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마리 작은 꽃
세상을 크기만으로 재단한다면
꽃마리처럼 작은 걸
누가 거들떠보기나 할까?
작아도 날카로운 게 있고
커도 실속 없는 게 있게 마련이다.
카메라라고 처음 샀던 똑딱이로는
안을 들여다보며 찍기도 불가능했을 꽃
그러나 요즘은 휴대폰도 좋아져
쉽게 찍을 수 있다.
해바라기 같은 건 너무 커서
멀리서라야 잡을 수 있지만
이 꽃마리는 입김을 불어넣어야만
비로소 붙잡을 수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 꽃마리 - 김승기
우주를 그리는 데
무에 그리 많은 걸 갖춰야 되나
점 하나
콕 찍으면 되는 거지
꽃 한 송이 피우는 일도
크고 화려하게
향내까지 짙어야 하나
한 점 별빛이면 그만이지
하늘 한 가운데
점으로 박힌
연청보라여
네 눈동자 안으로 들어오는
풍경
호수에 빠진 해
물고기가 주워 먹고,
나뭇가지에 걸린 달
벌레가 갉아먹고,
부딪치는 눈빛마다
햇살 튀어 부서지니
여기저기서
툭툭
불거지는 꽃눈
별은 또 얼마나 쏟아지겠느냐
畵龍點睛(화룡점정)
쬐그만 그 눈 속에
온 우주 들었구나
♧ 꽃마리 - 松元 최원익
마음 밭 잡풀 태워 어둔 맘心 불 밝히니
촉촉이 입술 내민 새벽 길 하늘 여인
수줍음 구름 가리어 다소곳이 안기네.
웃는 듯 아니 웃는 듯 분간키 어려워라
감춰둔 속뜻이 있는 듯도 뵈는 것이
수줍어 말을 못하는 어린 누이 같구나.
귀여운 얼굴 가득 고운 미소 피워내어
오가는 길손 걸음 잡아두는 그대여라
작아도 할 일 다하는 앙증맞은 꽃이여.
♧ 정생동에서 - 김종익
보건소 뒤뜰 작은 식물원
늙은 앵두나무 가지에
눈먼 호롱 깊은 잠을 잔다
어린 생강나무 몇 그루
앵두나무 백발을 바라보며
재잘거린다
도라지 더덕 삽주싹
참나리 섬초롱 참꽃마리
어우러진 구석에
키 작은 족두리풀 하나
하얀 당귀꽃 환한 미소에
깊은 한숨 쉬는데
기억의 저편에
호롱불 켜 들고 앵두를 따던
이웃 집 순이가 하얗게 웃고 있다
♧ 담장 밖 - 신경림
번듯한 나무 잘난 꽃들은 다들 정원에 들어가 서고
억센 풀과 자잘한 꽃마리만 깔린 담장 밖 돌밭
구멍가게에서 소주병 들고 와 앉아보니 이곳이
내가 서른에 더 몇해 빠대고 다닌 바로 그곳이다.
허망할 것 없어 서러울 것은 더욱 없어
땀에 젖은 양말 벗어 널고 윗도리 베고 누우니
보이누나 하늘에 허옇게 버려진 빛 바랜 별들이
희미하게 들판에 찍힌 우리들 어지러운 발자국 너머.
가죽나무에 엉기는 새소리 어찌 콧노래로 받으랴
굽은 나무 시든 꽃들만 깔린 담장 밖 돌밭에서
어느새 나도 버려진 별들과 꿈에 섞여 누워 있는데.
♧ 이름 찾기 - 김미숙(salvia)
--사랑은 16
숨은 이름 하나 갖고 싶다
부를수록 더 뜨거워지는
저홀로 핀 들꽃 뜨락
쇠별꽃 꽃다지 참꽃마리 뻐꾹나리
하나씩 이름표를 붙여보다가
문득 빈 내 가슴을 들여다본다
우리 살아가는 세상처럼
계절 바뀌면 흔적없이
너의 자취 사라져 버리지만
봄이면 새로 피어 한 떨기 꽃이 되는데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제 이름을 다시 찾는데
장미보다 붉은 내 사랑은
지금, 이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