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민오름에서의 가을 예감

김창집 2015. 10. 11. 23:39

 

어제 봉개 민오름에 올랐다.

첫눈에 한라돌쩌귀 꽃이 곱고

참빗살나무 열매 붉었다.

 

나무 그늘 천남성 열매는 반쯤 익어가는데도

아직 곰취꽃이 남았다.

 

양하 그늘을 뒤져

믿기지 않을 만큼 양하간도 땄다.

 

잎이 붉어가기로는 사람주나무가 첫째고

다음이 산딸나무, 팥배나무 순서다.

 

능선에 올라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를 본 다음

내려오다 다래 몇 알 주워 먹었다.

 

 

♧ 초가을 풍경 - 박종영

 

가을인가 보다,

논둑 강아지풀은 쭈뼛이 고개 들어

성글게 찾아들고,

 

담장 너머 토실한 연둣빛 대추는

하늬바람 잔가지에 매달려 방방거린다.

 

생솔가지 군불 때는 호젓한 시간,

뒤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몽글몽글 웃음꽃 피우며 하늘 그네 타고,

 

아버지 지게에 얹혀오는 선선한 바람이

슬며시 사립문 여는 어스름 저녁.

빛가림 서늘한 담벼락 등대고 돌아서니

서운한 것도 없는데 그냥 서러워지는 마음,

 

보잘것없는 나의 뜰에도 정녕,

풍성한 가을은 오고 있는 것인가.

 

 

 

♧ 가을 예감 - 조사익

 

가을 색 빗줄기를 물방울로 뚝뚝 잘라

유리창에 뿌려대는 바람소리가 제법 찬 기운을 느끼게 한다

여름날 숨 고르기 한 번 못하고 크게만, 많게만 부풀려왔던 것들 모두

하늘빛마저 푸름을 멈추고 가을 색으로 물들어간다

비구름 쪼개진 틈새로

햇살 조금 남은 신작로 밑동까지 가을 닮은 석양 밟으며

어디쯤 오고 있을 가을빛 찾아 떠나는 길

후박나무 이파리 속살에서도 갈 빛 향기가 차오른다

여름날 숱한 이야기들이 오갔을 신작로에는

드물지만 가끔 꽃을 피운 코스모스 가녀린 모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보랏빛 향기 진하게 어우러진 맥문동 꽃대, 마저 눕고 나면

되려 허전할지도 모를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에

잠시 고독을 노래하다 슬플지라도 왠지 가을예감이 향기롭다

해거름 노을 다음, 밤 깊어질 때면

어느 별자리는 벌써 가을을 노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가을 예감 - 목필균

 

옛 사람이 그립고

그가 날 그리워하는지 알고 싶고

 

시퍼런 하늘이 눈물같고

무작정 전화도 하고 싶고

그 곁에서 한가롭게 걷고도 싶고

 

9월이 허리를 접은 후부터

내려가는 체감 온도를 올리고 싶어

안달이 난 그가

 

조용한 찻집에서 만나자고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올까

 

조바심치는 가슴 끝이

남몰래 설레인다

 

 

 

♧ 가을 느낌 - 박인걸

 

어머니 손길 같은

따스한 가을 햇살이

온종일 숲을 어루만지니

열매들 익어만 간다.

 

가녀리게 피어나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어린 누이 같은 코스모스

고운 미소에 눈이 부시다.

 

목 놓아 노래하던 풀벌레들

어디론가 떠나며

서둘러 이삿짐 싸는 숲에는

쓸쓸함마저 감돈다.

 

가을은 여물어 가는데

나뭇잎 곱게 물들어 가는데

시푸른 늦감나무 한 그루

가는 가을을 붙잡고 있다.

 

 

 

♧ 가을 느낌 - 鞍山 백원기

 

숨어있던 가을이 제자리를 차지하려

바람을 앞세워 가을 흉내를 낸다

아침나절 손끝에 적신 수돗물이 차갑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선선하다

절기 따라 흔들리는 여름 심술

갈 듯 하면서 가지 않는 얄미움

폭염에 지친 이파리들이

비꼬여 바람에 흔들리고

붉은 햇볕이 하얗게 바래가는 가을

 

어서 오소서 기다리던 가을이여!

물 찾아 헤매고 바람 찾아 헤매며

그늘 찾아 방황하던 여름날

지친 몸 가다듬고 식지 않은 요 위에 누어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깨면

도둑고양이처럼 밀고 들어온 갈바람

살그머니 다가와 발바닥을 간질이고

내 얼굴을 슬슬 만져댄다

 

 

 

♧ 초가을 - 최범영

 

울배기 여름은 옛날로 가고

꽃분이 가을은 미래로 가다

둘이 만나 사귀는 코스모스길

그 벌판에 서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하늘 숨길 수 없는 묵은 정

넌더리 장마에 풀기 가신 가을네 집

한숨과 눈물만 차게 하고

언제 그랬느냐고 여름이 간다

 

그렇게 여름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