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첨성대, 안압지 야경
답사 첫날인 9월 15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첨성대와 안압지를 둘러보았다.
안압지(雁鴨池)는 효과적으로 조명시설을 해놓아
건물과 연못에 비친 반영(反影)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안압지(雁鴨池)는 삼국통일 전후 조성하기 시작하여
문무왕 14년(674)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 3월부터 1986년 12월까지
연못과 주변 건물지의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석축호안(石築護岸)으로 둘러싸인 연못과 3개의 섬,
그리고 연못 서쪽의 호안변에서 5개의 건물지와
서쪽, 남쪽으로 연결되는 건물지들이 밝혀졌다.
동남쪽 모서리에서는 수로와 입수구(入水溝)의 시설,
북쪽 호안에서는 출수구(出水溝)의 시설이 확인되었다.
호안석축의 길이는 1,005m로 전체면적은 1만5658㎡,
제일 큰 섬은 1,094㎡, 중간 섬은 596㎡, 제일 작은 섬은 62㎡이다.
이때, 연못 안팎에서 출토된 완형 유물은 15,023점에 달하며,
가장 많이 출토된 와전류 중 특수기와,
당시의 생활용구들이 출토되었으며,
금동불상을 비롯한 금동제품과 목조건물의 부재 및
장신구, 주사위, 목선 등도 출토되었다.
<삼국사기>에 임해전(臨海殿)에 대한 마지막 기록으로
신라의 국운이 이미 기울어진 경순왕 5년(931)에
왕이 고려태조를 맞아 연회를 베풀었다고 했는데,
출토유물의 시대로 미루어 보아
10세기경까지는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원지(苑池)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지금은 여러 건물, 연못 복원과 함께
조경까지 해놓아 좋은 밤나들이 장소로 손색이 없었다.
♧ 안압지(364) - 손정모
궁중의 연못에
인공의 섬까지 띄워
선경을 이룩한 풍류
세월 가로질러 밀려든다.
굽이치고 내뻗는
물가의 형태마다
미녀의 가녀린 허리인양
곡선의 아취로 물결친다.
임해전의 전각 위로는
잔술에 불콰하게 벙글던
선비들의 미소
구름송이처럼 떠 흐르는데
소용돌이치는 기류에 휩쓸려
안압지로 떨어져 내리는
기러기와 오리들의 행렬마저
무산(巫山)의 꿈으로 뒤설레네.
♧ 안압지에서 - 전홍준
초병들의 삼엄한 호위아래
동포를 베기 위하여
당의 사신과 낄낄대던 연못에는
사육하는 오리떼 유유히 노닐고
흐드러진 벚꽃 조선솔 사이로
오늘은 봄비를 맞으며 쭈그러진
신라 천년이 누워있다
지금이나 그때나
사립문이 부실하여
거친 용병을 고용하지 않으면
지탱할 수 없는 이 땅의 천형!
그대여 단단한 차돌 하나 주워
패배감으로 상한 우리의 심장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자
깨어지고 찢어진 머리를 싸매고
한 석 달 열흘 곰삭여 보자.
♧ 경주의 밤 - 정영자
경주에 밤이 젖는다
새벽도 멀고
어제의 시간도 잃어버린 날에
천년 세월의 불빛이 멀다.
살아서
찾아오는 곳.
보문호 출렁 이는 작은 물들도
어둠에 잠기고
보내고 기다리는 약속 때문에
너를 젖는다.
신라 바람 속에서.
♧ 경주 - 김귀녀
아침햇살이 온통 붉다
가을 향기가 길 위에 번진다
가슴이 환하다
얼굴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제각기 마음도 다른
각양각색의 세계가 있는 경주
천년고도라는
나는 쓸쓸해지고
당신은 다양해지는
가을 속으로 간다
내일을 껴안고 정처 없이 흘러가는
하늘에는 구름
보문 호수의 깊숙한 곳을 돌며
오래도록 간직해 온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숲을 떠나는 갈잎이
사각 사각 걸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