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설날 아침에
♧ 병신년 설날 아침에
병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갈수록 녹록치 않은 해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설날 아침은 희망을 갖고 맞읍시다.
모든 행불행은 생각 나름이고
좋은 일은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작년엔 좋은 날씨에 중국 차마고도와 샹글리아에 다녀오고
베트남 하노이, 꽝아이, 빈호아, 다낭 등지 방문,
경주 두 번 답사,
산만 해도 주왕산, 경주남산, 천관산을 오르는 등,
많이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하지만 손목을 다쳐 덕유산 종주와 설악산 공룡능선을 포기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날마다 이곳을 찾아주시는 여러분도
올해는 좋은 꿈 꿔 행운을 얻고 건강을 지키면서
좋은 여행 많이 다니세요.
♧ 설날 아침에 -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 설날 아침에 - 김설하
동녘이 환해지며
먼동이 터오는 설날 아침
오순도순 정겨운 이야기와
웃음꽃 활짝 피는 복된 새해 새날입니다
소복소복 쌓여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눈처럼
우리 가슴에도 순백의 폭설이 내려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는 순한 마음으로
따뜻하고 정답게 살 것을 약속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인연을 만나도
아름다운 이웃으로 지내며
즐겁고 활기차게 살겠습니다
올해는 좋은 일 가득하시고
올해는 웃는 일 많이 생기시고
올해는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불끈 솟아오르는 저 붉은 태양의
열렬한 기운을 모두 받으셔서 부자 되세요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설날 아침 - 최진연
마당가 감나무 꼭대기를 비추는 햇살
그 햇살 쬐고 앉은 까치 한 마리
깍, 깍, 깍, 깍
꽁지 까딱이며 깃을 털 때마다
떨어지는 발간 햇살 부스러기들
깃털 무늬 아롱진 축복의 씨앗들.
까치와 새해 인사를 나누려는지
설빔을 차려 입은 한 아이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본다.
동그래진 눈 속으로 빨려드는
하얀 봉당 끝, 하얀 마당
무럭무럭 김을 뿜으며 소죽을 먹는
외양간 지붕에도 소복 눈 덮인 풍경들
까치는 그 새 어느 집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날아가고
새파란 하늘을 인 앞산 머리 위로
아침 세수한 해가 솟아오르는데
앞집은 아직도 떡국을 안 먹었을까?
용마루가 묻힌 그 집 지붕 위로
하얀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게.
♧ 설날(214) - 손정모
자오선이 평소에 어디를 지나건
솔바람 소리에 깨어나는 산울림처럼
천체는 동에서 서로 기울기 마련이리라.
졸면서도 되풀이되는 타성의 발자취에
결코 이대로 둘 순 없다며
선조들, 지혜의 칼날 갈았네.
정월이 하필이면 겨울인 것은
춘삼월의 환희를 기약함일까?
강가에 드리워진 물안개처럼
내막 알 수 없을지라도
날 잡고 마음 가다듬어 여는
새해의 첫 날이여.
♧ 설날에 - 김경숙
댓돌 위에 신발이 늘어갈수록
신명나서 분주해진 어머니는
불혹을 넘긴 딸들 아랫목에 앉히고
준비하신 음식 내오기 바쁘시다
혼자 지내신 외로운 나날들
그동안 하고픈 말 어찌 참으셨는지
손주들 알아듣지 못하는 구수한 사투리로
지난 일들을 생중계 하신다
먼 친척 애경사며,
동네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
서울에 살고 있는 옆집 아무개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대 서사시는 밤을 밝힌다
이 밤 지새우고 나면
댓돌 위에 신발들 모두 떠나고
한 켤레 빈 공간 넘나들며
기약 없는 날을 세고 계실 텐데
밤새 내린 눈은 어머니 마음 아는지
댓돌 위에 소복이 쌓여
서둘지 말고 떠나라 일러준다
♧ 설날 풍경 - (宵火)고은영
아버지 정갈한 두루마기 앞섶이
유난히 차 보이고
대님 매던 서툰 손놀림에
여명의 장 닭소리 아직 생생한데
희망을 두레질하는 차례상에는
언제나 생소한 얼굴들이
낡은 액자에 오랜 고화로 박힌 채
살폿 웃거나 근엄하다
쪽진 머리 저 여인은 고조 할매
흑백의 두루마기 아스름 저 시무룩한 고조 할배
구레나룻 여덟 팔자 유난히 쌔근한
저 남자 우리 할매 멋스러운 지아비
서른한 살 과부든 우리 할매
할배 바라보는 눈매가 붉어 애처롭다
묵시적 가족사
태어나 얼굴 한번 구경 못했다
피붙이라고 살가운 말 한 마디 없었다
어느 시공에도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했고
만날 수 없던 운명 호적에나 묶여 있을까
설날 아침
휘적휘적 저 눈길을 걸어 온 조상들
우리 집 안방에 진귀한 고화 전시에 나란히 앉아
한껏 밝은 얼굴로 따끈한 떡국을 드시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