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태풍과 황근

김창집 2014. 8. 4. 00:15

 

모처럼 나의 일정을 생각해서 짠

탐문회 1박2일 워크숍은 비양도에 가서

치르기로 한 토요일과 일요일이었다.

 

배가 안 뜬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연락온 총무가

애월쯤 어디 좋은 장소를 물색해 달라는 요청에

돌빌리지에 물어봤더니, 방이 꽉 찼다는 예기다.

 

어디 예약한 곳에 연락해 태풍이 와도 올 거냐고 물어

안온다면 빌려달라고 해서 건물 한 채 빌렸다.

 

진행과정에서 태풍이 부는데도 강행하느냐

하도 물어 와서 방에서 하는 건데

이제와 일정을 미룰 수 없으니 강행할 수밖에 없다면서

밀고 나갔는데, 29명 신청에 19명이 참가했다.

 

아침에 집에서 나갈 때는 비바람이 심해 보였는데

차를 타고 시가지를 벗어나자

환해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가 잔잔하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거니는 시간을 이용해

혼자 낚싯대를 빌려 고기도 몇 마리 낚을 정도.

집에 들어앉았다면 TV나 보며 먹을 궁리나 했겠지만,

과감히 집을 나서서 이렇게 재미있고 보람 있는

행사를 하게 되어 모두가 신나고 행복했다.

 

오후에는 빨래도 해서 널고

하늘이 열린 다음 이렇게 황근까지 찍어 본다. 

 

 

♧ 황근(黃槿, Hamabo mallow)은

 

 쌍떡잎식물 아욱목 아욱과의 낙엽관목으로 바닷가에서 자란다. 높이 1m 내외이고 식물체에 황회색 성모(星毛 : 여러 갈래로 갈라져 별 모양의 털)가 밀생한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원형이며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꽃은 7∼8월에 피고 가지 끝의 잎겨드랑이에 달리며 황색이고 안쪽 밑 부분은 검은 홍색이다.

 

 작은 포는 8∼10개가 중앙부까지 합쳐지고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이다. 수술은 많고 수술대가 합생한다. 암술대는 5개이고 암술머리는 검은 홍색이다. 열매는 삭과(殼果)로 8∼9월에 결실하며 달걀 모양으로 뾰족하고 잔털이 있으며 5개로 갈라진다. 나무껍질에서 섬유를 채취하여 사용했었다. 제주도와 일본 등지에 서식하는 낙엽관목인 황근은 노란 무궁화로도 불리는 희귀식물로 제주지역에는 구좌읍 하도리, 성산읍 오조리와 온평리와 표선면 세화2리 해안을 중심으로 자생하고 있다.  

 

 

♧ 태풍전망대 - 최영철

 

내 몸이 이파리처럼 쓸모없어지면 좋겠네

가벼워지면, 새털처럼 작아져서 미천하면 좋겠네

저 건너 산과 들 환히 보이는 전망대 앉아

하릴없이 날리는 담배연기라면 좋겠네

선남선녀 마주 보고 부르는 태평성대

야호, 한 마디라면

뒤뚱거리며 날아가 어느 모서리에 박힌 미친 바람이면

단번에 능선을 넘는 한 줌 돌멩이라면 좋겠네

사람만 아니라면, 온전한 팔다리 머리가 아니라면

그것도 아니라면 좋겠네 아무 흔적없이

바람 한 번에 까불거리는 지푸라기라면

눈시울 뜨겁게 하는 흙먼지라면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니라면 좋겠네.  

