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중 시집‘백록담’
김규중 시인이 시집 ‘백록담’을 냈다.
첫 시집 후 13년이 흘렀다는데,
김규중 시인은
1958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94년 ‘시인과 사회’ 가을호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딸아이의 추억’,
‘의자를 신고 달리는’(공저),
시교양서로 ‘청소년, 시와 대화하다’,
‘새로 쓰는 현대시 교육론’(공저),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1 시’(공편)을 냈다.
현재 무릉초․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 시인의 말
제목이
내가 좋아하는 정지용 시인의 시집 제목
『백록담』과 같다.
그 정신에 다다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서
부끄럽지만
여기서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두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을 내고 13년이 걸렸다.
딴짓하고, 머뭇거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 가을 나무 앞에서 1
가을 나무는 나뭇잎을 지우며
더 큰 그늘을 만든다.
가을 나무는 열매의 기억을 지우며
더 많은 산 것들을 불린다.
마지막으로
가을 나무는 수고로운 눈물을 밖으로 보내며
더 깊은 겨울밤을 견딘다.
♧ 가을 나무 앞에서 2
어느새 눈이 침침해 아침에 머리카락 몇 올 빠져 어깨에 떨어지고 이젠 에너지 하나로는 부족해 추위에 근육과 뼈가 오래된 침대처럼 소리하고 이젠 두 개의 위로가 필요해 돌아갈 수 없는 지나온 길, 어느새 중년. 어느 새 오십 중반, 살아온 만큼 여전히 살아가고 싶은 욕망, 모아 놓은 것이 아직도 아직도 나는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해
가을 나무는 찾아갈 봄이 있어
저렇게 나뭇잎을 버린다.
♧ 겨울 숲에서
겨울나무에 흰 눈이 쌓였다
하느님이
일 년 동안 수고했다고
겨울나무의 야윈 어깨에
하얀 손을 얹어주고 있었다
♧ 돌감나무
걸어서 출퇴근하는 소롯길에
홀로 서 있는 돌감나무
여드름 터지듯 가지마다 열매가 익었다
가을이 다가도록
누구 하나 따가는 사람 없어
알감은 나뭇가지에 꼬치처럼 매달렸다
술안주로 하늘에 놓여 있다
더러는 새에게
더러는 햇살에게
더러는 바람에게
더러는 이미 속알까지 주어 거칠거칠 갈색으로 쪼그라들었다
늙은 어미의 젖꼭지처럼
늙은 아비의 불알처럼
♧ 발견
오십 중반을 넘어
조금만 더가 아닌
조금만 덜
가장 어렵다
♧ 백록담 2
항공사진으로 내려다보면
마치 배꼽 모양을 한
백록담 분화구
탄생의 흔적으로만 남고
멸망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할
지구의 배꼽
백록담 분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