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작가의 시조와 실꽃풀
제11호 태풍 할롱이 다행히 제주를 비켜 가고 있다.
지난 주 이보다 나중에 발생한 제12호 태풍 나크리 때문에
외래강사에 의해 진행되는 오름 강좌를 못해 오늘로 미루어졌는데,
오늘은 두 강좌를 오전 오후로 이어
치러질 것 같다.
모처럼 오름에 갈 수 있는 날씨 같아
어느 팀과 더불어 오랜만에 가봐야겠다.
가서 만날지 모르는 실꽃풀이 눈에 아른거려
사진을 찾아 제주작가의 시조와 함께 올려본다.
♧ 냉이꽃 - 장영춘
얼리지 마라,
얼리지 마라
터진 손 호호 불며
군불 땐 아랫목에
무릎 베고 피어난
향기로
뿌리내려라
끝없는
내
리
사
랑
♧ 어머니의 기준 - 이애자
웃음이 괄면 웃음 끝이 걱정이셨던 어머니
더도 덜도 아닌 곳에 선을 긋고 사셨으니
오늘날 늘 그만하길 다행으로 다행하시다
♧ 달 - 홍경희
있어도
없는 듯이
지내라 하셨기에
문득
고개 들 때까지
기다리라 하셨기에
서러움 말아 쥐고서
뚠 눈으로 서성였죠
너만은 아껴주겠다는 말
은밀히 품고서도
긴가민가 무심한 날들,
달아오를 수 없네요
험한 밤
몸을 축내며
미적미적 떠나요
♧ 꽃무덤 - 김영숙
손글씨 표지판 아래
엉겅퀴가 붉구나
벌초를 하고나자
빈 젖 같은 봉분
두 개
청춘아,
무얼 꿈구나
속냉이골*
덤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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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냉이골 무덤 : 남원읍 의귀리 1931-1번지 일대. 1949년 1월 의귀 사건에서 희생된 무장대들이 집단으로 매장된 곳. 누구도 돌보지 않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무덤.
♧ 낙타가시나무 - 김영란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
숨겨둔 꼼수가 보여
죽기살기로 한단 그 말
뒷계산 튕기지 않고
죽자 해야 사는 거지
붉은 꽃 사막에 핀다
선불로 낸 저 목숨
♧ 석류 - 현경희
배부른 몸뚱이의 비밀이 밝혀진다
감춰진 속내가 타는 태양에 새나가고
새빨간 닭 벼슬들이 담벼락에 걸렸다
알알이 잠들었던 밀담들이 터져 나와
남의 집 더부살이 서럽다 서럽다 서럽다
새빨간 아우성들이 쩍쩍쩍 입을 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