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비기나무 꽃의 향기
오늘 비가 가끔씩 흩뿌리는 가운데
‘KCTV 김창집의 新 탐라순력도’ 상모리편 2 촬영을 위해
집으로 밭으로 벌판으로 헤맸습니다.
일제강점기 도민들의 수난사에 이어
일본의 패망과 후유증,
해방 공간과 4.3의 아픔,
부대 창설부터 한국전쟁까지
비극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한 중공군포로수용소에 공급했던 커다란 연못,
그 물가에 진한 향기의 이 순비기 꽃이 피었습니다.
거친 해풍과 메마른 모래밭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함은
모슬포 사람들을 닮았습니다.
♧ 들꽃을 바라보다가 - 김시천
들녘에 나가 들꽃을 보았습니다 노을 지는 들녘에 나가 들꽃을 바라보다가 부끄러워서 그만 고개 숙였습니다 말없이 피었다 지면서 조용히 하루를 거두는 들꽃들을 바라보다가 그만 말 할 수 없이 부끄러워져서 얼굴 붉혔습니다 무릎 꿇고 그냥 이대로 한 송이 들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그냥 한 송이 들꽃이면 어떻겠느냐고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 나도 그렇게, 저녁노을처럼 말하고 싶었습니다
♧ 들꽃 - 나태주
언제적 잊어먹은
은가락지냐.
누가 빠트리고 간
옛 얘기들이냐.
물낯인 양 고요 고요론 어둠 속에
까마득히 잠들었거나
어쩌면 보오야니 눈을 터서
내게 오는 너.
널 위해서라면
천둥 속같이 찢긴 가슴
다시 한 번 불붙는 노을이 되마.
길 잃고 울음 우는 짐승이 되마.
앞니 다 삭아내리도록
알사탕 사먹던
어린 날의 그 숱한 동전닢들,
함빡 내린 이슬에 모두 살아와
그만 새하얀 꽃이 되어
내 앞에 모였네.
♧ 들꽃처럼 - 배은미
들꽃처럼
낮게낮게 가자
청초한 아름다움으로
내 삶을 위로했듯
그대에게 나는 작은 들꽃으로
드리우고 싶다.
항상 지키지 못한 약속처럼
그대 곁에 머무르지 못한 게
늘 커다란 짐이였는데
혹여
다시 태어나면
나는 그대에게
아주 작은 의미라도 좋으니
그대곁을 지키는
키 작은 들꽃으로
드리우고 싶다.
♧ 들꽃의 노래 - 김경숙
-달개비
후미진 깊은 산 속
척박한 바위틈에
누가 너를 보냈을까
찾는 이 없어
외로움에 내민 손
마다 마디 파랗게
피멍이 들었구나
한해 살다 갈지언정
바위를 다독이며
밤마다 꿈속에서
별을 보듬었을까
내 민 손끝마다
별이 총총 박혀
파르르 떨고 있는
푸른 고백이여
♧ 들꽃 웃음 - 이훈식
모양도 빛깔도 없는
그리움을 안고
소리없이 찾아 왔다
남겨질 흔적 지우다 보면
숲속
나무가지 사이로 찾아든
햇살위로
저만치 앞서 간
발걸음이보이고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당신에 이름으로 핀
들꽃 웃음이 가득합니다
살아 있을 동안에
이땅에
남겨 두고 싶은 이야기가
당신에게만
오직 당신에게만
끝까지 숨겨지는
단 한마디의 시어이고 싶습니다
울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