 

 

♧ 태풍 - 오보영

 

바람이어라

정녕

 

한순간

발길 멈추게 하고

가슴 얼얼하게 만드는

이 강한 부딪힘은

분명

 

휘몰아친 소용돌이 태풍이지만

틀림없이

 

등 돌리고 잠시

제자리에 머물러있기만 하면

금방

스치고 지나가는

 

곧 흔적 없이 사라져갈

 

덧없는 바람이어라  

 

 

 태풍의 눈 - 강효수

 

오만과 교만으로 충만한 무지한 것들

열섬에 갇혀 거짓에 충실한 것들

고요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위해

나는 큰 춤을 추노라

기쁨은 슬픔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흐름을 거역한 왜곡을 위해 나는

거꾸로 돌며 돌며 진한 푸닥거리 하노라

 

내 숨소리는 거칠어도

내 춤사위는 세상을 뒤집어도

나는 큰 눈물 흘리노라

나의 눈은 정온하나니

나의 심장은 평화롭나니

너의 영혼을 위탁하지 말지어다

원망은 없어라 슬픔은 없어라

 

귀 열고 거친 숨소리를 들어라

느껴라

크게 눈 뜨고 거대한 흐름을 보아라

느껴라

들리지 않거든 보이지 않거든

죽은 심장 주물러 벌써 죽어 있음을 느껴라

내가 내가 아님을 느껴라

 

나의 눈은 정온하나니

나의 심장은 평화롭나니

나는 흐름에 충실한 흐름일지니

나는 이제 크로노스를 죽이노라

나는 다시 카이로스를 살리노라

나는 흐름의 평화로 눈 감으며

나의 눈은 온전한 질서로 소멸하나니  

 

 

♧ 태풍 - 이지영

 

너를 잊는 건 태풍 탓만은 아니다.

빗줄기가 땅을 후들겨치고

비수로 내려 꽂아도

꿈쩍 않던 너에 대한 믿음

끝내 태풍으로 와

질긴 내 인고의 타래를 푼다

열번에 열번의 실망이 체념되어

제한 수위를 넘다가 만수위로 차올라

바다도 삼킬 것 같은 저 싯뻘건 동맥 핏줄

번쩍번쩍나래치며 폭우로 퍼붓는다

피할 수 없는 물줄기 따라

떠내려간다 떠내려간다

고통과 형벌, 더러운 것들

가라, 멀리가라

가까운 사람 먼 사람 다 쓸어가라

강물로 떠내려와 깊은 늪속에 빠져

천줄기 만줄기 구슬 눈물 쏟다가

불현듯 너 그리워 옷자락 붙들고 다시 기어오르고 싶은

불치의 병

누군가의 마음 창가에 무지개 띄우며

순수의 둥글음으로 살기를 원했었다

그렇게 애쓰다 애쓰다 떠내려 가는

내 작은 목소리의 끝은 무인도

 

내, 너를 잊는 건 태풍 탓만은 아니다.  

 

 

♧ 태풍이 지나간 후에 - 윤영초

 

폭우가 한바탕 난동을 부리자

나무들이 몸부림치고

꽃들이 아파하며 눈물 흘린다.

사람의 집도 그렇게 흔들렸다

 

그대가 다녀간 다음 날

옥빛 하늘과 도시의 맑음이

우리를 변덕스럽게 한다.

늘 안전지대를 찾으면서

다른 꿈을 꾸는

 

그대, 귓전에 쏟아 붓던 폭언이

머리카락은 사시나무로 떨고

기침 소리에도 놀란 가슴 된다.

바람이 잠들면 적막감에 불안해진다

   

 

♧ 태풍 - 홍일표

 

  독수리, 독수리떼다 너무 무거워 날지 못하는 고만고만한 삶의 덩어리들 머리채 휘어잡아 날려버린다 뒤집어버린다 지상에 게딱지처럼 달라붙어 전후좌우 가지런히 정돈된 질서가 마뜩찮은지 어지러이 흐트려놓는다 난동이다 야생의 거친 짐승이다 한 번도 젖어본 적 없는 유리창의 차가운 가슴을 부수고, 자리 한 번 옮길 줄 모르는 소나무의 외고집을 뿌리째 뽑아던진다 항아리의 숨통을 막고 있는, 무거운 모자 뚜껑이 날아가고, 허명으로 번쩍이던 거리의 간판도 한순간 떨어져 부서진다 수천 리 질주하던 바람이 자진하여 쓰러진 지상의 한켠, 하늘에 새로 돋은 별들이 파란 눈을 반짝이며 폐허의 한 귀퉁이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