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선의 봄꽃시편
♧ 때죽나무 종 되어
사려니 숲 황톳길에
때죽나무 가지마다 꽃향기 만발해
숲을 적시네
사려니 숲 황톳길에
간밤에 내려온 하얀 별무리들
눈이 부셔 차마 밟지 못하네
나, 때죽나무 은은한 종이 되어
진동하는 여름을 살겠네
꿀벌의 주파수 붕붕거리며
사려니, 사려니, 살겠네
♧ 산딸나무
바람 한 점 없어
고유가로 추락했나
작고 귀여운 바람개비,
선한 눈을 가진 산딸나무 한 송이
산책로 계단에서 나를 붙드네
쉬었다 가시라고
허리 한 번 펴시라고
그 향기로운
생수 한 모금
♧ 수선화
사라봉 오르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새벽부터 부지런 떨었나
강낭콩 꼬투리에 알통 만들 듯
볼록볼록
소한, 대한 견디며 배불러 오던 날
입춘 예정일을 앞두고
양수가 터지고
끙,
아랫도리에 힘주어
온몸으로 꽃봉오리 밀어올렸나
혼절하듯 꽃향기에 취해
사라봉 타오르는
봄빛
사람들,
♧ 목련이 피고 지고
철새 무리지어 날아온 듯
목련이 피었다
머나먼 여정을 위하여
잠시, 몸 추스르는 착지
보았는가
스쳤는가
명지바람 휘휘 손을 흔들어
겨울철새 시베리아를 향해 날아오르듯
저 절절한 회향
♧ 저, 빗소리에
만약,
꽃이 한 번 피고 영영 질 줄 모른다면
그때도 아름답게 보일까
길가나 로터리에 잘 가꾸어 놓은 꽃도
때론,
제복을 입은 마네킹 같이
성형 가면을 쓴 웃음이
낯설 때도 있는데
오늘따라
오름 어느 자락에 없는 듯 피어 있던
작은 들꽃 한 송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다듬지 않아서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더 그립고 애틋한
가슴을 두드리는
저, 빗소리에
어딘가에서는 꽃 한 송이 피어나고
어깨를 들썩이는 울음 같은
저, 빗소리에
어딘가에서는 꽃 한 송이 지고 있겠지
꽃은 질 때 더 아름다워야 하리
황홀한 사랑도 저물 때가 있듯이
누군가의 가슴에
더 애틋한 그리움으로
고여 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