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매화 핀 숲길을 생각하며
일요일.
북상하는 제19호 태풍 봉퐁의 간접영향으로
흐리고 비가 내리겠다는 예보에
모든 산행이 취소되어
컴 앞에 앚았다.
비는 그렇게 크게 내리지는 않으나
어둑한 채로 그냥 추적거리고 있다.
어제 돌오름 가려다
무심코 길을 잘못 들어 돌아오는 길에
난만히 피어 있는 물매화를 만났다.
물매화는 범의귓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뿌리잎은 잎자루가 길고 원심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원대에 달린 잎은 잎줄기가 없으며 원대를 감싼다.
꽃줄기는 길이 10~40cm 정도이고 털이 없으며
능선이 다소 있고 한 개의 잎과 한 개의 꽃이 달린다.
꽃은 7~8월에 백색으로 피고 지름 2~2.5cm 정도이다.
열매는 삭과이며 넓은 난형(卵形)이다. 주로 산지의
볕이 잘 드는 습지에서 자라며
북반구의 온대에서 아한대에 걸쳐서 분포한다.
♧ 성에꽃밭에서 - 김정희
어떤 물소리가
밤새도록
창문에 매달려 있었다 그 때는
그가
내게로 들어오는 중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였다
아침에서야 알았다
그가
밤을 새워
유리 속으로 환한 꽃밭 한 채
밀어 넣었다는 것을
나는 한동안 꽃밭을 거닐었다
내 손끝이 만발한 물매화에 닿았을 때
해가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꽃 모가지들이 뚝 뚝 부러졌다
꽃잎들은 찢어져 이리저리 흩날렸다
나는 사라져버린 꽃밭 가운데 망망히 서있었다
내 가슴 저 밑바닥으로
꽃밭 한 채
흘러내리는 소리 들려왔다
♧ 꽃을 보며 생각하네 - 이정자
얼레지를 보며
저리 곱고 아름다웠던 내 청춘의 봄은
언제였던가, 하고
길모퉁이 고개를 빼고 피어있는
산나리를 보며
저런 열망의 계절
기다림의 시절이 내게도 있었던가, 하고
물매화를 보며
맑고 깨끗한 가을
저리 단정한 모습이
나의 삶에도 깃들었는가, 하고
♧ 빠져나간 자리 - 강수정
짧은 굴속에 있는 너를 끄집어내고 싶다
푸른 머리카락 일 때부터 끈적끈적
내 몸 속에 빠져 발버둥치는
목구멍으로 작은 불빛 스며들자
내 몸 속 스르르 밟고 담 넘어 가는 영혼
시간의 꼬리였다 날아오는 소문에
너는 거실의 불빛 따스하고
식탁의 인형이 일곱 개가 된다나
여자의 깔깔거리는 웃음
너는 왕이 되어 은 쟁반 굴리며
마당놀이 한 판의 주인공이 되었구나
너의 몸 한 번도 포개 넣어 본 적 없는데
내 혈관 속에서 늙어 가고 있구나
끈적이의 누런 발톱 사이로 물매화 필까
하얀 머리카락 된 너를 끄집어내어 서쪽 하늘 작은 별을 만들었다
내 몸 속에는 강물이 모든 구멍을 통해 넘쳐흐른다
♧ 물매화 - 미산 윤의섭
산 중턱 바위틈
가녀린 꽃대롱에
단아하게 피었네
바람 소리 들으면서
결백의 고고함을
피어 올렸네
하산길 눈에 띈
물매화의 잔영이
겨울 다하도록 기억 되는 꽃.
♧ 물매화 인생 - 김승기
결국 여기까지 왔어
슬퍼서 아름답고
아파서 즐거운
詩야
꽃아
고마워
사군자에 들지도 못하는
자격 없는 이름으로 가면을 쓰고
선비 흉내를 내며
고고한 꽃 한 송이 피워 보겠다고
황사바람과 장마와 땡볕 태풍에 휘둘리며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어
하얗게 펼치는 해맑은 꽃잎으로
저리도 높푸른 하늘 보려고
가을장마 그렇게 길었나 봐
미안하다
사랑한다
눈물 나게 아픈 내 인생아
이유없이 외롭게 아픈 날이 많아
때론 분하고
때론 서러웠지만
그래도 가끔은 기쁜 날 있었어
언제나 곁을 지키며 행복을 주는
詩야
꽃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