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단아하고 소담스런 달리아 꽃

김창집 2014. 9. 26. 00:08

 

우리는 어렸을 적에 다알리아로 배웠는데

지금은 외래어 표기법상 달리아가 맞다고 한다.

 

지난 9월 18일 저녁과 이튿날 아침 두 차례

양양 낙산사 부근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가게 앞 그리 넓지 않은 화단에 몇 가지 꽃을 심었는데

이 달리아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

우리가 다니던 초등학교 화단에 피어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으로

가끔 돌아다니면서 한두 번 본 일은 있지만

이곳처럼 소담스럽게 두어 무더기가

제대로 피어 있는 것은 오랜만에 본다.

 

달리아(다알리아)는 국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뿌리로 번식하며, 잎은 마주나고,

꽃은 7월부터 늦가을까지 원줄기와 가지 끝에 핀다.

멕시코가 원산지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 달리아 - 김명인

 

밥집 앞에 잠깐 서 있었을 뿐인데,

여름 한낮의 텅 빈 기갈을

허겁지겁 채운 뒤 민박집 마당으로

막 내려섰을 뿐인데,

크고 탐스러운 꽃이었다. 이름을 몰라

물어보니 ‘달리아’라 한다.

보랏빛 얼룩이 둥글게 다발을 이룬 흰 꽃잎 속으로

슬픔처럼 스며든다. 사십칠만 시간의 내력을

올올히 헤쳐 놓고 헤아려 보지만

이 슬픔 어디서 오는가.

나는 다만 기억에도 없는 꽃 한 송이를 쫓아

여기까지 불려 와서

비로소 누군가의 손을 잡아보는지.

天竺천축에서 天竺천축으로

어제 불던 바람도 오늘은 아주 그쳐버려서

나는 허기진 배나 채우려고

여름 한낮의 그늘을 기웃거렸을 뿐인데

이 자릴까, 낯선 모습으로 만나

한나절 잘 사귀어보라고, 잠시 飽滿포만하라고

밥집 마당의 꽃 한 송이로

천축 저 너머까지 갑자기 환해질 때

돌아갈 길 막막하던 고향

오늘따라 한결 또렷해진다.

 

 

 

♧ 뜨거운 가을 - 박성룡

 

사루비아,

백일홍,

그 위에 또 달리아까지

아직은

뜨거운 꽃들이 피어 있기에

우리들의 가슴은 식지 않는다.

앞뜰,뒤뜰,

현관마다,교정마다

아직은 숯불같이 뜨거운 꽃들이

피어 있기에

우리들의 가슴은 식지 않는다.

아, 이 가을엔

설령 사랑쯤 하지 않아도

우리들의 가슴은 식지 않는다

 

 

 

♧ 돌꽃 1 - 박서영

 

  밤에 썩은 꽃씨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어 사물들이 신발들 벗어놓고 사운대는 시간의 방 안으로 들어갔어 누우런 봉투를 후 불고 나는 가만히 감추었어 꽃은 몸속으로도 몸 밖으로도 뿌리를 뻗었어 내 핏줄들이 일제히 땅바닥에 엎드렸어 정신과 육체 은밀하게 자라기 시작했어 내 몸에서 흐르는 즙을 먹고 당신이 자라기 시작했어 흐느낌도 없이 누군가 떠나갔어 터진 꽃씨들이 어디로 날아갔을까 신발들이 어디로 떠나갔을까 다음날도 꽃씨를 심었어 불씨를 심었어 아침에 누군가 재 한 줌을 흔들어 깨웠어 밤새 불탄 흔적을 깨끗이 거둬갔어 이불은 잘 말려지고 집은 조용했어 나는 누워서 달아난 시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

  꽃 지는 밤, 오래된 돌 위에 누워 마른 이끼를 잡아 뜯네 카피트처럼 부드러운 돌을. 비와 바람의 흔적을 베고 누워있네 거친 황무지의 집인 몸 속에 하얀 시간의 발자국이 찍혔구나 붉은 다알리아가 피는 저녁 핏줄이 넘치는 저녁 강으로 나가라 시드는 것에 익숙치 않는 꽃이 핀 저녁강가를

  

 

 

♧ 그 황홀했던 단 한번의 입맞춤 - (宵火)고은영

 

사랑하는 이여 기억하나요

불꽃처럼 피어나던 전율의 혈흔

그것들의 순환이 거세어지고

무력한 이성 앞에 고개 숙이던

우리 황홀했던 입맞춤을

 

무더운 여름날

진홍으로 물들었던 맨드라미처럼

대낮의 열기보다 한층 더 뜨거워져

우리 가슴도 붉게 붉게 물들던 순간을

 

달콤하고 섬세한 감촉은

아직도 내 입술의 언저리에

짜릿한 밀회처럼 머물러

밀랍처럼 창백한 기억마다

질리도록 그리운 당신의 체취로

보도 위에 뒹굴고

 

가난한 사랑이라 나눌 게 없어

한처럼 쌓이던 서글픈 기억만으로도

절망처럼 행복했던 우리의 숨결

다알리아 꽃잎 같은 그 황홀했던

단 한 번의 입맞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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