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시와 비양도
지난 토요일, 비양도에 다녀왔다.
배에서 내려 우선 보말죽을 시켜놓고,
펄랑못을 돌면서 해녀콩도 보고
물이 싸버려 발목까지 드러난 아기 업은 돌도 보고
감태 때문에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코끼리바위 앞을 돌아
정상에 올라 한라산 바라기를 하다
비양나무는 건너 뛰고
돌아오면서 갯무 한 움큼 뜯고
보말죽을 먹었다.
해녀축제 때문에 잠녀 아줌마들이 모두 뭍으로 나가버려
소라는 냉동실 것을 꺼내 무쳐먹었고
지나가는 돌고래 떼에 인사도 건네면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다가
비릿한 갯내음을 맡으며 여유롭게 돌아왔다.
비양도 다니기 시작한 후로
제일로 여유를 부린 것 같다.
사진 몇 장을 가져다
김태일 시인의 시와 같이 싣는다.
♧ 비양도 노을 다리
그때 다리를 잃었지
외눈박이 거인의 나라 어디쯤일까
사경 헤매던 표류 어부들 구하고
화염 내뿜으며 승천하던 비양도 영등할망
여몽군 휘몰아치던 황사바람에던가
왜막에서 날아온 황천검에던가
명월포 바다에서 그렇게 다리를 잃었지
무신 거?
케이블카 놓으커라?
다리가 더 낫주
돛단배
통통배
케이블카도 좋추마는
애기 업은 비바리돌 호들갑 떨며 오고 가고
저녁놀도 붉게 타다 건너가는
그런 노을 다리
♧ 섬의 독백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아침마다 수평선 열어 치솟아 오르는 태양과의 열애, 철따라 바꾸어 입는 구름의 치장만으로도 차라리 나는 숨이 막힙니다.
다만 한 여름 활활 타오르는 우리 사랑을 시기한 강림차사*가 새까만 까마귀떼 덮치듯 태풍을 휘몰아 와선, 4만년을 씻고 빨아도 결코 희어지지 않을 제주바다 검은 갯바위를 껴안아 뒹굴기 시작하면 사라봉 등댓불이 아무리 목이 타도록 불을 밝혀도 찾을 길 없는 생명의 불덩어리, 태양이 그리울 뿐입니다.
폭풍우에 울부짖는 백록담은 활활 타오르는 태양과의 입맞춤이 그리워 밤새운 나의 눈물, 그 슬픔의 깊이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태풍의 시기는 순간일 뿐, 또 다시 나의 뜰에 신산만산 별이 내리고 먹구름 사이로 따스한 햇살 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계절 따라 밀려올 구름떼에 심장이 두근대고 날마다 밀려오는 파도의 속삭임에 오늘도 가슴이 터집니다.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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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림차사(降臨差使) :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이승차사로서 4만년을 산 ‘4만이’를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꾀를 내어, 광청 못가에서 흰 숯을 만들려고 한다면서 검은 숯을 씻음
♧ 숨비기꽃
누굴 찾아 나섰을까
맨발의 숨비기꽃
숨비기 숨비기 숨비소리
한밤 슬쩍 숨어든 별 모래언덕에도
새벽 놀 타다 남은 시커먼 갯바위 틈새에도
연보라 시폰 블라우스
하이얀 스카프
물꽃보라 숨비기꽃
서천 바다 너머 연인이라도 숨겨 두었나
소금기 밴 스커트 잎 새 파르란 속살 어디에선가
돌아가신 할머니 품속 저승의 향기
총상꽃차례 끌며 어디 가나
섭지코지 새배코지
숨비기 숨비기 숨비기꽃
♧ 저승에서 훔쳐 온 누나 숨비소리
호오오이~
제주 바당 열두 길 물 속 솟아오른 누나
용궁 올래에서 부활한 듯
저승에서 훔쳐 온 긴 숨비소리
호오이~
저녁 노을 옥색 물치마 바라보며 호오이~
새끼 잔뜩 품어 안은 한라산 올려다보며 호오오이~
그래서 섬이 울었다
파도가 또 그렇게 울었다
누나 눈물은 저승 꽃
제주 바당은 누나의 눈물
이승 문턱 수평선 넘어오며 호오이~
파란 하늘 천국문 다시 올려다보며 호오오이~
제주 바당 폭풍우 집채 같은 파도 속
누나 숨비소리
호오오이~
♧ 제주휘파람새 숨비소리
호오, 로로로 뤼오
난 떠나기 싫어요
파도치는 억새 물결 속에 숨어
이방인의 목소리로 이별을 더듬지 말아요
지난 밤 마칼바람 소리에 소스라쳐
떠난다는 이야기하지 마세요
우리 같이 노래하던 별도봉 기슭에
상록의 전설 만발하고
지난 봄 튼 둥지가
아직도 따뜻하잖아요
호오이, 이어 이어 이어도 이어
저 바다 건너면 환상의 나라 있나요
여기가 바로 이어도일 거예요
나는 이곳이 좋아요
혹 저 빌딩 숲 속 사탄이 춤을 추더라도
금단의 열매 함께 따먹고
종탑에 숨어 기도하다 눈보라 휘몰아치면
꽁꽁 얼어붙어 등신불이 될래요
우리 그냥 이대로 있어요
이제 곧 봄이잖아요
호오, 로로로 휘오
♧ 누나 품에 안겨 우는 제주바다
제주바다는 하느님의 눈물인가요
함박눈 내리는 한바다에 바람이 불면
열두 길 물속 누나 품에 안겨 울고
고요한 바다에 달빛이 흐드러져 피면
누나 숨비소리 그리워 울어요
제주바다는 한라산의 눈물인가요
누나 삶을 엮어 빚은 낮달도 기울고
누나 숨비소리 잦아드는 저녁이 오면
백록담 흘러내린 노을 바다가
누나 어깨 부여안아 눈물 흘려요
제주바다 품에 안겨 우는 누나야
제주바다 품에 안아 우는 누나야
오라비 시에 취해 화답으로
저 세상 숨비소리 훠어이 훠이 뿌리며
전화통에 눈물 펑펑 쏟는 누나야
제주바다는 누나가 쓴 시인가요
누나를 쓸어안은 제주바다는
높하늬바람 소리에 목이 메이고
학자금 찾아 자맥질하는 누나 눈에는
한라산 낮달이 잘름거려요
제주바다가 눈물 되어 출렁거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