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조 23호와 담팔수
담팔수는 담팔수과의 늘푸른나무로
제주도, 일본 규슈, 오키나와, 타이완, 중국 남부 등
난대에서부터 아열대에 걸쳐 자라는 나무다.
한 때,
담팔수는 서귀포가 북방한계선이라 하여
천지연에 있는 이 나무 군락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으나
요즘 지구온난화로 한계선이 삼남지방까지 올라갔으며,
묘목으로 길러 가로수로 자리 잡은 곳도 있다.
보통은 새잎이 다 자라는 초여름에
잎이 빨강으로 물들며 떨어지지만
삼성혈 뒤편에 있는 이 담팔수는
이상이 있는지 지금 이렇게 물들었다.
제주시조 제23호의 시조 몇 수를 뽑아
담팔수(膽八樹) 사진과 같이 올린다.
♧ 각재기국 - 오영호
쾌쾌한 부엌 연기
정지 문을 넘는 저녁
된장 풀어 논 냄비에 바당으로 아날 것 같은
싱싱한 각재기 통째로 놓아 끓으면,
배춧잎 박박 찢어놓고, 풋고추도 분질러 놓아
한소큼 끓인 각재기국
어머니,
그 배지근한 맛
오늘 따라 그립습니다.
♧ 어머니의 1장 - 이애자
아랠 보며 살라했지만
늘 바닥여서 놓친 부분
엄마가 되어서 본
좀 슬긴 하늘, 엄마의 하늘
아래로 굽어 살피시어
온 세상
비치도다
♧ 수평선과 나 - 이용상
바다에
모두 버렸다
경작했던
수평선도
아버지 할아버지도
다 가져간 제주 바다
삼백 년
귀양의 세월
가슴 깊이 파랑친다
♧ 오일장을 나오며 - 이창선
할머니 난전은
이미 다 파장인데
양쪽 눈 부릅뜨고
먹이 찾는 비둘기
유년의
얼어붙은 삶
노을처럼 저문다
♧ 이젠 평화를 노래하고 싶네 - 장영춘
-도안응이아*
구덩이 피눈물
이젠 걷어내고 싶네
젖동냥으로 살아나 눈까지 먼 나는
어머니 따뜻한 가슴 기억하지 못하네
지난날 어둠 속에 쟁여뒀던 증오심을
기타 줄에 매달아 그날을 노래할 수 있다면
어두운 저 들판에다 초록 옷을 입히고 싶네
꽝아이,
제주의 들에도
봄은 왔지만
그날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길 위에 발자국만 남긴 채 돌아오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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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응이아 : 베트남 꽝아이 민간인 학살 생존자
♧ 감자 이삭줍기 - 한희정
흙은 아직 온기 남아
기다리는 손길 있다
이랑 경계 무너져도
분명해진 자취 따라
하얗게
꽃피던 그날 결백을 짐작했던,
묻혔던 네 실체는 벗겨진 살갗으로
진실을 증명하듯
뭉클하게 다가올 쯤
저만치
심지 올리는 꽃향유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