은 어쩌자고 술래가 되어
저렇게 순정하게 피어 있는가요
저 꽃 필려고 수수만년
동해물과 백두산을 휘돌아왔으니
너희 무궁화꽃 무궁무진 영원토록 살아라
채찍에 얻어맞은 상처가
오히려 빛나는 조선의 대한의 술래가 되어라
발목에 묶인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손목에 묶인 포승줄도 베어버리고
뼈와 뼈 부딪히는 소리도 내면서
살과 살 타오르는 소리도 내면서
신열에 식은 땀도 흘리면서
무궁화꽃 피었습니다
새벽 음지에서 불끈 솟아난 버섯처럼 피었습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무궁화꽃 피었으니
나, 외로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너, 함부로 묻거나 대답하지 말아라
저 무궁화꽃 피어있을 이 겨울에도
우리 모두 술래가 되어
눈 크게 뜨고 손 먼 곳까지 내밀어야 하므로
♧ 은근과 끈기의 사랑이어라 - 명위식
--무궁화 無窮花
뻐꾹새 우는 봄날
고향집 울타리, 거친 들판
어디서나
화사한 미소 순수한 빛으로
새로이 피고 지고 또 피어
어지러운 세상 모진 풍파 견디며
아늑하고 즐거움으로 자족하는
그대는 무궁의 꽃이어라
한 송이 한 송이
아침나절 이슬 머금고 함박피어
해질 무렵 소리 없이 지는
정결한 아름다움이여
단단한 껍질을 가졌음에도
꺾이지 않는 유연함을 지녔으니
그대는 정녕 겨레의 슬기를 닮았음이라
햇살 따사로운 봄 화려한 미소로 다가와
찬바람 불고 서리 내리는
가을날에도 찬란한 영광으로
배달의 혼 불 밝혀 주는
그대는 은근과 끈기의 사랑이어라
♧ 아사달이라는 꽃 - 김종제
환웅과 웅녀의 아들
단군이 머물렀던 나라에
아사달이라는 무궁화 피었다
흰옷 입고 마음 붉게 타오르는 꽃이여
숨 끊어지지 않고
무궁한 생을 넘겨준 꽃이여
저 꽃. 제국주의 칼날을 막아냈으니
빛나는 광복이다
저 꽃, 계엄령의 총탄을 피했으니
우뚝선 자유다
저 꽃, 외세의 장벽을 무너뜨렸으니
진정한 독립이다
다시 찾아온 새벽
흉한 벌레 다시 들끓는데
꽃 다 뜯겨나가도
제 몸 던져주는 희생 같아서
저 꽃 틀림없이 넋 같은 것이라
아사달 결코 지지 않는다
미륵처럼 일어선 나무에
오백의 나한처럼 결집한 꽃이여
꽃향기 멀리 멀리 퍼져나가니
금을 그어 놓은 곳에도
철책을 세워 놓은 곳에도
어김없이 아사달 무진장 피었다
팔월이면 펄럭이는 마음처럼
아사달 피었다
붉은 피의 맹서처럼 피었다
♧ 사랑하는 대한아 - 해울 이재기
일어나라 아이야
험한 세상 사노라면
여린 손바닥이 찢어지고
설 아문 무릎이 터지고 깨져도
영원히 남을 흉이 되더냐
어서, 일어서라
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열 백 번 쓰러지고 나뒹굴어도
선홍빛 정열의 얼이 흘렀나니
홀연히 일어서라
사랑하는 대한아
스스로 걷고 뛰는 것은
백의민족의 태초사명이니
백두와 한라의 정기로
만세를 달릴 건각이 되어라
오, 그 날
반만년 민족의 혼불은
동해에 솟은 불꽃 되어
온 누리에 찬란히 비치고
한 맺힌 선조의 넋이 피어
금수강산 무궁화 꽃으로 만발하려니
자, 보아라
단군의 푸른 하늘이 열렸고
태극의 땅이 있지 않느냐
깨어나라, 대한아
이국의 오물 과감히 털고
박차고 일어나 힘차게 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