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현충일 아침에
* 삼백초
예순 번째 맞이하는 현충일이다.
오늘 같이 경건한 날,
내 젊은 날을 돌아보며
허망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돈 없어 2년 늦게 들어가 대학 다니다
나이가 찼다고 입영 연기가 안 된다고
2학년 재학 중에 군대 부르더니,
김신조 때문에 복무기간이 길어져 불만이 많은 고참들에게
한껏 괴롭힘 당하고
1년 동안 내키지 않은 베트남 전선에 보내는가 하면
만 36개월 졸병 노릇하다 제대했다.
그러나 요즘 청문회 할 때 보면,
장관, 국무총리 같은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는 어르신들 중
(말이 어르신이지, 요즘은 대부분 나이가 나보다 아래다.)
별 걸 가지고 군대 안 갔어도 오히려 떳떳하다.
그런 분들은 오늘 같은 날에도
마음속으로 미안해 할 까닭이 없겠지.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께 참으로 면목이 없다.
♧ 현충일 아침 - 손병흥
전란속에서도 굳건하게
국난극복 등불 훤히 밝혀주신
님이시여 호국영령들이시여,
여기 새롭게 태동하는 넋 달래어
험난한 가시밭길 온 몸바쳐 구해주신
구국 희생정신 떠 받들고자
비록 수려하지 못한 문체일지언정
끊임없이 시퍼렇게 출렁이면서도
그냥 수평 잡아 나가는 저 물처럼
진정코 무궁한 영광 더 깊은 영혼
가장 긍정적인 직관 깨달음으로
존경심 감사함 가득 보내노나니
고귀하신 그 눈물 슬픔 가시도록
수만가지 각양각색 영혼담아
언제까지나 잘 기억하기 위해
가슴 소리쳐 눈물 흘리나니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피마저도
단 한 번뿐인 의미없는 인생
처음 가졌던 소중한 마음자세
곱 씹어 우러나는 삶 살아가고파
세상 향해 큰 소리로 외쳐보던
태양이 온통 환하게 빛나던
바로 그런 오늘 현충일 아침.
♧ 충혼탑 앞에서 - 최홍윤
올 유월 볕은 유달리 따가워서
돌탑에 낀 이끼를 걷어내고
뜨거운 바람이 내 어깨를 툭툭 칩니다
해마다
아카시아 꽃잎은
탑 언저리 산자락에 흩날리는데
흐르는 강물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유복자였던 형제가 환갑나인데
두만강 물을 마시고
고향 찾으려다 散華한 임의 조국,
두 동 간난 조국은,
아직도 그 모양 그 꼴입니다
환갑나이에
기억에도 없는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해마다 판에 박은 인사,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부끄럽습니다
현충일이라서 더욱 막막합니다
부디 편히 쉬소서!
♧ 늙은 소대장 - 정웅
혜화역 4호선에 올라
여유 있게 군인 옆을 차지했다
갑자기 오른 쪽 어깨가 묵직해 온다
일등병이 취기와 함께 머리를 맡긴다
그래, 어깨만 재던 소대장이었지
오늘은 늙은 소대장이 보초를 서주마!
-무엇이 낮술을 들게 히였는가?
-어머니가 아프기라도 하는가?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짧은 첫 휴가가 아쉬운가?
벗겨지는 모자를 이불 덮듯 얼굴을 가려준다
-귀대병이겠지.
-수유리에서 전방행 버스를 타야하지 않겠는가?
전철이 서는가 싶어 어깨를 빼어볼까 하는데
땜 물 쏟듯 열린 문으로 그리움도 빨려 나간다
빈자리에 아들 냄새가 뭉클하다
♧ 앵두 - 최승호
어떻게 과거의 산들이
현재로 흘러들고
현재의 푸른 산봉우리들이 과거로 흘러가는가
모드 존재가 거품덩이며
비존재 또한 허구렁이라고
생각해 온
내
앞에
앵두나무는 서 있다
오늘은 유월 육일 현충일이다.
나는 슬픔 없이 빨간 앵두를 바라본다
당당한 햇살
적나라하 앵두
이 말랑말랑한 보석들로
앵두술을 담글 수도 있으리라
낮술에 취해
생각의 흐린 웅덩이들을
발효시킬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생각
이전에
빨갛게
익은 앵두를
빨갛게 볼 수도 있으리라
♧ 마니산 - 공석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돌계단을 오르다
털퍼덕 주저앉아 하산을 갈등한다
중도하차는 나를 배신하는 일
민족정기를 도모하는
호국보훈 유월의 산행
좀 더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강렬한 빛으로 분사하여
은총으로 분배하는 왕겨빛 태양
불끈 솟는 양지의 힘
홑이불 벗기듯 산등성 안개는
바다 건너 서쪽으로 꼬리를 감추고
하늘 아래 수많은 명산을 거느리는
마니산 성지 산기슭 더욱 깊어져
가슴 벅차 얼굴 벌개지도록
세상으로 등을 떠미는
한사코 불어오는 강화도 서풍
♧ 유월의 강 - 정군수
- 6월 보훈의 넋을 기리며
오직 깃발하나로 몸을 던진
그 분들을 만나는 강
유월의 강에 꽃잎이 흐른다
강을 따르면 얼음의 강에 닿는다
얼음을 만나면 더 붉어지는 꽃
언어로 말하지 않고
몸을 열고
얼음 속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본다
얼음의 강을 지나면
깃발마저 던져버린 노을이 곱다
새벽이 오면
밤을 흐르던 노을꽃들이
어둠을 이기고
다시 유월의 강을 거슬러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