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꽃, 팔손이
오늘 같은 날 ‘겨울꽃’ 하면
눈꽃을 상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침에 어깨를 잔뜩 움추린 채
차 타러 가는데
휘날리는 눈속에 피어 있는 꽃
바로 팔손이었다.
아마도 아열대에서 자라기 때문에
이 시기에 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
참 딱하다고 여겨진다.
그래도 열심히 꽃을 피우고
봄이 되면 까만 열매를 맺을 것이다.
♧ 겨울 들꽃 - 오보영
네 모습이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청초한 얼굴로
눈 쌓인 들녘
양지바른 모퉁이에
살포시
겸연쩍은 표정 다소곳한 자태로 곱게 피어올라 있는
네가
너무 아름답고 대견스러워
가슴속 깊게 새겨진 너의 잔상이
좀처럼
지워지지가않는다
♧ 겨울꽃 - 박종영
산 오르는 길
허튼 바람에 싸락눈 내리다 말다,
눈 위에 여럿이 지나간
산새 발자국이 시리다
눈가에 싸락눈 한 개 툭,
차가운 느낌으로 내려앉는다
스르륵 녹아내려
마음 안에 서러운 강으로 흐른다
눈발은 그치지 않고
기쁨으로 찾아갈 첫봄의 길목에는
덜덜 떠는 망개나무 붉은 열매가 안쓰럽고
아직 떼 묻지 않은 첫새벽을
싱싱한 초록의 웃음으로 씻어내는 겨울꽃,
아침 햇살을 잘게 부수며 으스댄다
♧ 겨울꽃 - 권영민
계절 끝
시린 바람 이고
눈꽃을 피우는가
샘물되어 흐르던
너의 연가
데리고간 눈바람 속
눈물 접어두려는
애틋한 심경
황량한 들길에 서서
먼 하늘 바라보다가
어두운 터널을 뚫고
여명을 불태우는
계단을 오르며
아픔을 사르는
애끊는 정절이여!
♧ 겨울, 들꽃인들 어떠랴 - 장성희
온몸을 떨면서
지상으로 피운 꽃잎
단지 그늘에 피었다 하여
봄 향내 일지 않았다 하여
돌아서서
시린 잎새를 뚝뚝 떨구느니
씨방 안에 남모르는 종기 돋느니
우리 이 겨울 속에서
빈 들을 젖어 흐르는
작은 눈꽃이면 어떠랴
손목 차가운 열매에
심장을 데히느니
조금씩 덜 차오르는 속눈물로
가라앉히는 파도로
끝내 간직한 봄의 불씨로
우리 멀리 돌아 흐르는
깊은 강물이면 어떠랴
♧ 겨울꽃 - 강신갑
이 혹한에 꽃이 보고 싶다.
봄이 오면 겨울에 피는
꽃나무를 심으리라.
하얀 눈도 꽁꽁 언 살을 에는 추위
마음 녹이는
고결한 꽃이 보고 싶다.
엄동설한에
다스운 향기 흩날리는
청정의 꽃
봄이 오면
동장군에도 지순한 송이 드러내는
아름다운 꽃나무를 심으리라.
♧ 겨울 꽃 - 박정순
겨울 꽃으로만 피어나야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
머무르지 않고
취하지 않고
걸어가는 생이 어디 있으랴
겨울에 피는 꽃이어야만
따스함을 알 수 있다
바람 불지 않고
비 내리지 않는
길이 어디 있으랴
거센 물결 이는 강가에 외로이 서 있는
겨울 꽃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
은빛 보석의 햇빛가루가
내 맘 속에 들어오면
어디쯤에 자리를 내어주랴?
겨울꽃이어야만이
그리움을 안다
봄날이 없이
여름날도 없이
결실 맺는 가을이 어디 있으랴
언덕 길 없이
굽어진 길없이
걸어가는 생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