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전날에 가본 바다
어제 답사 갔다가
내려가 보았던 중문해수욕장,
마침 겨울 햇빛이 내리비치는 바다.
거의 여름 수준의 모습에
누가 써놓았는지,
모래 위에 새긴 이름이 정겹다.
한쪽 구석
해녀 아주머니들이 파는 소라를 사 놓고
마셔보는 소주 한 잔.
동지 전날
눈 펄펄 내리는 평화로를 지나면서
얼어붙은 가슴을 녹였다.
♧ 남쪽바다 지금은 - 소산 문재학
코끝을 간질이는
우수기(雨水期)의 실바람에
무거운 마음 털어
해풍에 실어 보내는
남녘바다
윤기 흐르는 잎새 사이
선홍빛 동백꽃에
가벼운 감흥이 일고
온 누리에
피어오르는 봄 향기 속에
갈매기 군무(群舞)도
파도가 밀어내는
하얀 포말(泡沫)에도
짙어가는
자연의 숨소리
만물이 기지개 켜는
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 겨울바다 - 오경옥
무슨 말이든 전할 수 없을 때
어떻게든 주어진 상황과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때
기다림에 가슴 먹먹하도록 그리워질 때
침묵해야 한다고 생각될 때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다름과 차이 앞에서 혼란스러울 때
존재에 대한 정체성 앞에서
갈등과 번민에 휩싸일 때
그래도 견디어야 한다고 생각될 때
달려가곤 했었지
무작정
♧ 겨울 바다 - 김근이
바다 끝으로
칼바람 타고
내려오는 오색 무지개
바다와 하늘을 잊는
다리를 놓고
외로운 마음들을
건너게 하는
겨울 바다
무섭도록 몰려가는 바람에
날아오르는
하얀 물보라 위로
다소 곳이 내리는
성 서러운 태양빛
그 황홀한 고독의
겨울바다
♧ 겨울바다 2 - 권오범
허름한 목로주점에 앉아
해바라기처럼 피어난 숭어회
고추냉이에 탁해진 간장에 찍어 오물거리는
입춘지나 우수로 가는 길목
옷고름 풀어헤치고
뜨거운 미소 흘리다 추락해
철없이 뒹구는 창밖 동백꽃 사연들을
파도가 게검스럽게 삼켜버리는 한낮
수평선너머 막 출발했을 봄이
유통기한 다해 머뭇거리는
동장군 끄나풀 만나
겯고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까부터
모래톱 따라 피고 지는 메밀꽃밭에 발 담근 채
하늘 우러러
땟거리 걱정하는 갈매기들
♧ 겨울바다 - 김귀녀
어느 날 문득
바다가 그리워 내 곁에 온 사람들
아픔의 무게만큼 고된 삶의 끈
마음껏 풀어놓고
겨울바다에서 기도한다
바다는 사람이 좋아
모래사장을 넓게 펼쳐주고 그들을 뛰게 한다
웃는 소리가 바다 가득 차기를 기다리면서
바다는 사람들을 부른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부른다
기도가 깊이깊이 빠져들기를 바다는 원한다
바다는 아픈 사람을 더 기다린다
넓은 가슴 펼치고
푸른 물을 쳐대며
푸르게 더 푸르게 살아 보라고
나처럼 힘차게
자신을 차면서
나가보라고 말한다
♧ 겨울바다 - 서경원
파아란 하늘이
살포시 내려와 앉은 바다
촘촘한 햇살들 은빛 물결 위에 춤추고
속살 드러낸 바다 까르르 웃을 때마다
창백한 낮달 한 발자욱씩 멀어져 간다.
갈매기 한 쌍
소금기 어린 날개 부비며
목이 쉬도록 부르는 겨울 연가
파도에 실려
그대 계신 꽃섬까지 날아가려나
온 몸에 푸른 상처를 내며 파도는
모래를 쓰다듬고
바위를 끌어안는다.
사랑은 가고
그리움만 남은
빈 바다
은빛 햇살만 출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