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오랜만에 들여다본 광대나물

김창집 2016. 4. 11. 00:46

 

 

오름에 가다가

이들 광대나물을 만났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잎사귀라는 동그란 무대 위에서

울긋불긋 분장을 하고

손님들을 모으는 어릿광대로 보인다.

 

조금 시간 여유가 있어

눈높이를 맞춰가며

오랜만에 이들과 조우했다.

 

집에 와 컴퓨터에서 보니

별로 마음에 안 내켜도

한 번 내보내기로 한다.

   

 

 

♧ 광대나물 - 김승기

 

 

오늘 이 꽃이 피면

내일은 저 꽃 지겠지

 

외줄 타는 일생

언제 떨어질까

조마조마 조바심 일다가도

 

구경꾼 모여들면

하늘로 치솟을 때마다 피어나는 신바람

붉디붉게 맺히는 꽃송이

걸팡진 놀음판이었지

 

꿈으로 남은 건가

멀어진 아득한 세월

이젠 누가 나물이라고 먹어주겠는가

 

한바탕 신명나게 놀았으면

새로 피는 꽃을 위해

서 있던 자리 물려주어야겠지

 

명예로울 것도 없지만

서러울 것도 없지

 

목숨으로 사는 생명이여

어느 것 하나 모두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지휘하는 그분의

각본에 따라 울고 웃는

광대놀음판의 연극배우인 것을

 

 

 

 

♧ 첫 봄나물 - 고재종

 

얼어붙었던 흙이 풀리는 이월 중순

양지바른 비탈언덕에 눈뜨는 생명 있다

아직도 메마른 잔디 사이로

하얀색 조그만 꽃을 피운 냉이와

다닥다닥 노란색 꽃을 피운 꽃다지와

자주색 동그란 꽃을 층층이 매단 광대나물

저 작은 봄나물들이 첫봄으로 푸르다

저 작은 것들이 지난 가을 싹을 틔워

몇 장의 작은 잎으로 땅에 찰싹 붙어

그 모진 삭풍의 겨울을 살아 넘기고

저렇듯 제일 먼저 봄볕을 끌어모은다

저렇듯 제일 먼저 봄처녀 설레게 한다

냉이 꽃다지 광대나물, 그 크기 워낙 작지만

세상의 하많은 것들이 제 큰 키를 꺾여도

작아서 큰 노여움으로 겨울을 딛고

이 땅의 첫봄을 가져오는 위대함의 뿌리들.

 

 

 

 

♧ 지금은 봄과 연애중 - 오순화

 

그 길 지나다 스쳐버린 너

그 길 지나다 주저앉은 나

옹알옹알 제비꽃과 연애에 빠졌다

 

그 길 지나다 바람향기

그 길 지나다 꽃향기

흔들흔들 광대나물 사랑에 빠졌다

 

바람언덕에 바람꽃 피고

앵초 자주고름 풀어 님인 양 유혹하고

이슬 베고 누운 괭이눈이 연애질한다고…….

 

아지랑이 지천에 내리면

산벚나무 꽃비 되고

팥배나무 꽃눈내리는 그 길가

 

여린 별꽃 같은 사랑

소곤소곤 봄이 자란다

봄날이 가더라

 

 

 

 

♧ 광대 춤 - 최영희

 

거리 장터 광대들이 춤을 춘다

오늘은 너도 광대 나도 광대

얼굴에 그려진 얼룩진 인생살이

허허- 너털웃음, 그 속에 눈물이 흐른다

들~썩 들~썩 슬픈 어깨

얼-쑤!- 모두모두 춤을 춘다

한바탕 돌아간다

저 멈추지 않는 생(生)의 몸짓이여!

우리네 누군가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저렇게

춤을 추다 가셨다지

아- 여름날 칸나보다 붉은 가슴 가슴들

어쩌자 저토록 뜨겁단 말인가?

덩~실 덩~실 춤을 추는 광대의

흘러내리는 바지 사이

달랑달랑 엽전 몇 잎,

우리네 인생이 웃는다 운다, 얼-쑤!

이것이 한바탕 사람 사는 세상이라지.

 

 

 

 

♧ 춤추는 광대 - 공석진

 

광대야

얼광대야

춤 한번 추어보자

 

주어진대로

시키는대로

휘청휘청 등신 몸짓

 

탈에 끈매인

네 운명이

갸륵하다

 

징 울려

사랑 애씌우면

춤사위가 어여쁠까

 

심장깊은 진자리

상흔 흐드러진

어름새를 얼러주면

 

얼씨구 얼쑤

걸판지게

추임새를 넣어주마

 

 

 

 

♧ 말하는 광대(廣大) - 황동규

 

말하는 광대가 밤새 말을 씹었다

말들이 끝나지 않으려고 서로 얽혔다

 

눈 몇 송이

바람에 뜨고

 

수레가 지날 때마다

길들이 끝나지 않으려고 서로 얽혔다

밤새 수레가 지나가고

수레가 갈 때마다

가슴이 패었다

가슴과 가슴이 끝나지 않으려고 서로 얽혔다

가슴의 흙이 짓이겨졌다

 

눈 몇 송이

바람에 뜨고.

 

 

 

 

♧ 어릿광대 - 美香 김은경

 

무대 위에 서면

얼굴의 짙은 분장

가슴 속 상흔은 감춘 채

온갖 재주, 춤을 추며

슬픈 웃음 보여주는 너

 

겉은 웃고 있지만

가슴에 각인된 생채기로

고독한 삶

 

어쩌면, 너의 모습은

아픔 하나쯤 묻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긴장된 외줄타기

휘청대는 삶처럼

 

 

 

 

♧ 당신은 이별과 만남의 줄에 줄 타는 광대 - 손근호

 

뒤돌아보지 마세요

그댄, 뒤에는 이별과

앞에는 만남의 줄에

외로운 줄타기를 한답니다.

 

옆도 보지 마세요

가다보면 넘어지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는 사랑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앞만 보고 가세요

사람을 만나다 보면

밤새워 소리 없는 눈물

눈물 마를 인연도 만나게 되잖아요

 

그제사 줄에서 내려오세요

그대가 만난 사랑에

그 동안 외로이 염원하던

그대의 마음을 넣어세요

 

다시 시작 하세요

이제는 그대가 좋아하는 색깔과 톤

사넬21을 옷깃에 살짝 뿌리시고

그리고 그대의 마음을 칠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