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이웃을 돌아보는 추석으로

김창집 2014. 9. 8. 04:28

 

무덥던 여름이 끝나는 시점이라지만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기도 전에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날은 찾아왔다.

 

세월호의 아픔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날들….

아직도 온데간데없는 식구를 기다리느라

체념하지도 못한 채 서성이는 가족들도 그냥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추석날은 다가오고야 말았다.

 

올 추석은 우리 기성세대들이

바쁘다고, 아니면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다른 사람들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외면하며 살진 않았는지

조용히 되새겨보며,

흔들리는 이웃을 보살피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 추석을 맞이하여 - 원영래

 

보라

저 벌판을 적시며 흐르는

황금빛 찬란한 풍요로운 물결을.

 

꽃샘추위와

모진 비바람

간단없이 찾아오는 병충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순간이

어디 한두 번이랴

마음 졸이며 지켜보아야 했던

태풍 그 험로를 건너

땀방울로 영그는 가을의 결실

농부의 마음 하늘도 감동하니

나비도 감히 범접하지는 못하더라.

 

가을볕은 따사롭고

들판을 흐르는 바람은 맑고 그윽하여

오곡백과는 저마다의 빛깔로 물들어

가을을 맞이하니

이 풍요로운 성찬을 준비한

농부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하느니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 가나니

백결선생의 방아타령으로 주리고 지친 마음 달래는

햇빛도 비껴가는 음습한 그늘 아래

쓸쓸히 처량한 한가위를 맞이하는 이웃은

둥근 보름달이 서럽고 원망스럽더라.

 

휘영청 보름달의 넉넉함과

무르익는 가을의 풍성함으로

나누는 기쁨이 함께하는

풍요로운 한가위가 되시기를…

   

 

♧ 추석과 어머니 - 박인걸

 

고향 인정은

밤송이처럼 여물고

어머니 모습은

맨드라미처럼 붉다.

 

마디 굵은 손으로

솔잎 섞어 빚은 송편

꽃 그릇에 담아

마을에 情을 나를 때면

 

늘어 선 코스모스

다정하게 손 흔들 때

어둑한 신작로 위로

달이 따라오며 웃었다.

 

고향 온정이 섞인

불빛 노을이

어머니 추억을 뿌리며

아파트 지붕을 넘고 있다.

 

 

♧ 어머니의 추석 - 오보영

 

아침부터 마을 어귀

내다보시며

 

아들 손주 며느리 기다리시다

 

긴 시간 막힌 길

뚫고 달려온

 

자식 등 다정하게 보듬으시며

 

“그 먼 길 힘들게 뭐 하러 왔어

안 와도 느덜만 잘 살면 되지!”

 

대견함에 눈물 글썽이시던

울 어머니

이젠 보름 달 속에서

 

내려 보며 흐뭇한 미소지신다

 

“언제나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자식들과 행복하게 더 잘 살라고.”

 

당부하며 인자하게 말씀하신다

  

 

♧ 동구 밖에 서성이던 추석 - 草岩 나상국

 

뜨거운 여름날에 발길질하면서

다가온 가을바람

목 뻣뻣하게 세웠던 나락들

무거워진 머리 누렇게 고개 숙이면

기다림도 달빛으로 차오르고

울면서 등 떠밀려

멀리 도시의 여공으로 떠났던

형 누나들

 

눈칫밥에 밤잠 설쳐 가면서

이 악물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고향의 부모 형제

그리워하며

눈물 가득 머금고

한푼 두푼 애지중지 모아 두었던

저금통 헐어내

손에 선물 보따리 바리바리 싸들고

귀향하는 추석 연휴 때면

 

누구 하나 찾아올 사람 없는 난

뒷동산 이름 모를 산소에 올라앉아

동구 밖 삼거리를 서성이며

누구누구네 집

아이들 선물 보따리

부러움 보다는

찾아올 사람 없는

내 서글픔을 가늠하곤 했다  

 

 

♧ 추석날 - 이남일

 

잘 이룬 차례상을 올리고

풍성하게 익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늘보다 높은 날

 

꿈을 못 이룬들 어떠랴.

조금 늦어진들 어떠랴.

꽃향기보다

언제나 꽃 피우는 시간은 길었다.

 

우리는 이루는 것보다

이루기 위해 살지 않았는가.

이룬 기쁨보다

땀 흘린 시간에 감사하는 날

  

 

♧ 가을 산 0번지의 추석 - (宵火)고은영

 

어둠은 그늘을 지우고 앉았어도 견고하고

언제고 행복을 얘기해 주는 법이 없었다

퍼석대는 가난의 때가 맞물리던 그 옛날

옥수수 죽이면 탁상이요 시래기죽도 귀했던

가을 산 0번지엔 가난에 물려 죽은 영혼들이 산다

 

징그럽게도 허기에 몰린 영혼들이 배고픔을 달래고파

풍성한 가을 추수의 낱알이 마냥 그리운 밤이 되면

쪽방 촌이나 하루의 온기를 그리는 사람의 수만큼

별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다

점점 차가 와지는 대지

밤새 별들이 흘린 눈물이 아침엔 이슬이 된다

 

수수깡처럼 마른 꿈들이 밤사이 창밖을 맴돌다

그리움에 타 죽을 만큼 후줄근해 진 발길로

돌아온 새벽은 살아 온 세월만큼

초라한 형편으로 구겨져 형체 없이 쌓여가고

외로움이 빈들에 홀로선 추석

기다림은 언제고 텅 비어 있다

 

때로 억척스런 생존의 의미도

하루쯤 벗어 버리고 싶었던 추석엔

누구에게는 기쁨의 시간으로 현존해도

또 다른 누구에게는 막장 같은

쓸쓸함으로 확장되는 아이러니

불평등 증후군들이 저만치 겨울을 바라본다

 

볼품없는 뱀의 허물처럼

마냥 외로울 수밖에 없는 가난의 멀미가

사지를 조금씩 찢어발기며 고독한 달빛 대신

청승맞은 빗소리로 차오르는 올 추석은

겉보다 속이 더 아픈 저 들판

외로움이 홀로 비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