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시조와 닭의장풀 꽃
어제 과오름 안에 있는 압게에 갔다가
약속된 시간에 일할 사람이 안와
주변을 둘러보니, 이 닭의장풀이 있어
자연히 눈길이 갔다.
꽃술로 보아
핀지 하루 정도 된 것과
오늘 핀 것이 있다.
그저 욕심껏 꽃만 담고 보니
마음에 차진 않지만
카메라 탓으로 돌리며
곱닥한 것만 골라
읽다 덮어둔 김영란 시인의 시집
‘꽃들의 수사’ 둘째 묶음에서
시 몇 편을 골라 함께 올린다.
♧ 내 안의 바다
그곳에 가지 않아도 바다는 내 안에 있다
물빛들 흔들리며 돌아오는 그 시간
발그레 해장술 걸치고 딸의 안부를 묻는 바다
수평선에 매달린 무동력 목선 하나
오색기 가물가물 소실되는 그 시점에
가렸던 마음을 풀고 내 상처를 덮는다
흐릿한 해안선이 이별처럼 다가와서
아득한 그 틈새로 커밍아웃 선언할 즈음
무적음(霧笛音) 정수리 위로 섬 하나가 보였다
♧ 애월포구
오늘의 허용치만큼
바다도 빗장을 풀고
한계 넘는 음역 어디
비릿한 파도소리
수평 끝 저문 하늘에
칸나꽃이
피었네
등대와 등대 사이로
문득 번진 그리움
눈매 고운 열사흘 달
등 뒤로 와 기대면
바다도 머릿결 곱게
포구에 와
안기네
저만큼 등대 따라
하나둘 돌아오네
더 큰 자유를 위해
외로움 키우던 불빛
애월리 나직한 포구에
키 높이는 초록등
♧ 고향생각
눈을 감고 있으면
고향 바다가 눈 안에 든다
떠오는 그 바다에 다시 뜨는 불빛처럼 바닷가 풀숲 헤치던 여치소리도 바다로 든다 바다로만 눈을 두는 어부의 가족들처럼 하루에도 서너 번씩 떴다 지는 수평선처럼
그리운 고향포구에
만선 깃발 펄럭인다
♧ 중년의 바늘귀
바늘귀 가까이
어디에도 없던 구멍
안경 끼고 안 보이는 것
안경 벗자
보이네
보고픈 세상일수록
초점 잃은
내 시력
♧ 내 생애의 봄
어머,
나도 꽃인가 봐
몸이 간질거려요
눈도 간질
코도 간질
간질간질거려요
이른 봄
꽃눈을 내는
내 생애의
개화기
♧ 신 한림별곡
전갱이 잔뼈 같은 어젯밤 하얀 꿈도
북제주 수평선도 가로눕다 잠기는
은갈치 말간 비린내 눈이 부신 이 아침
바람소리 첫음절이 귤빛으로 물이 들고
닻들도 기도하듯 조용히 기대 누운
기우뚱 포구에 내린 오십견의 저 바다
우리가 불빛들을 희망이라 말할 때
행성처럼 떠도는 비양도 어깨 위에
등 뒤로 가만히 가서 손 한 번 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