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한여름의 시계꽃

김창집 2015. 8. 10. 07:32

 

애월읍 하가리 연화못에서 나와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 쪽으로 가다가

카페 울타리에서

이 시계꽃을 만났다.

 

오랜만에 보아 반가운 나머지

다짜고짜 다가가 찍다보니

연일 뜨거운 폭염을 견디느라

좀 굳어 보인다.

 

쥔장이 꽃을 좋아하는지

틈 있는 곳마다 화분을 놓아

여러 가지 꽃을

오밀조밀 키워 놓은 것이 볼 만하다.

하가리 연화못에 간다면

 번 찾아보기를 권한다.

 

시계꽃은 브라질 원산으로

시계꽃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덩굴풀이다.

길이는 4m 정도로 자라고 가지가 없으며,

덩굴손으로 다른 것을 감으면서 올라간다.

잎은 어긋나고 손꼴로 깊게 갈라지는데,

꽃은 여름에 위를 향하여 핀다.(daum사전)

 

 

♧ 시계꽃 - 김승기

 

꽃도 피면 지는 것이거늘

여름날 들판 한가운데 똬리 틀고 앉아

뱅뱅 하늘을 돌리고 있는

꽃아 꽃아

한 계절 보내고 또 한 계절을 맞는

지금 우리의 사랑은 몇 시?

시계바늘이 정오를 가리킨다

개구리 우는 소리 엊그제 들렸는데

벌써 매미소리 뚝 그쳤는가

자취도 그림자도 없이 숨어 휑하니 구멍 뚫린 가슴을 한겨울 칼바람으로 할퀴고 후비며 온몸 신열로 들뜨게 하더니

목마른 여름날 불쑥 찾아와 까르르까르르 숨넘어가도록 웃고 있는 얼굴아

하늘엔 하얗게 구름 흘러가는데

나는 오히려 쭈뼛쭈뼛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해바라기는 해를 향해 돌고 돌며 짝사랑으로 목 늘이다 땅에서 땅으로 거꾸러지고, 별들도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결같이 움직이는데,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

언제 또 몇 시에 찾아오고 몇 시에 떠날까

나도 따라 시계가 되는

인연의 바람개비,

물레방아 돌리는 일

이제 그만 두련다

눈물 씻어주는 바람 한 줄기 휙 스치고 지나간다

귀뚜라미 노랫소리 아직 아득한데

한 점 꿈을 밝히던 반딧불

벌써부터 그립다

꽃아 꽃아

정오를 넘어선지 한참

땡볕 아래 그림자 하나 없이

시계바늘 잘도 돈다

 

 

♧ 시계꽃 초침이 피기를 기다리는 남자 - 고형섭

 

언제인 지도 모르게 도회지 불혹의 남자는 혼자가 되었다

매일 술이라는 바다에 빠져 비몽사몽간에 밤마다 돛도 없이 긴 항해를 해야 했다

바람도 불어주지 않는 바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타들어가는 육수

모든 것을 바다에 돌려주고 싶었다

긴 항해 끝에 다다른 무인도엔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아마존강에서 흘러왔을 시계꽃 넝쿨만이 갓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여

초봄부터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남자는 세월을 망각한 지 오래전이라

어제가 오늘이고 내일 또한 오늘이었다

벌레에 이파리를 뜯기지 않기 위해 시계꽃은 자신의 몸을

천적처럼 위장하고 시계꽃을 느리게 피워내며 시간을 기워간다

남자도 이제 시계꽃의 분침에 초조해하는 조바심도 버린 지 오래 시침에 익숙해간다

바다 아득히 수평선 저만치서 기선이 악마처럼 기습해오고 있다

아마도 모든 것을 앗아간 그 해적선일 게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아, 모든 것을 놓아버린 항해였지만

두 손에 힘이 주어지고 주먹을 불끈쥔다

두 손아귀속으로 온 바닷물이 빨려들어온다

바다는 바닥을 들어내고 기선은 남자의 발아래 갯벌에 박혀버린다

손에 가둬둔 바다를 쏟아부어 기선을 뽑아 항해하는 남자

이젠 바다에 몸을 맡기지 않고 거센 파도를 90도로 맞서며 거슬러 가리라

태양을 삼키고 별달마저도 빈 마음에 다 넣으리라

다시금 몇 년이 흘렀을 초가을날

시계꽃엔 전에 없었던 초침이 생기고 째깍거리며

매일 바삐 피고 지고 있다.

 

 

♧ 명상의 시계 - 김형효

 

사람들의 지친 어깨 내려다보는

역구내의 시계바늘을 본다.

퇴근길 지친 셀러리맨에

한 잔술의 피곤을 위안하듯이

느긋하게 초침을 움직이고 있는

시계바늘 쉬지 않고 있다.

두런거리고 있다.

“난 이렇게 지쳐도 힘들다 못하지요.”

어떤 셀러리맨도

시계에 반(反)할 수 없다.

숙명처럼 복종하고 따라갈 수밖에

오늘도 비애의 터널 빠져 나오고

역구내를 탈출하듯 명상은 길지 않았다.

 

 

 

♧ 모래시계 - 위선환

 

저렇게 푸른 하늘이

대기권만 벗어나면 깜깜하다,

알았으므로

개인 날은 물론 눈 날려 눈썹에 쌓이는 날에도,

어느 날은 턱 밑에 빗물이 흥건하던 저녁까지

눈꼬리가 젖어서 쳐다보던 짓을

그만 둔다

되풀이해서 눈비에 젖던,

날이 마르자 어느새 잔금이 가는 몸뚱이 안으로

틈바람 들어오고

맵찰 날을 걱정하며 정신 놓고 걷다가

요즘은 여러 번 턱 걸려 넘어지지만

깨질세라 제 몸 일으켜 세우고 붙안고 서서

나도 모르게 쳐다보는 그 짓을

그때마다 가슴 차게 속울음 고이는 괜한 짓을

그만 둔다 나, 떨고 있냐?

   

 

♧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 - 권천학

 

비밀을 가둬둔 책상

서랍을 열 때마다

눈감은 시간들이

빛에 찔려 소스라치며

책갈피 사이로 스며든다

 

밤이면

틈 사이로 기어 나온 시간들이

스멀스멀 벽 위를 기어 다니고

천정에 매달려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찢겨나가는 의식의 빈 창고

모진 바람에

눈 뜬 시간과

눈뜨지 못한 낱말들이

서로 부딪치며 나뒹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