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제60회 현충일 아침에

김창집 2015. 6. 6. 00:14

  * 삼백초

 

예순 번째 맞이하는 현충일이다.

오늘 같이 경건한 날,

내 젊은 날을 돌아보며

허망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돈 없어 2년 늦게 들어가 대학 다니다

나이가 찼다고 입영 연기가 안 된다고

2학년 재학 중에 군대 부르더니,

김신조 때문에 복무기간이 길어져 불만이 많은 고참들에게

한껏 괴롭힘 당하고

1년 동안 내키지 않은 베트남 전선에 보내는가 하면

만 36개월 졸병 노릇하다 제대했다.

 

그러나 요즘 청문회 할 때 보면,

장관, 국무총리 같은 높은 자리에 오르겠다는 어르신들 중

(말이 어르신이지, 요즘은 대부분 나이가 나보다 아래다.)

별 걸 가지고 군대 안 갔어도 오히려 떳떳하다.

 

그런 분들은 오늘 같은 날에도

마음속으로 미안해 할 까닭이 없겠지.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께 참으로 면목이 없다.

   

 

♧ 현충일 아침 - 손병흥

 

전란속에서도 굳건하게

국난극복 등불 훤히 밝혀주신

님이시여 호국영령들이시여,

여기 새롭게 태동하는 넋 달래어

험난한 가시밭길 온 몸바쳐 구해주신

구국 희생정신 떠 받들고자

비록 수려하지 못한 문체일지언정

끊임없이 시퍼렇게 출렁이면서도

그냥 수평 잡아 나가는 저 물처럼

진정코 무궁한 영광 더 깊은 영혼

가장 긍정적인 직관 깨달음으로

존경심 감사함 가득 보내노나니

고귀하신 그 눈물 슬픔 가시도록

수만가지 각양각색 영혼담아

언제까지나 잘 기억하기 위해

가슴 소리쳐 눈물 흘리나니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피마저도

단 한 번뿐인 의미없는 인생

처음 가졌던 소중한 마음자세

곱 씹어 우러나는 삶 살아가고파

세상 향해 큰 소리로 외쳐보던

태양이 온통 환하게 빛나던

바로 그런 오늘 현충일 아침.

   

 

♧ 충혼탑 앞에서 - 최홍윤

 

올 유월 볕은 유달리 따가워서

돌탑에 낀 이끼를 걷어내고

뜨거운 바람이 내 어깨를 툭툭 칩니다

 

해마다

아카시아 꽃잎은

탑 언저리 산자락에 흩날리는데

흐르는 강물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유복자였던 형제가 환갑나인데

두만강 물을 마시고

고향 찾으려다 散華한 임의 조국,

두 동 간난 조국은,

아직도 그 모양 그 꼴입니다

 

환갑나이에

기억에도 없는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해마다 판에 박은 인사,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 부끄럽습니다

현충일이라서 더욱 막막합니다

부디 편히 쉬소서!

 

 

♧ 늙은 소대장 - 정웅

 

혜화역 4호선에 올라

여유 있게 군인 옆을 차지했다

갑자기 오른 쪽 어깨가 묵직해 온다

일등병이 취기와 함께 머리를 맡긴다

 

그래, 어깨만 재던 소대장이었지

오늘은 늙은 소대장이 보초를 서주마!

-무엇이 낮술을 들게 히였는가?

-어머니가 아프기라도 하는가?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기라도 했는가?

-아니면, 짧은 첫 휴가가 아쉬운가?

벗겨지는 모자를 이불 덮듯 얼굴을 가려준다

 

-귀대병이겠지.

-수유리에서 전방행 버스를 타야하지 않겠는가?

전철이 서는가 싶어 어깨를 빼어볼까 하는데

땜 물 쏟듯 열린 문으로 그리움도 빨려 나간다

빈자리에 아들 냄새가 뭉클하다

   

 

♧ 앵두 - 최승호

 

어떻게 과거의 산들이

현재로 흘러들고

현재의 푸른 산봉우리들이 과거로 흘러가는가

 

모드 존재가 거품덩이며

비존재 또한 허구렁이라고

생각해 온

앞에

앵두나무는 서 있다

 

오늘은 유월 육일 현충일이다.

나는 슬픔 없이 빨간 앵두를 바라본다

당당한 햇살

적나라하 앵두

이 말랑말랑한 보석들로

앵두술을 담글 수도 있으리라

낮술에 취해

생각의 흐린 웅덩이들을

발효시킬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생각

이전에

빨갛게

익은 앵두를

빨갛게 볼 수도 있으리라

 

 

♧ 마니산 - 공석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돌계단을 오르다

털퍼덕 주저앉아 하산을 갈등한다

중도하차는 나를 배신하는 일

민족정기를 도모하는

호국보훈 유월의 산행

좀 더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강렬한 빛으로 분사하여

은총으로 분배하는 왕겨빛 태양

불끈 솟는 양지의 힘

홑이불 벗기듯 산등성 안개는

바다 건너 서쪽으로 꼬리를 감추고

하늘 아래 수많은 명산을 거느리는

마니산 성지 산기슭 더욱 깊어져

가슴 벅차 얼굴 벌개지도록

세상으로 등을 떠미는

한사코 불어오는 강화도 서풍

   

 

♧ 유월의 강 - 정군수

    - 6월 보훈의 넋을 기리며

 

오직 깃발하나로 몸을 던진

그 분들을 만나는 강

유월의 강에 꽃잎이 흐른다

강을 따르면 얼음의 강에 닿는다

얼음을 만나면 더 붉어지는 꽃

언어로 말하지 않고

몸을 열고

얼음 속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본다

얼음의 강을 지나면

깃발마저 던져버린 노을이 곱다

새벽이 오면

밤을 흐르던 노을꽃들이

어둠을 이기고

다시 유월의 강을 거슬러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