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조심스레 핀 명자꽃

김창집 2016. 2. 10. 09:12

 

♧ 조심스레 핀 명자꽃

 

어제 차에서 내려 걸어다가

골목길을 지나는데

붉은 색이 언뜻 비쳐

‘아. 그렇지’ 하고

되돌아 들어가 보니

울타리 너머로

조심스레 명자꽃이 서너 송이 피었다.

 

그래 이제 입춘이 지나고

명자꽃 필 때가 온 것이다.

 

 

♧ 사랑하는 명자씨 - 공석진

 

명자씨

사랑하는 명자씨

사랑을 위하여 꽃 피우지 마세요

상처받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닐진대

꽃이 지고난 후

이파리 바람에 날아가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저 눈물만 가득 뿌리며

맨바닥에 뒹굴면 어쩌시려구요

 

명자씨

서러운 명자씨

다가올 사람 유혹하지 마세요

떠나간 사람 그리워하지 마세요

당신의 선홍빛 자태는 눈부시나

새벽녘 감춰진 이슬의 영롱함은

세상 사람들의 이기심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굳이 본능으로

애써 꽃 피우려거든

뭇 남정네들에게 보이지않는

먼지 가득 머금은 길목련으로

거친 산등성 후미진 곳에 자리하세요

 

혹여

산심(山心)캐는 심마니처럼

당신의 겸손함을 사랑하여

평생 맺어질 가인(佳人)으로

다가설 지도 모르니까요

   

 

♧ 명자꽃 - 김승기

 

캠퍼스에 내려앉는 햇살

만지고 있는

새내기 여대생

 

처음 접해본 동아리 모임

초경 치르던 밤이 생각나는지

발그랗게 달아오른 얼굴

 

이렇게도 다른 세상이었던가

 

기다려지는 엠티 대학축제

초등학교 때 소풍전날 밤처럼

봉긋 솟아오르는 젖가슴

울렁울렁

토해내는 어지럼증

 

이제 리포트는 어떻게 쓸까

 

겨울처럼 보낸

여고시절 떠올릴 때마다

하혈로 찾아오는

생리통

지금은 봄이다

 

 

♧ 명자꽃 - 목필균

 

붉은 립스틱 벅벅 그어대며

그사람 근무하는 사무실 창에

사랑을 고백했다는

전설 속의 그녀

 

뜨거운 사랑의 몸짓

한 길로만 흐르는 아픔일까

 

겨우내 칭칭 동여매었던

가슴앓이 신음소리

딱딱하게 굳어진 가지에도

붉은 핏물이 방울방울 내비쳤다

 

길어진 햇살

남향 창가에 서 있는

명자가

전설의 그녀가

한 몸으로 불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