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우리詩 4월호의 시

김창집 2015. 4. 4. 22:50

 

  ‘우리詩’ 4월호가 나왔다. 권두시는 우리가 잘 아는 박목월의 ‘윤사월’로 시작된다. 박정래 시인의 ‘권두 에세이’로 ‘시詩와 반려견犬’을 실었고, ‘신작詩 7인 選’으로는 정일남 김희정 최재영 박시영 김미옥 김현주 강옥매의 시를, ‘특별기획 연재 시詩’는 홍해리 시인의 ‘치매행致梅行’을 열한 번째로, ‘기획연재 - 인물 시詩’ 역시 이인평 시인이 네 번째로, ‘테마가 있는 소시집’으로 남유정의 ‘공염불’외 9편을 시작노트와 함께 올렸다.

 

  이번 호에는 특별히 ‘동시童詩 한마당’을 기획하여 임보 홍해리 정순영 이무원 김영호 나병춘 김지헌 홍예영 권순자 김세형 오혜경 채들 이수풀 이재부 이사랑 한문수 박병대 성숙옥 이운상 등의 시인들이 각 2편씩 썼다. ‘시인이 읽는 시’는 이종암과 박승류 시인이, ‘한시한담’은 조영임 교수가, 끝으로 양선규의 ‘인문학 스프’를 실었다.

   

 

♧ 시인 - 박정래

    - 불러보고 싶은 이름

 

때때로

그 시인들이

너무 싫다

시대가 건네 준

파란 독버섯을

먹고 있다

살까 죽을까

 

때론

그 시인들이

너무 좋다

시대를 거슬러

바람의 홀씨를

타고 난다

죽을까 살까   

 

 

♧ 눈물 탑 - 정일남

 

서라벌에 와서

일생이 저물어갔다

 

머리칼이 갈꽃으로 변하고

기다리던 여인이 먼저 갔다

석수장이는 돌을 깎았지만 여인이 가고부터

눈물을 깎기 시작했다

눈물이 돌보다 깎기가 어려웠다

눈물을 자르고 쪼고 갈아

빛을 내는 일에 끌은 무디어갔다

 

석수장이가 세운 것은

돌탑이 아니라

눈물 탑이라 불러야 한다

 

여기 서라벌 하늘의

절차탁마여

   

 

♧ 막막봄날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 106

 

비는 몸을 재끼면서

하늘거리는 몸짓으로, 아프게

팔랑팔랑 내리고

세상을 화안하게 밝혀서

푸석한 가슴속

오랫동안 잊고 살던 그리움 하나

깨어나고 있다

이 비 내리며, 멎으며,

겨우내 그리워하던 목숨들

물오른 목청 틔워 짝 찾아 나서고

모두들 숨이 가빠 색색대는데

수줍은 애잎들 달거리하듯

연둣빛 숨을 토해낼 때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아지랑이

취한 듯 어지러워

죽을 듯 어지러워

아내는 유치원 가고

홀로 남아 집 지키는 막막한 봄날.

   

 

♧ 벚꽃 저녁 - 남유정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와 그대를 흔드는 사이

그대가 막 돋아난 꽃잎 같은 말들을 쏟아내는 사이

언덕 위에 숨어있던 길들이 조잘대며 어둠을 흘려보내는 사이

이토록 순한 저녁을 훗날 무엇으로 기억할까, 물끄러미

그대 뒤에서 바라보는 사이

봄을 입은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웃음이 저녁을

만지며 흘러가는 사이

 

사람들이 나무가 되어갔지요

달이 떴지요

한 무리 구름송이 같은 꽃들이 걸어가고 걸어왔지요

그대가 돌아보며 저무는 하루처럼 웃었지요

 

 

♧ 부처 - 오규원

 

남산의 한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담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눠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 우두커니 나무 - 김선굉

 

일주문 두리기둥처럼 거침없이 위로 솟구친 향나무 한 그루.

이종문 시인이 그대는 왜 여기 우두커니 서 있는가 물으니,

내가 왜 여기 우두커니 서 있는지 그대가 궁금해 하라고

여기 우두커니 서 있다고 대답한 바로 그 나무다.

괜히 자옥산 기슭 옥산서원 뜰에 우두커니 서서

이종문을 궁금하게 한 멋대가리 있는 향나무에게 다가서서,

거친 살결을 짚으며 오늘은 내가 묻는다.

그대, 이 추운 겨울날 여기 우두커니 서서 무얼 하시는가 했더니,

그냥 심심해서 하늘에 대고 글씨를 쓰고 있다며,

이렇게 한 획 그어올리는 데 한 사백년쯤 걸렸다며,

지금도 그어올리는 중이니 말 같은 거 걸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대가 쓰고 있는 글자 대체 무슨 자냐고 했더니

안 그래도 추운데 이종문보다 더 귀찮은 놈이 왔다며,

뚫을 곤자(ㅣ)도 모르는 놈이 시인이랍시고 돌아다니느냐며.

   

 

♧ 창림사지 - 백무산

 

석탑 하나 마주 하고서

저물도록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오늘에서야 처음 본 탑이지만

탑은 나를 천년도 넘게 보아온 듯

탑 그림자가 내 등을 닮았습니다

 

수억 광년 먼 우주의 별들도 어쩌면

등 뒤에 있는지 모릅니다

 

석탑 하나 마주하고 오래 서 있자니

나의 등이 수억 광년 달려와

나를 정렬하고 마음을 만납니다

 

옛사람들은 거울보다 먼저

마음을 비춰보는 돌을 발명하였습니다

   

 

♧ 사다리 - 남대희

 

마른 이마를 기대고 기울어져 보지만

당신은 언제나 벽입니다

 

마디마디 창을 내고

세상을 내다보아도 온통 벽입니다

 

환한 들판을

철길처럼 달리고 싶다가도

조금 다른 모양 때문에 포기하고 맙니다

 

한 칸 한 칸 밟고 올라간 다락방에서

하늘 큰 창 열어젖힙니다

 

큰 창 너머 북극성이 불꽃같이 걸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