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제23주년 4‧3문화예술축전
‘한라산 오름자락 엉장에도 꽃은 핀다’
2016년 스물세번째 4‧3문화예술축전 표제입니다.
제주민예총이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4.3사건 추념시화전이 제주작가회의 주관으로
4월1일 4‧3평화공원에 전시를 시작하여
6월30일까지 시간의 벽에 전시된다.
4‧3미술제는 탐라미술인협회 주관으로
‘새도림-세계의 공감’이란 주제를 갖고
제주도립미술관에서
4월2일1부터 24일까지 전시된다.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노형해원상생굿’은
4.9(토) 10:00~15:00 사이에
노형동 주민센터에서 열린다.
4‧3거리예술제는
4.2(토)~4.3(일) 이틀간 14:00~19:00 사이에
제주시청앞 광장에서 열리는데
안치환과 함께하는 4‧3평화음악제
‘잠들지 않는 남도’는 4.2(토) 17:00
역사맞이 거리굿
‘애기동백꽃의 노래’는 4.3(일) 17:00에 열린다.
♧ 이제는 함께 해야지요 - 김수열
무자년 겨울이었지요
아무 죄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를 앗아간
칼바람에 질려 수평선으로 날아간 바람까마귀처럼
아버지는 아버지의 큰아들, 형님의 손을 잡고
한라산도 모르게 밤바다로 나섰지요
해산 날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살아 있으면, 살아만 있으면 만날 거라며
어미 뱃속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발길질만 하는 둘째 부탁한다며
밀항선에 몸 실어 현해탄 건넜지요
그 해 겨울
햇살 바른 동짓달 그믐날
아버지도 없이 형님도 없이
이웃집 삼신할머니 손 빌려
아버지의 둘째 아들, 형님의 동생은 세상 밖으로 나왔고
미역국 한 그릇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어머니는
지아비의 행방을 대라는 토벌대의 손아귀에
머리채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간 후
지금껏 감감무소식입니다
무슨 연유인지 형님도 아버지도 소식 한 장 없습니다
형님,
다시 무자년입니다
4. 3에 태어나 내 나이 이제 육십
죽지 못해 살아온 세월입니다
간 날 간 시 모르는 어머니 위해
난 날 난 시에 향불 사릅니다
형님의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내 아버지는
어디 계신지요
형님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 계신지요
돌아오는 어머니 기일 날
형님, 한라산으로 한 번 오셔야지요
그래요, 기일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봄이면 유채꽃이 겨울이면 동백꽃이 형님을 맞겠지요
겨울이면 붉은 동백이 형님을 맞이하겠지요
어머니의 품 같은 한라산이 형님을 안아주겠지요
그러니, 꼭 한번 오셔야지요
안 그래요, 형님?…
♧ 이제랑 오십서 - 강덕환
‘이제나 오카 저제나 오카’
먼 올레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여기며
버선발로 뛰쳐나가던 세월이
쉰 해를 훌쩍 넘겼는데
‘아방 오민 곹이 먹어사주’
밥을 먹어도
몫을 따로 챙겨두고
수제빌 끓여도
국물만 들이키며 보낸 세월이
백발로 늙어갑니다
바람은 천 년을
불어도 늙지 않고
구름은 만 년을 흘러도 흩어졌다 모이는데
식구들 둘러앉아 먹던 밥숟가락
채 놓기도 전에 끌려간 부모형제들은
호적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보도 듣도 못한 형무소에서
들이쳐 분 바당에서
한라산 어느 골짜기에서
총 맞고 매 맞아 흙구덩이에 처박히고
복 먹어 고기밥이 되고
얼고 배고파 까마귀밥이 되어
간 날 간 시 몰라
난 날 난 시로
제상 받아 앉은 칭원한 영혼
이제랑 오십서
발걸음 쿵쿵
헛기침도 서너 번 외울르고
부는 바람, 흐르는 구름 잡아타고
여기 안자리로 앉으십서
정성의 제단에 해원의 향불 피우오니
상생의 촛농으로 흘러 내리십서
♧ 까마귀가 전하는 말 - 김경훈
1
그해 겨울엔 저리
주둔군처럼 눈보라 휘날렸네
낙엽처럼 아픈 사연들 무수히 지고
속절없이 억새는 제몸 뒤척였네
쫓기듯 암담한 세상
아득한 절망의 끝자락
어디로든 길이 막혀
앞일을 가늠할 수 없었네
그렇게 그해 겨울엔
몸 녹일 온기 하나 없었네
2
온통 언 땅 속에서도
생명의 봄은 있었네
억새도 갈옷 벗어
연두빛 봄맞이 하고
이름 없는 무덤들
고운 잔디옷 저리 푸르네
맺힌 원정 앙금 풀어
봄바람 속 가벼이 흐르니
솟아오른 마음이 영을 달래듯
그렇게 무리 지어 목놓아 우네
♧ 바람의 집 -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섬, 4월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의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햇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다만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섬, 4월 바람은 당신의 뼈 속으로 스미는 게 아니라
당신의 뼈 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로부터 시작되는
당신이 바람의 집이었던 것
♧ 벚꽃이 피면 - 김영란
이른 봄
쇠창살로
햇살이 숨어든다
어느 날 빨갱이 기집이라고 느닷없이 잡혀갔을 때 내 등엔 세 살짜리 딸이 업혀 있었고, 새 생명 하나 움트고 있었지. 이유도 물을 새 없이 몽둥이찜질 당했지. 비바람치던 어느 겨울 밤 난생 처음 배를 타 봤어. 어디로 가는 건지 왜 나를 끌고 가는지,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어. 죽음보다 더한 공포, 물을 수가 없었어. 동물적 본능이었을까 시퍼렇게 참던 아이. 맞은 다리 찢기어 썩어들고 진물 나고 흰 뼈가 다 드러나도록 신음 한 번 안낸 거야. 어미라는 작자가 제 세끼 아픈 것도 모른 거야. 마지막 의식인 듯 어미젖 부여잡고 싸늘한 입맞춤으로 작별인사 하고 갔어. 전주형무소 공동묘지, 거기가 어디였을까? 묻어두고 안동으로 이감되는 날, 벚꽃 핀 걸 보았어.
딸아이
옹알이처럼
내려앉고
잊었어
♧ 4월의 노래 - 김순선
숨죽이다 하얗게 질려버린
산벚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아직 이른 봄날
바람이 검붉은 허리를 내려칠 때마다
연분홍 비늘꽃을 무량무량 떨군다
하늘도 적막 속에 조각보를 잇는 선흘리 곶자왈
코흘리개 아이들 병정놀이인 듯
토벌대 총성 앞에 무참히 고꾸라진
목시물굴 속 영혼들
은신처라 숨어든 어둠 속 그늘 집이
불꽃을 잠재운 합묘로 떠올랐다
내 어머니 가슴에 용암으로 굳어버린
덩어리 덩어리
바람도 쉿! 큰 소리 내지르지 못하던 절망을 딛고
말더듬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암갈색의 산벚나무 저리 키를 높였는가.
소름은 저리 돋아 살비듬을 떨구는가
해원으로 떨어지는 연분홍 비늘 하나 내 몸에 꽂혀
쥐도 새도 모르게 들려주던 어머니 사설 속
징용으로 끌려간 외삼촌의 서슬 푸른 눈을 만난다.
꽃 진 자리 연두빛 잎으로 돋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