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10월에 보는 당잔대 꽃

김창집 2015. 10. 10. 17:30

 

 

10월이 되면서 오름엔

당잔대가 피기 시작한다.

 

첫 주 금요일 따라비에서 처음 보고

어제 서영아리와

오늘 모지오름에서

실컷 보았다.

 

이제는 가을에 좀 늦게 볼 수 있는

물매화나 용담도 피었고

더불어 자주쓴풀과 개쓴풀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가을마다 들꽃과 만나는 즐거움이

언제까지나 이어질는지,

공짜로 독감주사를 맞는 나이가 되니

괜스레 주눅이 드는 것 같다.

 

 

♧ 10월의 서곡 - 반기룡

 

가을 햇살 내리쬐는 시월의 첫날

냉기가 몰려오고 살갗은 전율을 한다

그리움의 언어가 넘실대고

황금물결이 수를 놓으며

숲 속은 피톤치드의 향으로 그윽하다

머지않아 만산홍엽으로 채색된

장관을 보리라

여름내 더위와 투쟁을 하였던 나무들도

이젠 전환의 여울목에서 자연의 원리에

스스로 몸을 내어 주리라

아름다운 옷으로 물들 나뭇잎이

벌써 손짓을 하듯 팔랑거린다

세월의 수레바퀴는

어김없이 산과 들에 깊은 색조로 조각하여

인산인해를 이루리라

어떤 것은 빨강색으로

또 다른 것은 노란색으로

형형색색 물들은

단풍의 행렬이 힘찬 날갯짓 하며

이 산 저 산 쉼 없이 물결을 이루리라

어느 날 그대에게 단풍 옷 입고 다가갈 때

시월의 서곡은 힘차게 출발하였다고

힘주어 말 좀 해다오

   

 

♧ 10월 어느 날 - 목필균

 

월은 내게 묻는다

사랑을 믿느냐고

 

뜨거웠던 커피가 담긴 찻잔처럼

뜨거웠던 기억이 담긴 내게 묻는다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렌지 위에 찻물로 끓는 밤

빗소리는 어둠을 더 짙게 덮고 있다

 

창 밖에 서성이는 가을이 묻는다

지난 여름을 믿느냐고

 

김삿갓 계곡을 따라가던 물봉숭아

꽃잎새 지금쯤 다 졌을텐데

 

식어진 사랑도

지난 여름도

묻는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기울어진 가을 밤

부질없는 그리움이

째각째각 초침소리를 따라간다

   

 

♧ 10월의 그리움 - (宵火)고은영

 

높아 시린 감청색 하늘

노을의 영지로 날아가는 철새들도

가을의 들녘을 미련없이 비우고 있다네

강변의 물소리는 더욱 투명해지고

황홀한 달빛에 귀뚜라미 소리만

처연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밤에는

풀벌레도 욕망을 키우지 않는다네

 

평생 못 보면

죽을 것 같던 사람들을 못보고도

아직까지 나는 살아있고

나의 기다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이 갈수록 가까웠던 사람들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네

 

아, 이별이 올 때마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붙들고

외로움은 더욱 두꺼워져 움츠리는 가슴

가을의 벌판에 뼈저린 그리움만

낙엽처럼 뒹군다네

 

청춘을 노래하던 생명 들이

묵시적 이별을 고하는 창가에서

엉금엉금 허기진 공복을 맴돌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져간 세속에 홀로 남아

나는 이 밤을 연주한다네

고요하고 적막한 이 밤을 연주한다네

   

 

♧ 10월은 - 박종영

 

둑새벽이 열리면서

박명의 안개 흩뿌리고,

애써 숨어있는 얼굴들

달아진 손으로 찾아내는 기쁨의 시간,

손에 잡히는 둥근 웃음위에

아픔의 시간들이 옹이로 박혀

풀어내는 설움이 크다.

그때마다 만상(萬象)을 싸고 도는 바람은

찬 이슬에 섞여 메마르고

가을꽃들이 그렁그렁 눈물 감추는

참으로 서운한 날에,

아직도 먼 나라의 달빛 여행에서

허기진 뱃속을 채우고 있는 10월,

지루한 기다림으로

낙엽의 동면은 시작되지 못하고,

따뜻한 햇볕을 담아 건너야 하는

강물이 푸르다.

   

 

♧ 10월 - 김영천

 

10월이 우듬지 끝에서

빠알갛게 익는다

5월의 분노 따위는 다 잊고

서둘러 머언 하늘을 베고 눕는다

상사하던 붉은 꽃잎들이 지고

다시 새파랗게 순 올라오는 언덕을 따라

바람의 숨가쁜 소리가 수상하던 밤

기어코 별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더니

산목숨 몇은 더불어 가고

질긴 인연들만 파르르 떤다

가지 채 꺾어 실내에 두고

꼭지 붉은 시월을

이제 또 한 번 분노할까?

   

 

♧ 10월의 아침 - 박소향

 

바람은 차고 거리는 조용하다

하늘만한 그리움을 꿈속에 풀어놓고

지치도록 걸어들어 간 새벽의 갈 숲

 

환하게 뚫린 담장의 내벽이

다 닳아버린 햇살을 안고

저리도 고옵게 물들어 간다

 

가마귀 날아간 산그늘 아래

단내 나는 가을이

달아오른 가슴을 잠재우기 전

 

저리 혼자

알몸으로 팔랑이는 유혹의 빛을

가만히 숨죽이고 바라보라

 

그리고

눈물로 한 쪽 한 쪽 찍어 붙인

사랑의 빛을

가슴으로 천천히 옮겨 두라

 

이제 남은 가지 위에 햇살을 묻고

떠나지 못한 추억은 그리움이 될 것이므로

당신의 가슴에 나의 가슴에

이리 영롱한 자죽으로 찾아 드는 10월의 아침

 

단 한번 이 만남을 위해

이리도 고이 바라보는 한 생이 되었는걸

 

마냥 늦춰진 작별이 아쉬워

가을은 또 바람 위에

햇살 같은 금실을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