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양전형 시집 ‘꽃도 웁니다’

김창집 2014. 9. 30. 08:57

 

지난 6월달에 받았던 시집

양전형 시인의 ‘꽃도 웁니다’를

또 하나 받았다.

 

어느 모임에서 나누어주다

하나 여분으로 가져 온 것이 남으니까

‘이거 형님도 가져!’ 하고 내민 것이다.

 

워낙 꽃을 좋아하니까 주는 건지

워낙 시를 좋아하니까 주는 건지

요기 나오는 시로 블로그를 장식하라는 건지

잘 몰랐지만

 

꼭 가질 만한 주인이 나타나면

전해줄 예정이다.

 

이 꽃은 울릉도 다녀오는 길에

강원도 양양 낙산사 부근에서 찍은 설악초로

미국 중부 평원에서 온 것이라 한다.

 

 

♧ 감자꽃 필 무렵

 

아무려면

누구에게나 순정 하나 없을라구

지상의 온기에 가슴 설레며

저마다의 순정을 꽃송이로 열어대는 법

 

점점 뜨거워지고 마는

몸을 다스리려, 늦봄이

산속으로 수행 길을 떠날 무렵

연분홍 순정 감자꽃 필 때

 

삼촌은 쌍심지 켜고

우악스런 냉혈 인간이 됐다네

순정은 무슨, 오로지

튼실한 밑알을 키워야지

날선 가위로 법도를 찾았다네

 

그대 앞에 내 홍조도 잠시였었지

이맘때 꺾여야하는 감자꽃처럼

동강나던 순정이 얼룩져 번져오네

 

감자꽃 필 무렵

그때의 마파람이 불어와 속삭이네

봄은 또 오고

빙하를 떠돌던 추억도 오고

감자꽃도 늘 피겠지?

  

 

♧ 석류꽃

 

나를 찾아 나선 지 사흘

 

지구가

낮술에 취한 나를 부축하여

골목길 담벼락에 그림 그릴 때

 

울타리에 올라

해를 맞 태우는

석류꽃에서 나를 찾았다

 

여기서 뭐해

응? 그냥 피어 있어

너무 드겁지 않아?

응, 뜨거워야 필 수 있어

근데 너 너무 곱다

고마워, 전형아 

 

 

♧ 안개꽃을 보며

 

오목한 꽃잎 끝마다 하늘이 풀무질한다

새벽녘 살그미 돌아온 여인이

조용조용 닦아내야할 짙은 화장기다

건너편에서 멀어져가는 젊음처럼

오래 바라볼수록 가마아득하다

감귤의 파란 언어가 붉어가는 계절

한낮에 달려들던 작달비에게

너의 길이라면 나를 밟고 지나가거라

온몸 내주며 저뭇한 시간

피어나는 게 어디 꽃뿐이더냐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내가 모르는 사람들

다 모여들어 피었다 어떤 이는 몇 송이씩이다

간밤 토막잠에 동강난

내 꿈 부스러기들도 있다 

 

 

♧ 고독하다

 

나 오늘 죽고 말리라

고독해서 그냥

콱 죽고 말리라

탑동 방파제에 우뚝 올라섰다

 

한 여자를 사붉게 바라보다

가슴에 무더기로 피어 버린 꽃에 겨워

일출봉 낭떠러지를 날아내려 죽은 나와

주식투자로 망하여

한라산 소나무 밭에서 목매 죽은 내가 다가온다

새벽길 짐승처럼 방황하다

뺑소니차에 치어 죽은 나와

직장생활이 고달파서 술독에 빠져 죽은 나도 보인다

 

이미 죽은 녀석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달려 나와

내 머리 위를 파닥거린다

이 사치스런 놈아, 치사스런 놈아, 한다

죽어 보니, 더 고독해서 죽겠다, 한다

그래, 고독한 걸로 죽지는 말자  

 

 

♧ 피

 

나를 거쳐 간 모기 하나

벽에 붙어

포만감으로 느긋하다

내 피가 모기의 뱃속에 선명히 흐른다

아, 보인다

저 뱃속을 출렁이는 것들

저 피가 저지른 욕망과 방황들

다 한 모금 갈증이었구나 

 

 

 사계리 해당화

 

너울지며

바람 이고 달려와

산산조각 부서지는 숙명 파도가

흐드러진 꽃무더기 보았는 듯

오늘따라 갈기 높이 세웠다

갯마을 해당화는

바람의 속내를 단숨에 읽는다

 

그렇게 수십 년

모래밭에 내린 꽃의 뿌리는

외로움만 무시로 밀어 올린다

 

외로움으로 피워 낸 꽃은

풀풀 나는 향기가 요요롭다

 

어느 바다에서 흘러온 바람도

이 향기를 비켜갈 수 없다

이 잠결의 꽃잎을

한 번씩 품고 나서

풀린 다리 휘청이며 풀숲에 스러진다

 

외로운 향기 흐드러진

사계리 해당화

몰려드는 바람 모두 품으며 산다

멀리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가끔, 눈물 뚝뚝 떨구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