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 4월호의 시와 남방바람꽃
♧ 주요 목차
*권두 에세이 | 임채우
*신작시 18인 選 | 홍해리 하재일 송문헌 윤석주 허 정 박은우 배교윤 이 산 장성호
이재부 한인철 한문수 안원찬 정운자 채영조 황서희 라윤영 진혜진
*기획연재_인물시 | 이인평
*신작 소시집 | 나병춘
*테마 소시집 | 민구식
*시인이 들려주는 좋은 시 | 유진 ‧ 정병성
*이야기가 있는 시 | 홍예영 ‧ 권순진
*한시한담 | 조영임
*수필 산책 | 안명지
♧ 집 - 이무원
물고기의 집은 물이고
지렁이의 집은 땅이다
유독 사람만이 지붕을 만들어
하늘을 가리고
조그만 창으로
세상을 본다
♧ 원願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 169
배고프면
밥 먹자 하고
아프면
병원 가자는,
말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걱정 없겠다
정말 좋겠다.
♧ 너설지대로 가는 사람들 - 송문헌
- 설악산 오르기
1.
내원암을 지나 울산바위 쪽으로
신흥사 한밤을 들어선다 도둑괭이들처럼
잠든 계조암 겨드랑이로 스며드는
어둠 속 대원들 숨죽이며
미시령 곁으로 소리 소문 없이 다가서고
마루금에 올라서니 별빛을 따라
용케도 미시령서 올라오는 꾼들과 마주친다
아깝고 허탈하다 외돌아 온 두어 시간이
투덜투덜 앞서가는 이들 머뭇거리나 싶더니
황철봉 첫 관문 너설지대가 버티고 있다
음흉하게 입 벌린 바위틈새 틈새들
거기가 천국일까 화탕지옥일까
까마득 어둠속 키를 넘는 너설지대
더듬더듬 오금 저리게 건너뛰고 기어올라
1,087m 첫 봉 대원들이 주저앉는다
2.
나를 밟고 넘어가라 음흉한 손짓
또 낯선 너설지대 소름끼치게 타오르는
장검을 휘둘러 어둠 베어 내는가
핏빛 수평선 칼금을 긋나 싶더니
활활, 햇덩이 불타오르듯 치솟는다
마주한 울산바위 남으로 대청 중청 소청
화채봉 능선들이, 그 옆으로 불콰하게
세존봉 얼굴 내미니 괴기스런 공룡능선 꿈틀
등줄기를 비틀고 모른 채 귀청을 둘러선
서북능선이, 서북능산이 장엄하다
나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으랴
타오르는 세상 한기 녹여내는 동해 햇살
햇살을 끌안고 한발 또 한발 허술한 발걸음
사람들 찾아 세상 너덜지대 속으로
황철봉 비탈 산길을 내려선다
♧ 새벽에 - 배교윤
다가오는 여명 속
텃새들의 움직임이
고요한
산사의 문
미명 속
작은 날개의 기억을 더듬는
거수巨樹의 잔가지들
♧ 새싹 - 이산
은밀히 땅속에 자리를 잡고
지난 죽음의 시간을 묵상하며
거두어 올린
지구의 골수를 밀어낸다
필생의 한 수!
♧ 정치 장날 - 이재부
소를 잡듯 급소 찾는
선거 열풍 벼슬 장사
선지, 고기, 내장, 가죽
대박의 꿈 낭자하다
굽힌 허리 숙인 고개
되기 전엔 선량인데
국익에는 관심 없고
싸움에만 혈안일 걸
낡아빠진 헌 것들이
흔든다고 새것 되나
발목 잡던 물귀신들
이합집산 장마당에
힐끔힐끔 눈치보다
제발 찍는 청맹과니
벼슬 장날 기상 예보
국가 명운 걸렸는데
얼이 빠진 벼슬 장꾼
하늘 사정 아시는가.
♧ 울퉁불퉁한 물소리 - 진혜진
이것은 책상 위에서의 물에 대한 읽기이며 받아쓰기
개울 물소리가 들려오는 책상에서
어미 새가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
자갈에도 모성애가 생긴다
교복을 다려준 엄마 마냥 어미 새가 젖은 깃털을 펴준다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네 마리 이름이 생긴다
꽥꽥 꽉꽉
개울 물소리가 후렴구로 자라난다
개울의 핵심어는 이별
번지점프를 할 수 있자 어린것을 떠나가는 것
그것은 내가 주제를 놓친 4교시 국어시간이었다
철새가 날갯짓을 할 때까지 개울은 책상
개울을 가진 서랍에 가족사진 얼굴들이 들락거린다
가끔 건너편 호수를 바라보며
자갈에 걸려 흔들리는 건 나의 뒤뚱거리는 걸음이다
멈추며 기다려 주는 물결무늬 부근에서
어미 부리가 어린 새의 깃털에다 비행법을 기록한다
치어들의 첫 페이지를 잠시 덮어두고
놓쳐버린 먹이를 수업이라고 적는다
어미가 사라지자 개울 물소리가 울퉁붕퉁해진다
♧ 물의 화장법 - 나병춘
아무나 흉내낼 수 없다
저 도저한 변장술
천둥 번갯불도 담아 슬쩍
단풍산도 가져다 슬쩍
훔쳐도
또 훔쳐도
모자라는
저 에스라인 화장법
(왜 사람들은 안달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