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에
어제는
1년 동안 진행되었던
오름 길라잡이 과정 8기의
수료식이 있었다.
처음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찬과 2차까지 즐겁게 이어졌다.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모여서
오름 가꾸기 활동을 하자면서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는 걸 보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보단
내일을 기억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인생길에 얼마나한 위로인가를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 아침에 일어나서 문득,
고등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친 35년,
어른들에게 오름을 가르친 8년,
속절없이 세월을 보내진 않았구나 하면서
축복 받은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사라오름 설경을 올린다.
♧ 성탄 전야(前夜) - (宵火)고은영
깊어지는 새벽의 얼굴에
천금 같은 당신 사랑이
도심의 쇼윈도에 좁은 골목에
황금으로 도금되어 거리마다 가득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부자들도 당신을 좋아하는 걸 보면
하얗게 지새는 밤의 시간마다
깊어진 계절 위 당신 발걸음 소리
밤새 당신 오시는 길 밝힐
함박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세찬 바람처럼 흔들리는
우리의 이기적인 사랑과
욕심으로 넘친 겨울 깊은 봉분에서
연약한 눈빛에 살아온 세월만큼
존재가 발가벗겨진 부끄럼 앞에
세상이 미워지는 날
미움의 몸통으로 가난한 울음에 젖은
작은 가슴만 남아 지친 이즈음
환한 빛으로 세상을 향해 걸어 오는 당신
부족한 허물을 덮으시며
생명의 빛으로 옷 입히시네
벌겋게 발화되는 그리움의 앞섶마다
잃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들추는 당신
시간이 익는 소리에 밤새 함박눈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땡그랑, 땡그랑”
납덩이같이 무거운 영혼에
당신 오시는 그리운 종소리에
사랑의 눈꽃이 만발하고 잔잔한 평화가
영혼의 구석마다 소복이 쌓였으면 좋겠다
♧ 성탄전야 - 정재영(小石)
별빛이 내려온 길 따라
하얀 굴뚝연기는
하늘 향해 올라가던 날
눈송이들이
종소리의 파장을
호위하며 내리던 밤
별들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들짐승도 놀라서
쳐다보던
유리알처럼 차가운 밤
사람, 사람들만의
방 속에는
자기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소란으로 휘장을 쳐서
열기로 가득 채운 밤
♧ 크리스마스이브 - 임영준
성탄전야는
청춘을 일으킨다
아이들도
덩달아 빛난다
축복을 타고
거리를 떠다닌다
서로 배려하고
은총에 겨워 달아오르면
구원으로 우는 자선냄비가
세상을 일깨운다
온 누리 가득
천상의 전령을 부르고 있다
♧ 성탄 전야 - 양해선
너 없는 울이라서
고독한 밤
아픈 마음 헤아리며
거슬리는 밤
모음 없는 문자들 짜맞추며
그리움에 사무친 밤
어둠은 길고 깊은듯해도
첫 아기를 낳았던
그날의 아릿한 희열 떠올리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내일은 너의 품에 안겨
불은 젖을 먹고 배부를 것이니
지난날들이 서러울지라도
오늘밤만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새벽송이 울려 퍼지고
동녘 하늘이 열릴 때까지
살손 붙여 기도하리라
♧ 음악을 부른다 1 - 한택수
-첫눈
(리듬이 없다. 그것이 없다는 것은 삶이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눈은 명동(明洞) 언덕을 점, 점, 점... 내리고 있었고, 나와 그는 잠자리를 잡듯 눈을 잡으려고, 잡으려고 손을 내었다. 손바닥을 새어나가는 저녁 어스름과 눈빛 언어들, 그리고 내 작은 자유(自由)의 웃음!
눈은 자꾸 내리었다. 저 멀리 희미한 책갈피에서 명동 언덕으로 성당 종소리로 내 마음의 구석으로 눈은 소리 없이 내리었다.
내리는 눈은 희고 맑게 나를 비추이며 젖어들었다. 나는 하나의 과거의 석상(石像)이다. 잊혀진 등어리이다. 아니 나는 현재의 나일 뿐 과거나 미래는 없다. 눈은 다만 내리는 것이다.
시는 순간을 노래하는 것이다. 순간의 음악을 붙잡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눈이 오고 있다.
♧ 청춘의 이브를 추억하다 - 강효수
함박눈이 게으른 별처럼 내리던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브
청춘의 벙어리장갑은
한 쌍의 포메라니안이었습니다
청춘은
벙어리장갑 안에서 깍지를 끼고
둘만의 눈길을 걷고 또 걸었어요
밤
설경이 그림 같던 카페
촛불과 칵테일이 잘 어울리던 창가
청춘의 체리 블러섬과 마가리타
그리고 눈빛
아름답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그날 밤 알게 되었습니다
청춘이 갈 곳은 정해지고 말았습니다
그저 하얗다 할 수밖에 없었던
눈 덮인 저수지
청춘은
벙어리장갑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조금은 차가운 입술이 무척 좋았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눈사람이
신비로운
눈사람이 하나 태어났어요
아름다운 둘만의 비밀이 태어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