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 봄이 오는 길목에서
별도봉에 개구리갓 꽃이 피었다 한다.
배를 타고 제주항이 가까워졌을 때
눈앞에 서 있는 알맞게 솟은 두 봉우리.
동쪽이 별도봉이고 서쪽이 사라봉이다.
봄이면 별도봉은 들꽃의 전시장이 된다.
개구리발톱풀이나 개불알풀, 쇠별꽃, 민들레,
광대나물, 괭이밥 정도는 따뜻한 겨울에도 찾을 수 있고,
입춘을 전후해 개구리갓이 뛰쳐나오면,
그 뒤로 산자고, 자주괴불주머니, 살갈퀴 꽃 등이 이어진다.
어제 설 쇠러 시골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보니
이번 혹한과 폭설에 많은 꽃들이 얼어 죽었다.
죽은 것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온난화된 틈을 타 슬금슬금 눈치 보며
섬으로 상륙해 자리 잡았던 놈들이다.
이렇게 토종들은
언제 그랬냐 싶게 피어나는데….
♧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정지원
태동이 있었네
봄은 개울에서 소리가 되고
하늘에서 바람이 되는가
얼음이 녹아 봄으로 흐른다
물소리는 얼음을 깨고
햇살이 바람을 부순다
발끝을 들어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를 본다
가지 끝에서
땅끝에서.
♧ 봄이 오는 길목 - 진상록
흙들이 들풀처럼 일어서고 있다
천군만마 대군을 이끄는 선봉장은 봄이다
봄을 응원하는 바람들 저마다 아우성이다
푸른 스카프 바람에 휘리리 날리며
들판을 달려 언덕을 넘고 산을 오른다
음지를 찾아 기어 들어가는 겨울의 찌꺼기
승기를 잡은 봄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무릎 꿇고 두 손 들어 항복한다
대지 위엔 봄이 이끈 백성들 한 데 뭉쳐
기쁨에 젖은 눈물 찬란한 꽃으로 피고 있다
저 들녘에
저 언덕에
아득히 보이는 저 산 위에
♧ 봄이 오는 길목에서 - 김덕성
시리도록 빛나는
아침 햇살처럼 띠가 없는
맑고 환한 웃음을
그대에게 선물로 보내고 싶습니다
사랑스럽게 윙크하는 봄꽃처럼
화사한 얼굴로
아름다운 향기를
가슴에 담아 보내고 싶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뜨거운 삶의 에너지를
그대로 인해 충전되어
행복을 얻었기에
행복을 마음에 새겨 전하고 싶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나의 존재를 사랑으로 알았기에
그대에게
죽도록 사랑하겠노라고
훈훈한 봄바람에
이 한마디를 실려 보내고 싶습니다.
♧ 봄비 오는 길목 - 유일하
봄비가 지나는 자리마다
뚜렷이 다가서는 그대모습
때로는 자그마한 떡잎에
애교어린 눈물로 노래하고
가슴 속 깊은 슬픔을
솔잎 끝에 머금은 상태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보고프면 보고픈 대로
우린 각자의 길에서
서로를 간구(懇求)하며
봄비가 내리는 길목에
나무처럼 서서 꽃 피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