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제주시조 23호와 담팔수

김창집 2016. 1. 14. 23:40

 

담팔수는 담팔수과의 늘푸른나무로

제주도, 일본 규슈, 오키나와, 타이완, 중국 남부 등

난대에서부터 아열대에 걸쳐 자라는 나무다.

 

한 때,

담팔수는 서귀포가 북방한계선이라 하여

천지연에 있는 이 나무 군락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으나

요즘 지구온난화로 한계선이 삼남지방까지 올라갔으며,

묘목으로 길러 가로수로 자리 잡은 곳도 있다.

 

보통은 새잎이 다 자라는 초여름에

잎이 빨강으로 물들며 떨어지지만

삼성혈 뒤편에 있는 이 담팔수는

이상이 있는지 지금 이렇게 물들었다.

 

제주시조 제23호의 시조 몇 수를 뽑아

담팔수(膽八樹) 사진과 같이 올린다. 

 

 

♧ 각재기국 - 오영호

 

쾌쾌한 부엌 연기

정지 문을 넘는 저녁

 

된장 풀어 논 냄비에 바당으로 아날 것 같은

싱싱한 각재기 통째로 놓아 끓으면,

배춧잎 박박 찢어놓고, 풋고추도 분질러 놓아

한소큼 끓인 각재기국

 

어머니,

그 배지근한 맛

오늘 따라 그립습니다.

 

 

♧ 어머니의 1장 - 이애자

 

아랠 보며 살라했지만

 

늘 바닥여서 놓친 부분

 

엄마가 되어서 본

 

좀 슬긴 하늘, 엄마의 하늘

 

아래로 굽어 살피시어

 

온 세상

 

비치도다 

 

 

♧ 수평선과 나 - 이용상

 

바다에

모두 버렸다

경작했던

수평선도

 

아버지 할아버지도

다 가져간 제주 바다

 

삼백 년

귀양의 세월

가슴 깊이 파랑친다 

 

 

♧ 오일장을 나오며 - 이창선

 

할머니 난전은

이미 다 파장인데

 

양쪽 눈 부릅뜨고

먹이 찾는 비둘기

 

유년의

얼어붙은 삶

노을처럼 저문다 

 

 

♧ 이젠 평화를 노래하고 싶네 - 장영춘

       -도안응이아*

 

구덩이 피눈물

이젠 걷어내고 싶네

젖동냥으로 살아나 눈까지 먼 나는

어머니 따뜻한 가슴 기억하지 못하네

 

지난날 어둠 속에 쟁여뒀던 증오심을

기타 줄에 매달아 그날을 노래할 수 있다면

어두운 저 들판에다 초록 옷을 입히고 싶네

 

꽝아이,

제주의 들에도

봄은 왔지만

그날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길 위에 발자국만 남긴 채 돌아오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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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응이아 : 베트남 꽝아이 민간인 학살 생존자

   

 

♧ 감자 이삭줍기 - 한희정

 

흙은 아직 온기 남아

기다리는 손길 있다

 

이랑 경계 무너져도

분명해진 자취 따라

 

하얗게

꽃피던 그날 결백을 짐작했던,

 

묻혔던 네 실체는 벗겨진 살갗으로

 

진실을 증명하듯

뭉클하게 다가올 쯤

 

저만치

심지 올리는 꽃향유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