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김영란 시조와 닭의장풀 꽃

김창집 2014. 9. 5. 23:52

 

어제 과오름 안에 있는 압게에 갔다가

약속된 시간에 일할 사람이 안와

주변을 둘러보니, 이 닭의장풀이 있어

자연히 눈길이 갔다.

 

꽃술로 보아

핀지 하루 정도 된 것과

오늘 핀 것이 있다.

 

그저 욕심껏 꽃만 담고 보니

마음에 차진 않지만

카메라 탓으로 돌리며

곱닥한 것만 골라

읽다 덮어둔 김영란 시인의 시집

‘꽃들의 수사’ 둘째 묶음에서

시 몇 편을 골라 함께 올린다.

   

 

♧ 내 안의 바다

 

그곳에 가지 않아도 바다는 내 안에 있다

물빛들 흔들리며 돌아오는 그 시간

발그레 해장술 걸치고 딸의 안부를 묻는 바다

 

수평선에 매달린 무동력 목선 하나

오색기 가물가물 소실되는 그 시점에

가렸던 마음을 풀고 내 상처를 덮는다

 

흐릿한 해안선이 이별처럼 다가와서

아득한 그 틈새로 커밍아웃 선언할 즈음

무적음(霧笛音) 정수리 위로 섬 하나가 보였다

   

 

♧ 애월포구

 

오늘의 허용치만큼

바다도 빗장을 풀고

한계 넘는 음역 어디

비릿한 파도소리

수평 끝 저문 하늘에

칸나꽃이

피었네

 

등대와 등대 사이로

문득 번진 그리움

눈매 고운 열사흘 달

등 뒤로 와 기대면

바다도 머릿결 곱게

포구에 와

안기네

 

저만큼 등대 따라

하나둘 돌아오네

더 큰 자유를 위해

외로움 키우던 불빛

애월리 나직한 포구에

키 높이는 초록등

   

 

♧ 고향생각

 

 눈을 감고 있으면

 고향 바다가 눈 안에 든다

 

 떠오는 그 바다에 다시 뜨는 불빛처럼 바닷가 풀숲 헤치던 여치소리도 바다로 든다 바다로만 눈을 두는 어부의 가족들처럼 하루에도 서너 번씩 떴다 지는 수평선처럼

 

 그리운 고향포구에

 만선 깃발 펄럭인다

   

 

♧ 중년의 바늘귀

 

바늘귀 가까이

어디에도 없던 구멍

 

안경 끼고 안 보이는 것

 

안경 벗자

 

보이네

 

보고픈 세상일수록

 

초점 잃은

 

내 시력

  

 

♧ 내 생애의 봄

  

어머,

 

나도 꽃인가 봐

 

몸이 간질거려요

 

눈도 간질

코도 간질

 

간질간질거려요

 

이른 봄

 

꽃눈을 내는

 

내 생애의

 

개화기

   

 

♧ 신 한림별곡

 

전갱이 잔뼈 같은 어젯밤 하얀 꿈도

북제주 수평선도 가로눕다 잠기는

은갈치 말간 비린내 눈이 부신 이 아침

 

바람소리 첫음절이 귤빛으로 물이 들고

닻들도 기도하듯 조용히 기대 누운

기우뚱 포구에 내린 오십견의 저 바다

 

우리가 불빛들을 희망이라 말할 때

행성처럼 떠도는 비양도 어깨 위에

등 뒤로 가만히 가서 손 한 번 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