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

정선 레일바이크에서 만난 풍경

김창집 2014. 7. 31. 08:12

 

강원도 정선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까지

7.2km의 철로 위를 시속 15~20km로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철길 자전거.

 

옛날 시골길을 추억하며

동심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봅니다.

3년전 늦가을 정취를 느끼며 달릴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시원한 여름 풍경이

눈앞에 가득합니다.

 

물소리를 듣다가

때론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

밝은 세상으로 나오는 짜릿함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아름다운 송천계곡과 기암절벽을 일별하고 나면

아름다운 농촌풍경이 이어지고

결국 정선 아리랑의 본고장

아우라지역에서 멈추게 됩니다.

 

이 맛을 즐기려

가을이 되면 다시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 레일바이크 - 공석진

 

잊혀진 김유정의 소설을

추억으로 미끄러져 두 발로 읽는다

토막이 나 흔적만 남은 경춘선

글맥이 거두절미되어

하마터면 몰입이 방해될 뻔 하였다

길섶 억새

섣부르게 절정에 빠져들어

허옇게 다 늙어 가고

한 길 낭떠러지 아래로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노쇠한 철교는

“아직은 끝내지마”

고단한 등에 안간힘을 주어 버틴다

저무는 늦은 가을

따가운 햇볕이 터널 깊숙이 쫓아와

얼마 남지 않은 결말을 재촉하고

강촌은 음지로 숨어드는 시인에게

슬픈 소설을 접고

“아름다운 사랑 시 하나 써보렴”

조심스럽게 권유를 한다

   

 

♧ 여치 카페 - 목필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아홉 마디 구절리 길

 

정선 구절역엔

여치가 한창 열애 중이다

 

봄에도 겨울에도

벌건 대낮에도 깊은 밤에도

포란을 위한 황홀한 침실

 

신음소리 없이

끊어진 철로 옆에

부활을 위한 더듬이가 춤추고

힘살 박힌 뒷다리가

포개진 날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이별과 만남의 종착역

구절리역은 사라졌어도

 

거대한 여치 품속으로

타향 냄새 들여보내며

부활의 꿈을 판다

 

 

♧ 기억 한켠 - 주인자

 

무심코 누른 전화번호

낯선 목소리에

아무 말없이

무릎 사이로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아지랑이 피어날 일 없는 도시에서

가끔씩 느끼는 어지럼증

이미 잊혀야 할 사람의

미련의 끈이 아직도 손안에 있다.

 

이미 멀어진 그림자의 뒤만 쫓아 다니는

상큼하지 못한 내 기억은

경기도 어디쯤 시골역의

세월에 칠이 벗겨진 초라한 간의 의자로

가슴 한켠을 붙들고 있다.  

 

 

♧ 강원도 기차 여행 - 靑山 손병흥

 

고원지대로 이루어진 한적한 폐광촌

높은 산맥들이 온통 시야 가리고 있는

사랑 추억 그리움 가득 담고서 달리는

제천역을 출발했던 무궁화호의 기차가

문곡역에 도착하면 끝나게 되는 태백선

 

잔설마저 남아있는 동백산역에서 부터는

백산역 무정차로 통과하는 동백산역 지나

말발굽 형으로 돌고 도는 통리역 심포리역

흥전역 거쳐 숨 가쁜 나한정역 도계역 사이

깊숙한 골짜기 스위치백 구간까지도 벗어나

다시 영동선이 되어 강릉역까지 쭉 이어지는

환상적인 풍경이 가득한 눈 오는 날의 여행길  

 

 

♧ 너라는 종착역으로 달려야 할 나의 기차는 - 안재동

 

너라는 종착역으로 달려야 할

나의 기차는,

 

어느 간이역에 멈추어

써늘한 늦가을 비를 흠뻑 맞으며

떨고 있는 나의 기차는,

 

붉은 낙엽에 파묻혀가는

레일 위에서 오늘도,

기다림과 그리움의 두 발로

엉거주춤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어느샌가

바퀴들은 벌겋게 녹슬고

기관마저 고장 난 채

육중한 검은 철마는 아무 말 없이,

쿵쿵거리는

내 심장의 박동을 삼키며

제 허기만을 채우고 있다.

 

하늘 끝까지 닿도록 요란하게

푸른 기적을 울리며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철길을

철그렁거리며 달려야 할

나의 기차는.  

 

 

♧ 기차를 타고 - 고증식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다

늘 지나치던 저 겨울 숲도

훨씬 깊고 그윽하여

양지바른 산허리

낮은 무덤속 주인들 나와

도란도란 햇살 쪼이며 앉아 있고

더러는 마을로 내려와

낯익은 지붕들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면

 

살아있는 것만 빛나는 게 아니다

 

가볍게 떠다니는 영혼들이

햇살 속에서 탁탁

해묵은 근심들을 털어 내고 있다  

 

 

♧ 기차 - 신경림

 

꼴뚜기젓 장수도 타고 땅 장수도 탔다

곰배팔이도 대머리도 탔다

작업복도 고무신도 하이힐도 탔다

서로 먹고 사는 얘기도 하고

아들 며느리에 딸 자랑 사위 자랑도 한다

지루하면 빙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끝에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투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차창 밖에 천둥 번개가 치면

이마를 맞대고 함께 걱정을 한다

한 사람이 내리고 또 한 사람이 내리고......

잘 가라 인사하면서도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들 가는 곳 어덴가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냥 그렇게 차에 실려 간다

다들 같은 쪽으로 기차를 타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