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연말 아침 죽절초 열매와

김창집 2015. 12. 28. 09:31

 

아침에 좀 일찍 깨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여행 방송에서 ‘마지막 샹글리라’를 봤다.

 

올해 단 한 번 있던 해외 나들이에서

찾았던 곳이다.

 

방송에서 기획한 내용이라

그곳 여러 기관의 협찬을 얻어

속속들이 촬영한 것이어서

우리가 갔던 것은 맛보기였음을 느꼈다.

 

샹글리라를 찾아 나선 길에서

삼신산이라는 6천m급의 설산인

금강보살산, 문수보살산, 관음보살산 중

어느 하나에도 이르지 못하고

결국 돌아오면서 깨달은 것은

한 촌로가 얘기한

‘마음의 설산 너머에 있는 곳’이었다.

 

어제 오름길을 걸으면서

60대 모 여회원이 한 말,

‘요즘 들어 주말에 한 번 이런 아름다운 자연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걷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느끼고 산다.’는 얘기가

가슴에 와 닿는 연말 아침이다.

 

아침에 빨간 죽절초 열매를 보며,

비록 올 한 해 이루어 놓은 것은 별로 없다 할지라도

내가 한 일들에서 몇 가지가 어느 사람들에게는

이 죽절초 열매처럼 조그만 열매를 달아준 게 아니냐고

애써 위로를 해보는 것이다. 

 

 

♧ 송년의 강 - 鞍山 백원기

 

세상 존재 하는 것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 가지 않는다

애타게 붙잡아도

속절없는 세월은

욕심껏 앞으로 가다가

기어이 해를 넘고 만다

 

늦은 저녁 한숨일랑 걷어내고

내달리는 세월의 강에

흘려보낼 것은 보내고

씻을 것은 씻어야지

 

버려야 할 것들

잔뜩 껴안고 있으면 뭣하나

갈등 속에 몸부림치다가

송년의 강에 띄워 보내는

근심 걱정 후회 실망...

그 대신 너의 빈자리를

사랑과 감사로 채워줄게

   

 

♧ 송년의 詩 - 임영준

 

언제 우리가 버둥거린다 해서

잠시라도 손 놓은 적 있었던가

숨 가쁘게 달려간다고

순풍에 돛 달린 적 있었나

누구는 순조롭게 다 이루어

환호성을 올리고 있을 것이고

누구는 상실과 낙망으로

분루를 삼키고 있을 것이지만

이쯤에서 모두 매듭짓지 않으면

가뿐이 싹트지도 않을 것

그래서 이런 마침표가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니겠나

어차피 저물어 가는 이 한해

안타까워도 보내야 하고

아쉬워도 잡을 수 없는 것

무척 다행스럽게도 번듯한 무대가

또다시 떡하니 펼쳐진다는 것

느낌표 몇 개 찍어버리고 나서

열정적으로 써내려갈 것들을

퇴고하고 조율하면 된다는 것

출구가 보이지 않아도 막연히

무언가 열릴 것이란 것만으로도

과감하게 닫아버릴 수 있지 않을까

 

 

♧ 송년送年 - 오보영

 

어쩔 수없이 널 보내야 하지만

 

너와 함께 했던 지난 세월

내겐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 이었단다

 

생동하는 봄엔 네게서

생기를 얻었고

푸르른 여름엔 너로

풍성함을 누렸고

단풍진 가을엔 네

고운 얼굴에 반했었으니까

 

때론

불어 닥친 폭풍우에

여린 몸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간혹

매서운 강추위에

맘 얼어붙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난

네가 있어

많이

 

행복 했단다

 

 

♧ 송년에 기대어 - (宵火)고은영

 

어느 날부터 기도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게으른 결과만큼 후회만 앞서는 나는

자랑할 게 하나도 없구나

미래의 소박한 꿈을 설계를 한다거나

이제 나는 거대한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포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는 아파했더냐

가중되던 고통 속의 기도야말로 얼마나 절실했더냐

욕망의 무게가 무겁거나 뜨거운 욕구일수록

굽이치는 아픔의 상처나 실망도 큰 것이다

어떤 욕구나 욕망도 이제 와 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폐기돼야 할 허접한 부유물이고

살아오며 비워야 하는 욕된 허구임을 알았다

 

슬픔에도 내성이 생기고

내성에 점점 익숙해지면 무덤덤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포기하는 삶을 천천히 습득하는 것이다

고통이 됐건 행복이 됐건

인생이란 특별할 게 하나도 없이

어떤 형편에서 건 그저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그것이 세월이 내게 준 연륜이고 면류관이었다

 

그것이 현재 내 삶의 현주소이며

결과이고 결론인 것이다

묵직한 생의 애환들이 두텁게 쌓여도

나이를 먹을수록 생의 종점을 향하여

이제 조용히 걷고 싶은 것이다

절대 침묵으로 최상의 고요 속을 유영하고 싶은 것이다

   

 

♧ 송년의 노래 - 박금숙

 

해가 저문다고

서두르거나 아쉬워하지 말자

처음부터 끝은 없었던 것

세월의 궤도를 따라

지칠 만큼 질주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는

어제의 일조차 까마득히 잊은 채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길을 돌아왔을 뿐

제각각 삶의 무게에 얹혀

하루해를 떠안기도 겨웠으리라

 

잠시 고된 짐 부려놓고

서로의 이마 맞대줄

따뜻한 불씨 한 점 골라보자

두둥실 살아있는 날은

남겨진 꿈도 희망도

우리의 몫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