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산딸나무 꽃에 대하여

김창집 2016. 6. 12. 06:50


지금 제주의 숲은

하얀 나비가 춤을 추는 것 같은

산딸나무 꽃무더기가

바람에 일렁인다.

 

일순간에 피어

초록 숲을 장식하는

산딸나무.

 

둥그렇게 만들어진 꽃차례에

4장의 꽃잎처럼 생긴 흰색 포가 꽃차례

바로 밑에 십자 형태로 달려

꽃차례 전체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보인다.

 

꽃받기가 씨를 감싸는 과육으로 자라는데,

맛이 감미로워 날것으로 먹을 수 있다.

      

  

 

산딸나무 - 김승기

 

하늘마저 타버리는 유월 한낮

북한산을 오른다

 

예전에 만났던 바위말발도리

오늘도 볼 수 있을까

마음 부풀어

홀로 오르는 길

발밑에선 남산제비꽃이 짙은 잎을 띄우고,

오월 하늘 꽃 자랑하던

팥배나무 노린재나무는 꽃을 지운 채

좌우로 늘어서 있고,

쪽동백도 콩알 같은 열매를

총총히 달고서 반기는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바위말발도리는 보이지 않고

덜꿩나무만 휑뎅그렁하게 서 있네

 

못 보면 또 어떠랴

땀 흘리며 찾아온 욕심인걸

병꽃나무도 마음을 비웠는데,

나도 그리움 비우고

그렇지, 그렇게

유유자적하는 발걸음

 

그러는 내 모습을 멀리서

산딸나무가 하얗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산길을 가다가 - 노태웅

 

시골 인심 가득한

초여름 산길을 가다가

산딸나무 꽃을 보았습니다

 

풀색 짙은 골짜기에

순백의 옷 걸치고

기다림의 시간

하늘을 향해 피어 있는

꽃을 보았습니다

 

그리움 앉고

꽃그늘에

우르르 모여드는 사람

그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의 숨겨진 마음

활짝 열어놓고

하얀 꽃잎 위에 얹혀

더운 여름 속을

달려가고 있었나 봅니다.

        

 

말줄임표 그 뒤에는 - 목필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거울 앞에 서 보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달려가는 일상 속에

고달픔이 보이고

쳐진 볼 살 속으로

버리지 못한 욕심이 뭉쳐있고

 

그렇게 아름다울 것 없이

살아왔어도

보이지 않은 저 편을 지우고

신기루처럼 다가오는

다시 저 편의 길

 

돌아보고 다시 지우며

뒷걸음 쳐보는 젊은 날

 

산딸나무에 내려앉았던

사랑이란 무수한 나비들

다 날아가 버린 이즈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요즘 내가 궁금한 것들 - 최원정

 

가평에 있는

곤줄박이 어미새가

하필이면 렌지후드 틈난 곳에

둥지를 틀어놓고, 새끼들 걱정에

재재재재 우는 것

 

자주달개비가 아침이면

보랏빛 얼굴로 피어나

하루종일 방글거리며 웃다가

저녁만 되면 다시 초록 봉오리로

자취를 감추고마는 속사정

 

엊그제, 그 뻐국이는

하루종일 울고도 모자라

달빛 아래에서

밤새도록 울어야 했던 사연

 

산딸나무 꽃이

하늘을 향해 피는

어쩔 수 없는 이유

그리고 또 하나

그 사람 안부

        

 

밤에 우는 것들에 대하여 - 고정국

 

1. 황소개구리

 

꽃들이 잠든 묘역에

타다 만 향이 놓이고...

 

성대 다 도려낸

애완동물도 잠이 든 지금

 

여름내 물고문 당하던

사내처럼

저렇게

운다.

 

 

2. 밤뻐꾸기

 

행자승 삭발에 든 듯

온 산이 숨을 죽일 때

 

낭설처럼 피었다 지는

산딸나무 창백한 꽃잎

 

순전히 딴 세상 어투의

法名 하나가

내려진다.

 

 

3. 피리새

 

비오면 하루 벌이로

한 끼니를 때운다는

 

늙은 안마사가

젖은 지폐를 헤아릴 때

 

누군가 지붕에 올라

깨진 피리를 불고 있었다.

 

 

4. 청개구리

 

혹시 그 개구리마을

개구리소년이 돌아왔는지

 

백주에 생트집 같은

개망초 개화가 멎고

 

달빛도 나무도 꽃잎도

청개구리 소리로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