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겨울에 피는 꽃, 팔손이

김창집 2015. 12. 10. 23:00

 

제주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아열대 기후로 변했다는데

그게 꽃의 징후로도 감지된다.

 

가을에 핀 꽃이 지지 않고 오래 핀다든지

봄에 피어야 할 꽃이 미리 피어버리는 경우이다.

 

그렇지 않고 겨울에 그냥 피는 꽃도 있다.

대부분 상록으로 남쪽에서 온 것들이다.

대부분은 철새들이 그 씨앗을 옮기는데

이 팔손이는 섬에 상륙 이후 텃새들이 옮겨

낮은 지대 숲속으로 퍼지고 있다.

 

기록물을 보면 꽃 피는 때가 10~11월로 되어 있지만

제주인 경우 피는 시기가 오래다.

 

팔손이는 두릅나뭇과에 속한 상록 활엽 관목으로

높이 2~3m까지 자란다.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가지가 갈라지는데,

꽃은 10~11월에 피고,

백색 잡성화로 원추 꽃차례로 달린다.

열매는 다음해 5월에 검게 익는다.

관상용이며 잎은 약용한다.

우리나라의 남해, 거제도의 바닷가 및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 편지 - 강연호

 

나의 겨울에도 그대는 늘 피어 있습니다

어디선가 한 올씩 실타래 푸는 소리 들려와

내다보니 조무래기 눈발 날리더군요

얼른 생각하기에는 처마 밑에서 떨고 있을

겨울새는 어떻게 몸 녹일까 궁금해졌지만

마음 시리면 잔걱정 늘게 마련이지요

하다못해 저 눈발도 마른 자리 골라 쌓이는데

그러고 보니 월동준비 튼튼하다고 해서

겨울살이 따뜻한 게 아니더군요

해 바뀌면 산에 들에 다시 꽃피는 거야

오랜 습관 바꿀 줄 모르는 자연법인데

그래도 무슨 꽃불 지필 일 있다고 노상

새 봄이 오면, 새 봄이 오면

기다림을 노래하는 사람들만 따뜻해 보였어요

생각 덮으러 끌어당기는 이불 적막한

나의 겨울에도 그대는 늘 피어 있습니다

기다려봐야 내가 피워낼 꽃은

천지사방 없는 봄인데, 그대는 여태 먼데

채 지나지 않은 세밑 달력이나 미리 찢어내고

오래 어이없었어요 조무래기 눈발 그쳐도

실타래 푸는 소리 여전한 건

실타래 푸는 소리 여전한 건

그대 향한 마음 한 올씩 풀어지기 때문이지요

 

 

♧ 그 섬에 가면 너를 만난다 - 이훈강

 

그 섬에 가면 너를 만난다

여름날은 푸르다가 새들의 노래로 정겨웁다가

겨울 바람에 침묵으로 흐를 줄 아는 섬

그 섬에 가면 너를 만난다

너는 사랑을 찾아 겨울에 피는 꽃

햇살이 싫어 그늘진 강가에 피는 물빛 기다림

다가가면 멀어지는 섬

그 섬에 가면 너를 만난다

하얀 외로움이 철없이 물수제비만 뜨던

그 섬에 가면 너를 만난다

나의 그· 리· 움

 

 

♧ 꽃의 복종(服從) - 김종제

 

나, 이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당신에게 오로지 복종하겠어요

눈부신 주단을 깔아놓고

우러러 보게 높이 세운 제단에

피 흘리는 제물과 향기로운 과일 아래

누구를 무릎 꿇게 해서

지배하고 명령하는 것보다

나, 저 꽃처럼 당신에게 복종할 거에요

그런데 알고 보니

고개 숙이고 복종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라

숲속의 나무도 계절의 시간에 복종하고

달은 몸을 수시로 바꿔가며

하늘의 뜻에 순종하지요

흘러가는 물은 어떤가요

계곡에서 시작하여 강을 지나 바다까지

허리 아래로 몸을 낮추고 복종하지요

잎에 매달린

저 황홀한 순간의 이슬처럼

누군가에게 복종하면

겨울에도 저렇게 흰꽃이 피지요

달빛 받아 열매가 맺히고

강물은 푸르른 잎사귀를 마구 흔들지요

이 세상에 복종 아닌 것이 없고

복종에는 아무런 경계의 틈이 없으니

내가 땅위에 서 있는 것들과

하늘위로 날아가는 것들에게 복종을 하면

당신도 나에게 복종을 하지요

당신에게 꽃 피는 것도 꽃 지는 것도

참으로 나에게는 복종이지요

오늘 아침에 내 머리를 때리며 내린 우박도

당신을 향한 나의 복종이지요 

 

 

♧ 사과 깎기 - 김하인

 

  지난해 눈 내리던 소리 사과 속에 숨어 있었나 봅니다. 과도로 빨간 사과 껍질을 에둘러 깎으며 사과 속살을 열어갈 때마다 들리는 사각사각, 사사각, 사각각, 사각사각…… 소리.

  칼 맞은 사과가 절명하면서 쉼 없이 자기 이름 사과! 를 엇비슷하게 외쳐대는 게 아닐까

  그런 턱없는 망상을 떠올리던 끝에

  겨울에 먹는 사과를 유달리 좋아했던 당신이 생각의 가지 끝에 환하게 매달립니다. 이 늦봄 당신 떠올립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제 마음에 제일 먼저 꽃피는 건 여전히 당신입니다. 당신 벗은 흰 몸 같은 사과 속살을 베어 먹다 보니 제 가슴속으로 당신과 걸으며 맞았던 눈발이 성긋성긋 떨어져 내립니다.

  흰 눈 쌓인 깊은 밤을 밟고 내게로 왔다가 돌아가던 그대 그리운 소리가 입 안 가득, 제 마음 가득합니다.

   

 

♧ 겨울 꽃 - 박정순

 

겨울 꽃으로만 피어나야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

머무르지 않고

취하지 않고

걸어가는 생이 어디 있으랴

 

겨울에 피는 꽃이어야만

따스함을 알 수 있다

바람불지 않고

비 내리지 않는

길이 어디 있으랴

 

거센 물결 이는 강가에 외로이 서 있는

겨울 꽃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

은빛 보석의 햇빛가루가

내맘속에 들어오면

어디쯤에 자리를 내어주랴?

 

겨울꽃이어야만이

그리움을 안다

봄날이 없이

여름날도 없이

결실 맺는 가을이 어디 있으랴

언덕 길 없이

굽어진 길없이

걸어가는 생이 어디 있으랴

 

 

♧ 사람꽃 - 이동식

 

겨울에 꽃이 피지 않는 것은 날씨가 추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꽃을 피워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사람꽃이 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꽃들은 알고 있다. 세상의 꽃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이

사람꽃이라는 걸. 그리하여 겨울이 오면 들녘의

모든 꽃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사람꽃-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온기를 먹고 자라는 꽃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사랑을 먹고 피어나는 꽃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풍성한 정으로만 시들지 않는 꽃

 

겨울에 꽃이 피지 않는 것은 날씨가 추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꽃을 피워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꽃으로 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