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조 제22호와 광대나물꽃
♧ 탐라산수국 - 손영희
네 거처를 찾아가는 나는 파랑나비
무심을 되새김하는 소잔등에 얹힌 나비
안개는 분화구에서 전설처럼 피어오르고
네 들숨 내 날숨으로 하늘 그물 엮어서
목동아, 우리 지극한 사랑이 될양이면
저기 저 쏟아놓은 별 지금 막 승천중이니
♧ 해금 - 김남규
또 다른 살 속으로
파고드는 맨살이다
마찰과 마모 사이
켜는 것과 켜지는 것
몸속에
갇힌 폭풍을
서로에게
겨눈다
어둠이 활을 안고
뒤쫓는 우리의 밤
끝에서 끝으로
눈물 없이 울어도
밑줄로
음 높이는 위로들
꽃잠으로
흩어진다
♧ 수화手花 - 김영주
두 모녀 전철 안에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소리 없어 더 눈부신
상처 어르는 저 손의 말
꽃잎을 다 떨어뜨리고
숨 돌리는
손가락
♧ 겨울 한라산 - 이용상
인적 없는 세상 같아
창문을 살짝 열면
눈 내리는 한라산을
활공하는 검은 새
천지간
비워둔 마음을
물결치게 하고 있다
왼종일 방에 갇혀
텔레비전 마냥 본다
폭설에 산도 숲도
동양화로 나앉고
한라산
갈까마귀가
풍경 속으로 사라진다
♧ 산수국 - 김향진
장마철 산수국 피면
마음은 산 향한다
가뭄 끝에 오는 단비
주름진 잎 펴지고
헛꽃에 시간까지 내줘
불쑥 눈물 흘린다
♧ 겨울 억새 - 김연미
적자 계산 메꾸기 위해
머리숱 다 빠져버린
십오 도쯤 고개 숙인
억새들이 서 있다.
북서풍 목소리 높이며
먼 들판을 깨울 때
고위직 소나무들
슬금슬금 붉어지는
방제선도 뚫려버린
적자생존의 저 들판
침묵의 느낌표들이
다수결로 서 있다.
♧ 집게 1 - 강애심
어떤 바다 어떤 인연인지 저 사수포구는
비행기 뜨고 지고, 집 한 채 꿈 뜨고 지고
활주로 이탈한 파도 집어등을 켜든다.
포구 돌틈 사이 내 손에 쥐어진 인연
꼼지락 꼼지락대는 집게발 게들레기
밤사이 잠 못잔 아이 발가락 꼼지락대듯
아들이 돌려보낸 집게를 반겨맞아
선천성 심장병으로 출렁이던 저 바다도
이윽고 빚을 갚은 듯 다시 뜨는 수평선
♧ 섬 산수국 - 한희정
어젯밤 사락사락 예까지 내린 별이
접이우산 펴기도 전에 소낙비를 맞았네
나무꾼 그 눈빛 같은 푸른 옷이 젖었네
사람찾기 사이트도 나무꾼 행적 몰라
올레꾼 눈맞춤에 행여 따라 나설까만
소금끼 눈물 꼭 찍는 저기, 저 꽃 흔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