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새로 찾은 새별오름의 곡선

김창집 2014. 8. 10. 07:40

 

태풍이 다가온다고 며칠간 걱정했는데

토요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하고

오름 카페를 뒤적이다,

3기 팀과 같이 하기로 하고

모이는 장소인 한라수목원 입구로 갔다.

 

오늘 같은 날은 비가 올지도 모르고

태풍이 심술을 부릴지 모르니

햇빛이 쨍쨍일 때 못가는 오름에 가자고

중간에 새별오름으로 정했다.

 

겨울, 들불축제로 온 몸을 태웠던 오름,

그 덕으로 매끈한 몸으로

아름다운 곡선을 자랑하고 있어

그를 한껏 즐긴 반나절이었다. 

 

 

♧ 오름 - 임영준

 

파도소리가,

스며드는 햇살이

제 자리에 가만히

머물게 하지 않는다

 

나지막한

초록의 언어들도

산자락을 기어오르며

빨리들 따라오라

손짓을 한다

 

제주의 품속이라면

어느 오름이

그 수많은 실타래를

풀지 않으랴

 

세상의 모든 허물을

씻어가라 하지 않는가

한 걸음 한걸음

풍경이 되지 않는가  

 

 

♧ 제주 예찬 - 박태강

 

바라보는 제주의 황홀함

뒤돌아 한라의 끝자락에 터잡은

대명리조트

 

이른 아침 햇살 부서지는 물파도

남국에 젖은 푸른 나무

만선의 기쁨싣고 돌아오는 고깃배

 

구름없는 파란하늘

눈앞에 닥아선

한라의 길고 느린 오름

 

검은색 더욱검고

흰색 더욱 흰

빛나는 제주여 !

 

이국의 아름다움

가득 싣고

손짓하는 제주 제주여 !

   

 

♧ 추억, 그리고 가을 소국 - (宵火)고은영

 

밤마다 연애편지를 쓰느라

고뇌하며 엎딘 시간에

방안의 낡은 유리창 문은

자꾸만 덜컹대며 울었다

바람이 긴 골목을 따라 쌩쌩 불고

초 저녁 오름을 타오르던 불길이 불안하게도

가슴에 선명한 음영으로 다가오거나

혹은 달빛 젖은 그리움 속에

잠 못 이루어 뒤척이는 동안

 

바람 이는 골목 어귀

어쩌면 진통으로 해산하는 행복을 바라며

너는 온 밤을 하얗게 지샜는지도 모른다

가난하여 초라했고 가난하여 슬펐고

가난하여 절망했던 순간들

볼품없는 가난이라고

내면의 아름다움이야 없었겟느냐

가난 속에 도사린 꿈과 더불어 실낱같던 희망은

또 얼마나 비루했겠느냐 말이다

 

너는

초연하고 은은했던 것이다

소담하고 소박했던 것이다

정겹고 친근했던 것이다

성산포 작은 동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매혹적인 소녀의 정갈한 몸짓처럼

단아한 모습으로 서있던 너는 열여덟

 

지서를 지나 춘자네 집 앞

우체국 돌담길에서도 은유의 얼굴로

영혼에 스미던 그 짙고 고운 향기

갈바람 타고 환한 미소로 대신하던

그래, 그래 너는 사춘기  

 

 

♧ 삼별초 - 정재현

 

짙게 깔린 어둠을 뚫지 못한 채

반도의 흐느낌은 밤새 끊이지 않았다.

 

밤새 돌바람이 몰아쳐도

나뭇잎 한 장 흔들리지 않는

백의 강토 뒤흔들며

세찬 충절로 일어서는

구릿빛 얼굴들

 

한 손길, 한 걸음이면 닿을 듯한

동트는 새 날에

구천을 맴도는 파랑새들이

짙푸른 산으로, 짙푸른 바다 위로 내려앉게

내려앉게, 새지 않은 어둠의 날

생솔로 타는 아픔을 끌안고

거센 들불로 들물로 밀려들었다.

 

폭풍이듯, 선혈이듯

수 만의 젖멍울을 잘리우고

굵게 굵게

쏟아낸 피의 오름들.  

 

 

♧ 4.3사태 - 김영천

 

제 속 깊이까지 다 내보이고도

저리 짙푸른 이유는

슬픔때문인지 모릅니다

한라 아래 수많은 오름

그 억새밭 사이로

쉐쉐거리며 불어가는 바람도

그 뜻이 다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검몰래 씻기고 부서지고, 세모래처럼

날마다 깨어지던 그대들의 믿음이

이제야 더러 풀꽃으로 피어난 것들도 있습니다만

이방의 귀에는 그 말투 낯설어

왠지 애면글면해집니다

멍에목장 산담 곁에

채 하늘 오르지 못한 귀신들 우루루 불러 모아

권커니 자커니 술이나 마실까 하면

괜히 외길로 뻗은 신작로가 길을 재촉합니다

저 끝 어딘가에 그대 말뚝 바위로 서서

오늘은 내 고삐를 바짝 당기십니다만

문득 안개가 짙어

아직은 山끼리도 서로

 

불통입니다  

 

 

♧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 백우선

      ―제주 용눈이오름

 

땅의 사랑, 땅은 솟아

얼크러진 용들의

열풍에 휩싸인 절정

사랑할 때 뜨는 눈은 음핵이다

불붙는 사랑의 눈동자는

불길 속 음핵에서 돋는 햇덩이이다

땅의 사랑이 해의 사랑을 낳고

해의 사랑이 빛의 사랑을 낳는다

해와 달과 별들은

사랑의 눈동자이다

이 땅 사람들

사랑의 여의주이다  

 

 

♧ 들녘의 노래 - 현상길

 

따가운 햇살

물기 머금은 대기를 마시며

태평양 날아온 구름 머리에 이고

여름 한낮 고무신 녹이며 들녘을 갔지

숭숭 뚫린 돌담 위로 유도화 이파리 흥겹고

너른 들 고만고만한 소나무들 멀리

청잣빛 아른대는 봉긋한 오름들

정다워 가슴에 담아 뛰면

하늘은 이마 위에 설레었지

 

워이워이 쟁기 소리

훠여훠여 휘파람 소리

펼친 들녘은 온통 나의 무대

가슴 두드리는 대지의 음성은 나직한데

개미들은 온종일 합창을 울려댔지

어멍들 타령도 솔숲 따라 떠다녔지

굽은 허리 펴시며 쏟아내는 땀방울은

풍요론 강이 되어 깜장 땅을 적시고

하늘로 간 강물은

소나기로 쏟아져

우리들 까만 손톱 헹구어 주었지  

 

 

♧ 서귀포에서 - 최범영

 

날다람을 타고 훌쩍

구름을 지나 제주에 내려

죄의 눈물 아롱진 한라산 숲길

에워 돌아 서귀포에 왔네

 

바람에 쓸리는 풀 포기마다 배어 있는

百祖一孫의 뼈아픈 숨은 외침

오늘은 붉은 승리의 함성으로

오름마다 감격의 용암을 뿜어낸다

 

파도에 쌓이고 조개의 눈물로 다져진

지층 위에 줄띄우고 바닷물의 역사를 되짚는데

철썩철썩 스미는 짙은 바람에

뭍에서 온 촌놈의 몸은 천근 만근

 

그래 이렇게 승리하는 날엔 축배를 들자

독한 쐬주로 몸의 독기를 빼내자

오늘 술은 내가 마셨는데

바다가 하늘이 붉게 취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