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에 내보내는 말오줌때
방송국에 녹음하러 갔다가
문득 한라수목원이 궁금하여
이왕 그쪽으로 간 김에
운동 삼아 그곳에 가서 걸었습니다.
입동立冬의 공원을 돌아다니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말오줌때.
꼬투리 속 빨간 색에
까만 열매가 돋보입니다.
이번에 오름 3기와 함께
뭍 나들이 다녀 오겠습니다.
오늘 아침 비행기를 타고
청주로 올라가
대둔산엘 오르고
내일은 계룡산을 걸을 예정입니다.
물론 단풍은 거의 졌을 테지만
남아있는 것들과 겨울을 앞둔 산풍경이
우리를 반겨 줄 테지요.
♧ 첫날(11월 8일 토요일)
* 대둔산
입장매표소 - (케이블카 또는)동심바위 - 금강구름다리 - 삼선계단 - 마천대(정상) -
용문골삼거리 - 칠성봉전망대- 용문골매표소
♧ 이튿날(11월 9일 일요일)
* 계룡산
갑사 - 갑사계곡 - 연천봉 - 문필봉 - 관음봉(정상) - 자연성릉 - 삼불봉고개 - 남매탑
- 동학사삼거리 - 동학사주차장
♧ 입동 - 김귀녀
한낮은 단풍잎처럼 빨갛게
물이 든다
부푼 가슴 다독이며
속으로 갈무리하는
하루는 그녀의 몸 위에 가만히 눕는다
겨울 속으로 가기위해
재충전하는 아름다운 날
백담사를 오르는 길목엔
수런거리는 가을빛
따뜻하게 달궈진
단풍잎들은 반짝이는 손을 흔든다
어수선하던 마음도
쉴 틈 없이 바쁘던 시간도
아픈 영혼도
단풍잎처럼 빨갛게 물이 든
늦가을의 한 낮으로
그녀는 빨려 들어간다
♧ 시간의 빛깔 - 최일화
나무마다 제 빛깔로 물들고 있다
밤나무는 밤나무의 빛깔로
떡갈나무는 떡갈나무의 빛깔로
젊어선 나의 빛깔도 온통 푸른빛이었을까
목련꽃 같던 첫사랑도
삼십여 년 몸 담아온 일터도
온통 꽃과 매미와 누룽지만 같던 고향 마을도
모두 제 빛깔로 물들고 있다
늙는다는 건 제 빛깔로 익어가는 것
장미꽃 같던 정열도 갈 빛으로 물들고
농부는 흙의 빛깔로
시인은 시인의 빛깔로 익어가는 아침
사랑과 미움, 만남과 헤어짐
달콤한 유혹과 쓰디쓴 배반까지도
초등학교 친구들의 보리 싹 같던 사투리도
입동 무렵의 빛깔로 물들어가고 있다
♧ 아름다운 동행ㆍ21 - 李順姬
-내장산 가을로의 여행
일상의 익숙에서 벗어난
입동 하루 전 내장산은
불꽃놀이 터뜨리고 있었다
타올라라
단풍이 서러운 아픔의 꽃이라는 걸......
눈이 시린
마지막 불꽃놀이는
화려하다 못해 서러웠다
땀으로 오른
675m 연자봉 정점에 서서
내려다 본
저 봐라, 극한상황에서 태우는 사랑,
따뜻한 눈물 꽃 되어
만추의 서정을 빚지 않는가
더 타올라라
아직 가시지 않는
단풍 냄새 묻어난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동행은
영혼의 불씨 되어 시작되고 있었다.
♧ 화려한 외출 - 권오범
어제까지 을씨년스럽게 지짐대던 하늘마저
무엇이 거짓말처럼 파랗게 닦아놓은 아침
터널을 빠져나가자 목욕재계한 벚나무 은행나무들
환영의 박수가 알라꿍달라꿍 왁자하다
한살이 채 안된 애마도 덩달아 신이 나는지
아나콘다처럼 햇볕 쬐고 누워있는 아스팔트를
근력 좋게 꿈틀꿈틀 끌어당긴다
인공폭포가 호객하는 호텔 커피숍 창가에 앉아
추색이 모락모락 아른대는 커피 홀짝거리다
삭도타고 거지중천 질러 승천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오매오매 환장할 천국
내 어찌 이런 별천지 방치해 두고
담배연기에 찌든 바람벽안에서
고리타분한 언어들과
입동이 기웃거리도록 겯고틀고 앉아 씨름했던가,
비거스렁이가 닦아내는 만추의 수채화를
한 시간여 눈이 씀벅씀벅하게 담아 내려오니
동명으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단풍천지
꿈에서 만난 천국행 무지개 아취 닮았다
기척도 없이 친구네 포도밭 습격했더니
제수씨가 돌확 가마솥과 합작했다는 도토리묵
살 떨리게 숭덩숭덩 저며 내
간장 쳐 먹고 희희낙락 허비한 하루
♧ 입동(立冬) - 박금숙
살얼음을 타고
잘도 왔구나, 겨울은
상강霜降을 맨발로 지나온
아직은 얇은 외투차림인데
어젯밤 된서리에
꽃잎처럼 찍어놓은 까치 발자국
아침을 물어 나르는
발끝이 시렸나보다
바지랑대 타고 오르다
수척해진 나팔꽃 줄기
가는 허리를 단단히 졸라매고
못 다한 말처럼
여문 씨앗을 뱉어내는데
먼 길 떠나온
벌판 같은 마당 한 편에
싸늘한 아침빛이
계절의 경계선을 긋고 있다.
♧ 쑥밭재를 그리워하여 - 권경업
입동(立冬) 이후
달아나는 새벽잠에 눈은 더 침침해져
골골 앓으며 야위던,
내 떠나온 거리는 아픔이었습니다
오늘,
등뒤로 그대 멀어지던 조개골 거슬러
손 뻗으면 잡을 듯한 치밭목에서
청명곡우(淸明穀雨) 한 폭 수채화 같은 모습
마음속 환히 담아가려는 일
부질없는 짓인 줄 알지만
다시 고개 떨구고 하산할 내 등뒤
늘 넉넉한 자태로 우뚝할 그대를
아련히 두고 바라보다가, 간혹
새벽잠 달아나는 품속
조용히 꺼내보고 싶은 때문입니다
♧ 입동 - 이명기
바람이 몹시 불어 코끝이 어는데,
빈손 쫙 펴 들고 먼 곳을 배경으로 섰습니다.
다 쓰러진 세상엔 더 이상 흔들릴 것이 없습니다.
거울처럼 잘 닦여진 풍경 속으로 자꾸 얼굴 감추는
길을 갑니다. 이 길 끝에는 드문드문 까치밥이 어는
몇 채의 집과 샛강 건너 돌담을 쌓고,
저물 무렵엔 낮은 지붕 위로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입니다. 몇 남은 잎에 내려온 햇살같이,
기다림이 끓고 있는 곳으로, 이제 한동안
당신을 만날 수 없음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