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물봉선으로 여는 9월

김창집 2015. 9. 1. 10:13

 

엊그제까지만 해도

맹위를 떨치던 날씨가

9월이 들어서면서

갑자기 서늘해진 느낌이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우리가 가꾸는 왕이메 산책길에

풀 베러 갔다가 만난 이 물봉선

어쩐지 가을 느낌이 들어

여기에 올린다.

 

이 꽃의 상큼함으로

건강한 9월을 여시길….

 

 

♧ 9월의 약속(約束) - 오광수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손내밀면 잡을만한 거리까지도 좋고

팔을 쭉 내밀어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도 좋을 거야

가슴을 환히 드러내면 알지 못했던 진실 함들이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산울림이 되고 아름다운 정열이 되어

우리는 곱고 아름다운 사랑들을 맘껏 눈에 담겠지

 

우리 손잡자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9월이 만들어놓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가 되고

산울림이 가슴에서 잔잔한 울림이 되어

하늘 가득히 피어오를 변치않는 하나를 위해!

 

 

♧ 9월의 기도 - 문혜숙

 

나의 기도가

가을의 향기를 담아내는

국화이게 하소서

 

살아있는 날들을 위하여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한쪽 날개를 베고 자는

고독한 영혼을 감싸도록

따스한 향기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시작이

당신이 계시는 사랑의 나라로

가는 길목이게 하소서

 

세상에 머문 인생을 묶어

당신의 말씀 위에 띄우고

넘치는 기쁨으로 비상하는 새

천상을 나는 날개이게 하소서

 

나의 믿음이

가슴에 어리는 강물이 되어

수줍게 흐르는 생명이게 하소서

 

가슴속에 흐르는 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로

마른 뿌리를 적시게 하시고

당신의 그늘 아래 숨쉬게 하옵소서

 

나의 일생이

당신의 손끝으로 집으시는

맥박으로 뛰게 하소서

 

나는 당신이 택한 그릇

복음의 사슬로 묶어

엘리야의 산 위에

겸손으로 오르게 하옵소서

 

 

♧ 9월 - 안재동

 

징검다리는

흐르는 물살에 잘 버텨야 한다.

자칫 중심을 잃어 제자리를 이탈하거나

급류를 이기지 못해 떠내려가기라도 하면

사람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9월은

최대한 편하고 좋은 징검다리가 되려 애쓴다.

사람들은 심성 고운 그런 9월을 사랑한다.

 

길목을 지키는 존재란

으레 긴장되고 분주하게 마련이지만

가을의 길목에 선 9월은

언제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풍성한 들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즐거운 마음을

선선한 공기를 들이켜는 사람들의 싱그러운 호흡을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잘 알기 때문이다.

 

9월의 들녘에선

여름내 살쪄 올라 사람들을 뒤뚱거리게 했던

무료와 권태의 비계 덩이들이

예리하게 날 다듬은 낫이며 호미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농부들의 힘찬 손길에

뭉텅뭉텅 떨어져 나가고 있다.

 

 

 

♧ 9월에 부르는 노래 - 최영희

 

꽃잎 진 장미넝쿨 아래

빛바랜 빨간 우체통

누군가의 소식이 그리워진다

 

망초꽃 여름내 바람에 일던

굽이진 저 길을 돌아가면

그리운 그 사람 있을까

 

9월이 오기 전 떠난 사람아

 

지난해 함께 했던

우리들의 잊혀져 가는

그리움의 시간처럼

타오르던 낙엽 타는 냄새가

올가을 또 한 그립지 않은가

 

가을 오기 전

9월,

9월에 그리운 사람아.

 

 

♧ 9월의 詩 - 최홍윤

 

9월은

모두가 제자리를 찾는 달이다.

 

철 지난 바닷가

이별을 노래하는

파도의 음률이 쓸쓸하고

물비늘 반짝이는

황혼녘의 호수, 호수에 잠수한

물고기의 행적도 고즈넉하다

 

단지, 빈틈없던 나무들의 숲이

느슨하게 따가운 볕을 들이고

파닥이는 작의 새들의 맑은 노래

교정에 그을린 얼굴들도

시루 속에 콩나물처럼 성큼 컸다

 

고향언덕에

핏줄의 영혼들이 깨어나면

산자락에는 시퍼런 밤송이 붉게 웃을 데고

불그스레한 대추알도

토실하게 수줍어 할 거다

 

흐르는 살가운 물소리에

내 기억을 더듬고

사랑방 주인들이 곤히 잠든 산자락에 가서

공손한 절을 올리며

떠나려는 기러기 떼처럼 안부를 전하고

 

그제야

쓸쓸한 바닷가에서

사람 떠나 외로운 파도의 운율, 벗을 삼아

따끈한 詩를 써봐야겠다.

   

 

♧ 9월의 단상 - (宵火)고은영

 

바라건대

눈으로 들어와서

가슴으로 건너는

계절의 홀씨 위에

아픈 기억의 날개는

뽑을 지어다

 

비상하여도

도처에 물이든

계절의 나락 하나

감사로 수확하지 못하는

마음의 불구는

소슬바람에도 흔들리나니

 

감당치 못할

아픔에 이르기까지

견주어 바꿀

그리움의 씨앗이 웃자라

빈껍데기로 남길 바에야

 

차라리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가리고

중심의 빈처로

이 계절을 노저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