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구좌읍 평대리의 가을 바다

김창집 2014. 10. 7. 07:13

 

숲이나 들판을 바라보면 아직도 푸른데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산북*의 바다는 그 낯빛을 바꾼다.

서서히 여름의 닻을 내리고

겨울 채비를 시작하는 것이리라.

 

어제 '김창집의 新 탐라순력도’ 촬영차 찾은

구좌읍 평대리의 바다는

아직도 여름의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의 정수리를 맑게 씻어주었다.

 

내가 이 바다를 찍을 때는

크고 강한 태풍 제18호 판폰(PHANFONE)이

일본의 시즈오카(靜岡)현 하마마쓰(浜松)시 인근으로 상륙,

수도권을 강타하며 행패를 부리던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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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북 : 제주도에서는 한라산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는데, 그 북쪽을 의미한다.

 

 

 

♧ 가을의 바다 - 김용락

 

중년의 사내가

마음속 깊은 상처하나를 안고서

백사장에 앉아 가을의 바다를 본다

바다는 지난 여름의

격렬한 감정이나

불면과 고통으로 더 이상 나를 압도하지 않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혹은 세월처럼

혁명도 이데올로기도

저만치 멀어져버린 것 같은

오늘의 견딜수 없는 이 쓸쓸함

그러나 그 속에서 패배를 배우고 인생의 겸허를 느

껴보자

나도 이제는

가을의 바다를 깨달을 수 있는 나이

물러날 때의 쓰린 비애를 제대로 배워보자

 

 

♧ 가을 바다 - 이양우(鯉洋雨)

 

주인 없이 뛰어노는 야생마같이

추어라 창랑(滄浪)에 화난 파도(波濤)야

여름에 기승을 부리고도 모자라는

네 차가운 객기(客氣)는

한 시인의 눈물일 수도 있다.

 

왜냐고 묻지는 마라

내 마음이 깨어져 조각난 틈서리론

어느새 가을 파도가 산(山) 정상에까지 이르렀도다.

거두는 자에게 비워 줄 혹자(或者)의 아픔이 있다.

나의 누이가 췌장암 말기란다.

 

그래서 그러는 내 슬픈 뜻이 있지

바다 너머 노을 끝에 구름이 물들 듯이

나이든 우주장천(宇宙長天) 마저 단풍이 드는 모양새로구나  

 

 

♧ 가을 바다 - 李豊鎬

 

저 멀리서부터

애탄 내 가슴에 가을 바다가

진실한 소리로

벗은 내 온 몸에 부딪쳐 오고

 

나는 내 감추어진 이야기를

고백할 길 없고

답답한 속내를 보여줄 이 없어

차라리 누군가를 새로이 찾아왔건만

이 바다는 알고 보니

일상으로 하루에 몇 번씩 물거품으로

와이키키 해변을 스치고 지나갈 뿐

만나는 풍물이며 군중 모두가

한 순간 새롭게 내 눈과 의식을 현혹시키고

지나가버리는 방관자일 뿐

화려한 군중 속을 헤집고 지나가는

고독한 나를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

가을 바다 소리를 무수히 귀에 담고 돌아와

창문을 여니 다이아몬드 헤드 뾰족한 산머리에

저녁달마저 눈물 떨구고 떠 있다.

  

 

♧ 가을 바다 - 윤용기

 

섬 그늘

 

쪽빛 바다와 에메랄드 빛 하늘이

서로 하나가 되었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

바닷새 한 마리

지난 여름 북적이던 숱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사랑의 상처입고

외롭게 거닐던 임의 발자국인가

쓸쓸히 혼자 거닌 갈 바다 모래밭에

가만히 발자국만 외로이 홀로 있네.

 

긴 머리 휘날리며 여름 바람 가르던

그 추억의 시간들도

이젠

싸늘한 겨울만을 연상시킨다.

우리의 삶도 추억 속에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삶의 흔적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닐까?

 

 

♧ 여름바다에서 가을을 본다 - 김귀녀

 

피서객들이 술렁이던 여름

먼 바다 수평선에 떠있는 가을을 본다

가을은, 남실남실 물결 따라 온다

검푸른 파도를 타고 하얗게 밀려온다

모래밭에 심겨진 발자국들을 지워내며

지나간 날의 맑은 추억들이 수초를 타고온다

40년 전, 손등을 두들기며 모래성 쌓아올리던 푸른 기억

하얀 파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면

어쩔 줄 몰라 두 손 두 발로

동동거리던 어린 소녀가

지금은 중년이 되어

아침 이슬 그리운

가을로 간다.

   

 

♧ 가을바다 - 오경옥

 

멀고 먼

그리움을 오래도록 간직하면

가슴도 하늘 닮은 파란빛이 되는 걸까

불러보고 싶은 것들 오래 되뇌이면

가슴에서도 저토록 맑은 소리로

노래 부를 수 있을까

 

가끔은 부표처럼

존재의 의미를 물어보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만

끝없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나의 기쁨

나의 외로움

나의 슬픔

내 아픔이었던 그 무엇

오래도록 가슴에 고여서

아쉽고 그리운 것들을 노래하게 하는

슬픈 계절의 詩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