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우리집 - 김해인

김창집 2015. 4. 14. 09:27

 

♧ 우리집 - 김해인

 

지금은 잊혀진

아득한 북관대로

그 신작로에서

동짝으로 오리넘이 떨어져 나 앉은 곳

 

 

봄 이면 보리가 누렇게 익던 곳은 웃말토

가을에 금빛 물결이 일던 곳은 앞 벌

그 벌 가운데 매미골 방죽이 있었고

흙구뎅이 자리엔 마르지 않던 샘 웅뎅이도 있던 곳

장마당에 장서는 날이면 개장국집엔

된장국에 시레기처럼 어우러지던 걸쭉한 얘기들

 

 

왼짝으로 오리쯤에는 괸돌이

십리께엔 마치미가

이십 리 너머엔 비석거리가 있어

먼 옛날 임금이 여드레를 자고 갔다는 여덜뱀이도

그랬다고 언놈이 팔야리라 쓰고 읽게 만들은

그 위에 울 아버지 고향 뱅길이 가는길엔

솟다백이도

맑은담이도

서파두 있었더란다

 

 

두껍바위 지나 오리를 가면 솔모루

게서 오리를 더가면 빈 터에

양눔부대 들어온다 터 닦는 날

도자 삽날에 끌려나온 구렁이를 가마솥에 과 먹은 그날밤

하늘이 무너지도록 비가 내려

구렁이 안 잡순 노인네 한 집만 남고

꽁고먹은 자리메루

모두 쓸려갔다던 때가 내 다섯 살

그래서 남은 게 하나도 없는 빈 터

그 아래

파발맥이 자취도 없이 이름만 남고

솟대도 없는 장승배기엔

가시 돋친 아카시아 새끼를 쳐 우거지고

 

 

우리집은

윗 말 말미

아랫말 담뱅이

산 넘어 당님말 새 외딴 집

그래서 그런지

서낭도 고개도 없는 곳 우리집을

당꿀집이라 불러주던

울미 집 숙이 아부지도

두리굴 집 할무니도

 

 

울타리는 소낭구 가쟁이

물거리 참나뭇가지를 꽂아 세우고

울짱을 덧대어 묶은 집

봄이면 채마밭 여가리에

개살구 개복숭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왕탱이 벌이

윙윙 거리며 날던 곳

가을날 뒷간 지붕에는

달덩이만한 박이 달리고

울타리에 기대어 선

아름드리 밤나무엔 겨우살이가 붙어나고

이영으로 이어올린 지붕이

노적가리 닮았다고

생각해 보던 집

 

 

아침이면 말미 학교에 가는 아이들

장날이면 이고 지고

소 팔러 가시던 돼지 아부지

나이롱 양말 고리땡 바지

비로도 치마 사러가던 순이 엄마

바라보고 구경하느라

문지방에 걸터앉았다

삼춘한테 뒤통수를 으더맞던 그 집

이맘때 쯤 대추나무에는

짜글짜글한 마른 대추가 서너 개 매달려 있을...

 

 

진 외가는 자뛰였구요

큰집은 쇠푼이 사셨더랬어요

외갓집은 이네미

그너머 꽃네미엔 대장쟁이 아재네두 사셨더랬소

장잰말로 시집간 큰집 조카는

나보담 열댓 살 더 먹었구요

독쟁이 사시던 입이 찢어졌던 아저씨

오실 때마다 작고 예쁜 오지항아리를

울엄마에게 가져다 주시던 곳

 

 

방물장수 다래끼장수

밤 잠 얻어 자고 가고

염불인지 우물 우물

목탁만 두들기던 늙으신 스님

할아버지 사랑방에

몇 날 며칠을 묵어가던

 

아련하게 떠오르는 고향

굴고개 너머

우리집 가는 길에는

울엄마 가슴 닮은 산이 있었고

북쟁이라는 높은 산도 있었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