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압화로 피다 - 이윤승

김창집 2015. 1. 18. 07:44

 

 

 

제주작가회의 2014년

신인상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완도 출생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한라산 문학동인 이윤승 씨가 그 주인공이다.

 

‘장황하게 떠들어대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시를 이끌어나가는 힘이라든지,

아름답게 승화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애정이랄까

연민 같은 것이 행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시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는 평과

 

‘숲을 보기 위해서는 걷고 또 걸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사물이 말을 걸어오지 않아도

오래 바라보면서 말을 걸어보려 노력하겠습니다.’

라는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당선 시를 압화 대신

나무에서 찬란한 생명을 살고

깨끗이 떨어져 물위에서 놀고 있는

동백꽃과 같이 실어봅니다.

   

 

♧ 압화로 피다 - 이윤승

 

팔월 땡볕 아래

토룡土龍 한 마리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다

소낙비에 집이 수몰되었을까

길을 잘못 든 것일까

허리 굽혀본 일 없는 전봇대 헛기침만 하고

몸소 바닥을 보이신 보도블록은 모르는 채

먼 산만 바라보고

빈터의 늙수그레한 담장이 낡은 옷깃을 세워보지만

그늘을 넓히지 못한다

빈틈없이 내리꽂히는 화살촉 햇살들

간간이 몸을 뒤채보지만

예고된 절명이다

제 한 몸 가려줄 단단한 껍데기 없고

번데기도 되지 못한

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길 밖의 길은 수천 낭떠러지인 줄 모르는

여리고 가느다란 몸뚱이

각 없는 몸으로 유연하게 살던 한 생애가

뜨거운 시멘트 바닥 위에

서글픈 압화로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