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초가을 억새의 추억

김창집 2014. 9. 28. 07:49

 

모처럼 오름해설사 3기 출신들과

가을이 시작되는 대록산과 소록산에서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막 피어나

금빛 또는 짙은 보랏빛 작은 꽃들을

빽빽이 매달고 있는 저들은

천상 벼과 식물의 숙명 같다는 느낌입니다.

 

맑은 공기와 하늘

좋은 벗들과

가을의 초입에서 만난 억새들을

잠시 스케치해 보았습니다.

  

 

♧ 억새꽃을 노래한다 - 최영희

 

지나는 길

낮은 언덕이었지 싶습니다

산, 들, 바다

한 해 동안의 모든 생각이 누워 잠이 드는데

끝내 스러지지 못하는 소리 없는 하얀 빛 목 울림

눕지도 주저앉지도 못하는

억새꽃 당신을 보았습니다

 

바람에 너풀거리는 여인의 치맛자락 같은

고요한 슬픔을 보았습니다

고개를 숙이려는 듯하다

가끔은 바람 따라 먼 산을 바라보는

 

산은 빈산으로 비어가고

그리움은 영원한 것

사랑은 슬프게도 영원한 것

 

먼 훗날 우리 떠난 후에도

그곳에 그대로 영원할 것 같은

산을 밟고선 억새꽃 그대 그림자 사이로

천 년의 그리움을 보았습니다

또 하나 지상의 별자리 같은.

   

 

 

♧ 반짝이는 억새를 보며 - 제산 김대식

 

꽃이라 부르기엔

너무 하얗게 쉬어버린 백발

하얀 백발조차 그토록 윤이 나게 아름다운 건

억세도록 힘차게 살아온 생

아마도 그 억센 생명력 투지 때문이었을까?

불어오는 폭풍에도 굳건히 견뎌온 억센 끈질김

그 속에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백의 부드러움이 있었을 줄

   

 

 억새 사이로 - 이선명

 

바람처럼 슬프게 웃는다

흔들리는 지난날의 열정

 

언제나 자유롭고 싶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명한 흔적이고 싶었다

 

바람은 한 길로

억새는 수십 갈래로 흔들린다

 

꿈은 현실이지 못해 더 애틋한가

 

삶을 기억하고 기다림을 배운다

바람처럼 슬프게 웃는다

   

 

 억새 - 권도중

 

지나올수록 할 말이 많고

살아갈수록 부대낌이 많은

 

이 언덕 오르기엔 숨차지만

저 언덕보다는 절실한 곳

 

가득한 가을로 오라

억새처럼 흔들리며

 

 

 

♧ 초가을 억새처럼 - 유일하

 

억새꽃 흔들며 밤이슬 내려와

젖은 가슴에 대못을 치고

어디로 가나 얄미운 사람아

 

너에게 밟혀버린 내 마음이

다져진 슬픈 상처로 남아

포르르 낙엽과 함께 묻히고 있다

 

그리움은 잠시 붉어진 노을뿐

추억은 파도를 넘는 파장뿐

초가을 억새처럼 내 마음 꼿꼿이 서있다. 

 

 

♧ 억새에게 배운다 - 김정호

 

아무리

비바람이 불어도

그대 향한

마음처럼

흔들릴 망정

꺾이지 않고

한평생 그리워하며

가볍게 살아가는 법을

너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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