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꽃마리 작은 꽃

김창집 2016. 4. 16. 22:52

 

세상을 크기만으로 재단한다면

꽃마리처럼 작은 걸

누가 거들떠보기나 할까?

 

작아도 날카로운 게 있고

커도 실속 없는 게 있게 마련이다.

 

카메라라고 처음 샀던 똑딱이로는

안을 들여다보며 찍기도 불가능했을 꽃

그러나 요즘은 휴대폰도 좋아져

쉽게 찍을 수 있다.

 

해바라기 같은 건 너무 커서

멀리서라야 잡을 수 있지만

이 꽃마리는 입김을 불어넣어야만

비로소 붙잡을 수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 꽃마리 - 김승기

 

우주를 그리는 데

무에 그리 많은 걸 갖춰야 되나

점 하나

콕 찍으면 되는 거지

 

꽃 한 송이 피우는 일도

크고 화려하게

향내까지 짙어야 하나

한 점 별빛이면 그만이지

 

하늘 한 가운데

점으로 박힌

연청보라여

 

네 눈동자 안으로 들어오는

풍경

 

호수에 빠진 해

물고기가 주워 먹고,

나뭇가지에 걸린 달

벌레가 갉아먹고,

부딪치는 눈빛마다

햇살 튀어 부서지니

 

여기저기서

툭툭

불거지는 꽃눈

별은 또 얼마나 쏟아지겠느냐

 

畵龍點睛(화룡점정)

 

쬐그만 그 눈 속에

온 우주 들었구나

 

 

♧ 꽃마리 - 松元 최원익

 

마음 밭 잡풀 태워 어둔 맘心 불 밝히니

촉촉이 입술 내민 새벽 길 하늘 여인

수줍음 구름 가리어 다소곳이 안기네.

 

웃는 듯 아니 웃는 듯 분간키 어려워라

감춰둔 속뜻이 있는 듯도 뵈는 것이

수줍어 말을 못하는 어린 누이 같구나.

 

귀여운 얼굴 가득 고운 미소 피워내어

오가는 길손 걸음 잡아두는 그대여라

작아도 할 일 다하는 앙증맞은 꽃이여.

   

 

♧ 정생동에서 - 김종익

 

보건소 뒤뜰 작은 식물원

늙은 앵두나무 가지에

눈먼 호롱 깊은 잠을 잔다

 

어린 생강나무 몇 그루

앵두나무 백발을 바라보며

재잘거린다

 

도라지 더덕 삽주싹

참나리 섬초롱 참꽃마리

어우러진 구석에

 

키 작은 족두리풀 하나

하얀 당귀꽃 환한 미소에

깊은 한숨 쉬는데

 

기억의 저편에

호롱불 켜 들고 앵두를 따던

이웃 집 순이가 하얗게 웃고 있다

 

 

♧ 담장 밖 - 신경림

 

번듯한 나무 잘난 꽃들은 다들 정원에 들어가 서고

억센 풀과 자잘한 꽃마리만 깔린 담장 밖 돌밭

구멍가게에서 소주병 들고 와 앉아보니 이곳이

내가 서른에 더 몇해 빠대고 다닌 바로 그곳이다.

허망할 것 없어 서러울 것은 더욱 없어

땀에 젖은 양말 벗어 널고 윗도리 베고 누우니

보이누나 하늘에 허옇게 버려진 빛 바랜 별들이

희미하게 들판에 찍힌 우리들 어지러운 발자국 너머.

가죽나무에 엉기는 새소리 어찌 콧노래로 받으랴

굽은 나무 시든 꽃들만 깔린 담장 밖 돌밭에서

어느새 나도 버려진 별들과 꿈에 섞여 누워 있는데.

   

 

♧ 이름 찾기 - 김미숙(salvia)

    --사랑은 16

 

숨은 이름 하나 갖고 싶다

부를수록 더 뜨거워지는

 

저홀로 핀 들꽃 뜨락

쇠별꽃 꽃다지 참꽃마리 뻐꾹나리

하나씩 이름표를 붙여보다가

문득 빈 내 가슴을 들여다본다

 

우리 살아가는 세상처럼

계절 바뀌면 흔적없이

너의 자취 사라져 버리지만

 

봄이면 새로 피어 한 떨기 꽃이 되는데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제 이름을 다시 찾는데

 

장미보다 붉은 내 사랑은

지금, 이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