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꽃사과 꽃의 향기

김창집 2015. 4. 12. 17:21

 

오름에 가려고

법원주차장 쪽으로 가다가

하얀 꽃 무더기를 달고 있는 나무를 만났다.

 

다가서 보니

바로 이 꽃

꽃사과나무 꽃이었다.

 

은은히 분홍빛이 도는 것 같으면서

하얀 색으로 빛나고 있어

깨끗하고 우아하다.

 

꽃에 품위를 생각한다면

몇째 안갈 것 같다.

   

 

♧ 꽃사과 - 안경희

 

하루를 더 못 견디고 잎들이

하르륵、하르륵、 바람에 져 내렸다.

지상의 목숨들 하나 둘 꺼져가는 소리도

이와 짐짓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들은 울음을 남기지 않고서도 사뿐사뿐 잘도 지는데

떠나가는 사람들은 눈물을 남겼다.

꽃들이야 햇살 만나 그 나무에 다시 피면 그만이지만

우리 한 번도 그리운 사람의 환생을 목격한 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품안으로 은밀히 싹을 내리나 보다.

꽃을 만나 잎처럼、

잎을 만나 꽃처럼、

오늘 나의 뜨락에 올망졸망 과실들이 열고

잠든 아기 손 어느 샌가 꼭 쥐고 놓지 않는

꽃사과 한 알. 언제 주웠을까

자박 자박 걸음마 하며 꿈결엔 듯 다녀왔을까

너무 쪼끔 해서 구슬인양 아롱아롱

잠결에도 놓지 못하는 내 아기 손안에 꼭 잡힌

바알갛게 태열앓는

애기꽃사과.

   

 

♧ 사과꽃 향기 - 심의표

 

드러낸 품새만큼 우련한 꽃빛

그 해맑은 얼굴

곱고 달콤하고 아름다움

누굴 위해 그리 붉게 피어나는가.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고

앙큼상큼 깊은 향내 우려내는데

어느 성화에 못 이겨

임의 속 그리 붉게 불태우느냐.

   

 

♧ 사과꽃 - 이향아

 

6.25 사변이 터지던 몇 해 후

이북에서 월남했다는 내 친구 경옥이

경옥이 얼굴은 사과꽃같이 작았다

목청을 떨며 사과꽃 노래를 불렀었다

이북에서 배웠다는 소련 노래 사과꽃

발바닥으로 마룻장 굴러 손뼉을 치며

아버지가 알면 혼찌검이 난다면서

그 애는 졸라대면 사과꽃을 불렀었다.

우리가 이남에서 미국 노래를 배울 때

경옥이는 이북에서 사과꽃을 배웠다.

지금은 수녀가 된 내 친구 경옥이

사과꽃보다 이쁘고 향기로운 경옥이

소련에 핀 사과꽃은 경옥이의 노래였다

   

 

♧ 사과씨 - 유봉희

 

사과 한 알로 아침이 깬다

 

윤기 흐르는 붉은 표면에 송곳니 박으며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그러다가 사과씨를 만날 때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과씨가 나를 노려볼 때가 있다

또렷또렷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새까맣게 여문 눈으로 나를 보며

“나를 어떻게 하겠어요?”

물어보곤 했다

난감한 일이다

 

어떻게 하지?!

 

마음씨가 사과꽃 피워내는 아침

   

 

♧ 내 배경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 이정자

 

기차를 타고 한 무더기 들꽃 같은 사람들 틈에

충주역에 내려서면 집집마다 돌아오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저물어가는 우주의 따스한 기운을 끌어당겨

가등으로 불 밝히고 서있는 듯한 밤이 있었다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기만 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날들이 있었다

달랑거리는 빈 주머니에도 어느새

두 팔 벌려 품어 안는 산과 호수

발목을 휘감는 사과꽃향기로 무량히

든든해지던 젊은 날이 있었다

 

내 모든 허물 외투처럼 벗어 놓고

모성의 젖줄이 흐르는 품안에

편안히 눕고 싶은 배경에는

가슴을 관통하는 그리운 사람들의 숨결이

나를 비껴 서지 않고 그 중심에 여백으로 살아 있었다

돈도 명예도 없는 내 정신의 든든한 빽이 되어 주었다.

   

 

♧ 사랑이 그리움 뿐이라면 - 용혜원

 

사랑이 그리움 뿐이라면

시작도 아니했습니다

 

오랜 기다림은

차라리 통곡입니다

 

일생토록 보고 싶다는 말보다는

지금이라도 달려와

웃음으로 우뚝 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수 없는 변명보다는

괴로울지언정

진실이 좋겠습니다

 

당신의 거짓을 볼 때는

타인보다 더 싫습니다

 

하얀 백지에 글보다는

당신을 보고 있으면

햇살처럼 가슴에 비춰옵니다

 

사랑도

싹이 자라고

꽃피어 열매 맺는 사과나무처럼

계절따라 느끼며 사는 행복뿐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에

이별이 있었다면

시작도 아니했습니다

   

 

♧ 사과나무는 - 진명희

 

꽃산*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사과나무는 비로소 숨을 들이킨다

 

감나무 가지에 앉은 까치들이

후후룩 날개를 치면

사과나무는 꽃잎을 휘날리며 열매를 키운다

 

보듬어 안고 쓸어주는

가을 햇살 무리 속에서

 

사과나무는 또 다른

계절을 잉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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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산: 삽교읍에 자리한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