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피어버린 매화
아침에 오름으로 가면서
언뜻 차창 너머로 보였던 환하게 핀 매화.
환상이 아니고 정말로 하얗게 피어난 그 꽃들을
돌아오는 길에 다시 가 확인해보니,
피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난 모습이었다.
그냥 매화도 그렇고
홍매화도 그렇고
심지어 청매까지 한두 송이씩 피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봄을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바닷가가 아닌 중산간
하늬바람 의지가 아닌 바로 길가
그런 곳에 꽃이 피었다는 것은
이미 이상난동의 봄이
제주섬 곳곳에 와 있다는 얘기다.
꽃이 피어 있는 곳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설운동장에서 오라지역으로 가서
새 KBS방송국 옆 고지레교 남쪽
제주중앙교회 위쪽 울타리를 보면 하얗게 보인다.
그냥 렌즈로 찍어 보기에 좀 거시기 하지만
화신(花信)을 담아 전국의 독자들에게 내 보낸다.
♧ 그리운 꽃편지 5 - 김용택
밖에 찬바람이 붑니다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은
당신이 그리워
찬바람 소리 들리는
겨울 산에 갑니다
겨울 찬바람 속에서도
꽃망울들은 맺혀 꽃소식 기다립니다
오셔요
꽃망울 터뜨릴 꽃바람으로 오셔요
꽃바람으로 저 푸르른 산맥을 넘어
그대가 달려오면
나도 꽃망울 터뜨리며 꽃바람으로
저 푸르른 산맥을 넘어
찬바람 속을 뚫고 달려 가겠어요
밖엔 찬바람이 붑니다
이렇게 바람 불어 당신이 그리우면
당신을 찾으러
숨찬 겨울 산을 몇 개 더 넘습니다
♧ 망울 터뜨리는 봄 - 손병흥
길 위 봄 햇살 아픈 그리움
푸른 날개 돋듯 미풍 되어
마른 가지 꽃샘추위 달고서
온 몸 가득 졸음 덕지덕지 묻혀
질긴 생명 흔들어 고갤 내민다.
간밤 목축인 움트는 새싹들
겨우내 길러낸 버들강아지 꿈
빗질해 보낸 듯 고운 바람결 따라
아지랑이 가슴앓이도 풀어버리고
부푸는 몽우리 봄 맞는다.
짧은 생이라도 추억 소중한 것
춥고 길었던 겨울 쫓아내듯
훌쩍 떠나 뜻하지 않게 만나는
속살거리는 봄비 그친 산봉우리
고개 들어 봄바람 흠뻑 마시면
남녘 꽃소식 속절없이 길손 된다.
♧ 어머니(1) - 허명(허광빈)
한 세상 살면서
삶의 樂이 없다 하시더니
그것이 뭔지 알듯 하였는데
슬픈 노을빛에 그만
속을 맴도는 아픔도
그리움을 찾고 말았습니다
올 겨울엔 왠지 눈도 그리 오지않고
어디에선가 꽃소식이
내 서러운 마음에 눈물로
올것 만 같습니다
허욕(虛慾)과 허물 가득한 세상을
잠시라도 잊으시고
해지면 돌아 오실줄 알았는데
희망을 폈다 접는 막내의
하루하루가 고통 이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하얀 꽃이
피어있는 것을 만나도
눈물이 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묻고서…
♧ 바람 불어 좋은 날 - 김설하
가슴속 무수했던 시어들
정착하지 못하고 날아간 하늘 끝
떠난 것들은 모두 거기 모였다가
산자락마다 정열을 쏟는지
풋풋한 연애가 방그레 피네
나뭇가지 사이 불한당처럼 쏘다니더니
따스한 온기와 소리의 정체를 따라와서는
꽃소식 물어와 가슴속 빼곡히 언어를 재이고
고고한 미소로 화답하는 바람 불어 좋은 날
살며시 다가와 고운 노래 불러주고
눈부신 햇살 내려와 옆구리 긁으니
움트는 모든 것들은 수줍고 간지러워
양지쪽 개나리 울타리에도 까르르 웃음 번지네
♧ 매화 송 - 박종영
여린 봉오리 감추며
두려운 눈치다.
초경 치른 처녀 오돌한 젖꼭지같이
붉으스레 잔가지에 매달려
희망을 주는 꽃망울,
저거, 더디 오는 세월 조급해서
혹독한 삼동,
비밀하게 이겨내고 저리 낯을 붉힐까?
한 생애 불꽃으로 다스리는 너,
싱싱한 그리움의 향기 품어대면
자지러지게 넘어질 우리,
산맥 같은 네 둥근 가슴이야
어찌 탐하지 않으랴.
♧ 매화서신梅花書信 - 서봉석
매화가 꽃 피웠단 소식에 겨울 가는 줄을 알고
꽃잎 우려 차 낸다는 말에 봄이 온 것 알겠습니다
풀기 없는 가지에 달이 떠도 마중할 꽃이 없고
봄이 와도 반가움 모자란다 할까 두려워서
추워서 빨개진 볼이 아니라 열 불 난 꽃 뜨거움으로
기어이 눈밭을 벗어나며 소리소리 터지던 매화
진정 봄을 그리워 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북풍한설
찬 겨울을 이겨낸 햇빛을 봄으로 보내는 일이
사랑하는 마음에 도화선을 심는 일인 줄 알아서
매화 피었단 소식으로 눈웃음 시작하는 산천초목
꽃잎 띄워 차 끓인다는 말이 가슴을 쳐서
눈 날리는 때의 그 쓸쓸함조차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