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남대희 시집과 서향

김창집 2015. 2. 28. 14:24

 

 

서향이 소문 없이 피어

향기를 흘리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 채

은근한 꽃잎의 색조를 반이나

흰빛으로 열어젖혔다.

 

서향은 팥꽃나뭇과에 속한 상록 관목으로

키는 1m쯤 되며 잎은 잎자루가 없이 어긋나고,

3~4월에 흰빛 또는 붉은 자주색 꽃이 가지 끝에 모여 핀다.

대개 수나무이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여 꺾꽂이로 번식한다.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남부 지방에서 가꾼다.

 

남대희 시집에서 시를 몇 편 옮겨

사진과 함께 올린다.

 

 

 

 여름 햇살 - 남대희

 

 

개울물

아랫마을 마실가는데

여름 햇살

아장아장

따라나서다

 

징검다리

폴짝

건너뛰려다

개울물에

퐁당

빠져 버렸어

 

꼬르륵

거품 내며

잠수하다가

소금쟁이

발목 잡고

기어 나와요

 

보글보글

물거품

터질 때마다

톡톡톡톡

튀어나온

싱싱한 햇살

 

송사리 떼 화들짝

산그늘 숨고

개울물 가물가물

터진 웃음보

   

 

♧ 저물녘

 

 

노을이 선홍빛으로

열꽃을 피우더니

금세

검버섯 핀 얼굴로

서산마루를 넘네

 

가로등 하나 둘

조등처럼 피는데

 

빈병 달그락거리며

헌 유모차 하나

호미몸 아슬하게 매달고

언덕길을 넘네

  

 

♧ 달빛사냥

 

 

푸른 달빛이 날가지 끌에서 떨고 있다

시린 바람 끝이 소매 깃을 파고들고

하늘가, 아스라한 별빛이 꿈처럼 내리는 밤

 

아버지 괭이 던지는 소리

불꽃을 튀기며 일어서는 날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쪽마루에 도달하기 전에

사립문을 밀고 뛰쳐나오곤 했던 옛날

 

텅 빈 들판엔 달빛만 부유했었다

베어낸 볏자리마다 반짝이는 보석을 심고 있는 달빛,

그때 달은 누렇게 데워진 아랫목이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 달빛 금침을 덮고 온갖 꿈들을 꾸곤 했었지

(그때 꿈은 아직도 꿈으로 남아 있지만)

 

아버지 몸에서 술 냄새 대신 약품 냄새가 나면서

달빛은 더 이상 부유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달 하나 뱃속에 넣고 떠나시고

도시의 파리한 전등불이 달빛을 대신하면서

꿈은 가로등 그림자 속으로 숨어버렸지만

 

지금도 차가운 겨울밤이면 빈 들판에 보석을 박고 있을 달빛,

그 사냥을 꿈꾸는 것이다

   

 

♧ 어머니의 길

 

 

“꽃가마가 져짝에서 이리로 왔는디,

여짝에 함박꽃이 얼마나 환했는지 몰라야“

곱추 등짝 같은 모퉁이길 가리키며

엄니 숨길은 늘 가팔랐다

 

수도 없이 돌고 돌았을 모퉁이 길은

시커먼 아스콘을 바르고도 곧게

펴지 못했다

 

읍내 장날,

굽은 등 펴고 싶으셨을까

모퉁이도 없는 대로에서 그렇게 쭉 펴고

누우셨는지

 

꽃가마 대신 검은 리무진 타고 돌아오시는 모퉁이에

함박꽃 대신 칡꽃이 조등을 들고,

미루나무 하얗게 하늘길을 열고 있다

   

 

♧ 문신

 

 

  갈매기가 하늘을 파며 분주한 한낮이다 접영으로 달려온 파도가 허옇게 머리를 풀고 따개비 다닥한 갯바위를 걷어차고 있는, 낚시꾼이 건져 올린 젊은 사내는 시위를 당기 듯 팽팽하게 휘어져 있다 푸른색 화살이 마약같이 창백한 사내의 팔뚝을 관통하고 ‘재숙’이라는 이름이 푸른색으로 박혀 팔뚝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의 화살은 과녁을 맞춰 본 적이 없다 자신이 과녁인 것을 알지도 못했다 깊고 은밀한 비밀 한 토막 멈추지 않는 파도에도 지워지지 않고 첫경험 자국같이 남아 있는 바위 끝에서 마지막 화살을 쏘아 올린 것이다 아득한 바다 속 가자미같이 엎드려 있던 ‘재숙’이가 고래등 분수같이 솟아오르더니 화살에 매달려 수평선 너머로 날아갔다 하늘은 갈매기 날개만큼 더 깊어지고 파도는 어느새 배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갈기를 세우며 달려 온 싸이렌 소리 사람들이 시위를 떠난 화살을 찾기라도 하려는 듯 분주하다.

 

  화면을 빠져 나온 사내가 ‘재숙’이의 손을 잡고 거실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마당엔 비가 내렸다, 여우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