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나무 꽃에 대하여
지금 제주의 숲은
하얀 나비가 춤을 추는 것 같은
산딸나무 꽃무더기가
바람에 일렁인다.
일순간에 피어
초록 숲을 장식하는
산딸나무.
둥그렇게 만들어진 꽃차례에
4장의 꽃잎처럼 생긴 흰색 포가 꽃차례
바로 밑에 십자 형태로 달려
꽃차례 전체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보인다.
꽃받기가 씨를 감싸는 과육으로 자라는데,
맛이 감미로워 날것으로 먹을 수 있다.
♧ 산딸나무 - 김승기
하늘마저 타버리는 유월 한낮
북한산을 오른다
예전에 만났던 바위말발도리
오늘도 볼 수 있을까
마음 부풀어
홀로 오르는 길
발밑에선 남산제비꽃이 짙은 잎을 띄우고,
오월 하늘 꽃 자랑하던
팥배나무 노린재나무는 꽃을 지운 채
좌우로 늘어서 있고,
쪽동백도 콩알 같은 열매를
총총히 달고서 반기는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바위말발도리는 보이지 않고
덜꿩나무만 휑뎅그렁하게 서 있네
못 보면 또 어떠랴
땀 흘리며 찾아온 욕심인걸
병꽃나무도 마음을 비웠는데,
나도 그리움 비우고
그렇지, 그렇게
유유자적하는 발걸음
그러는 내 모습을 멀리서
산딸나무가 하얗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 산길을 가다가 - 노태웅
시골 인심 가득한
초여름 산길을 가다가
산딸나무 꽃을 보았습니다
풀색 짙은 골짜기에
순백의 옷 걸치고
기다림의 시간
하늘을 향해 피어 있는
꽃을 보았습니다
그리움 앉고
꽃그늘에
우르르 모여드는 사람
그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의 숨겨진 마음
활짝 열어놓고
하얀 꽃잎 위에 얹혀
더운 여름 속을
달려가고 있었나 봅니다.
♧ 말줄임표 그 뒤에는 - 목필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거울 앞에 서 보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달려가는 일상 속에
고달픔이 보이고
쳐진 볼 살 속으로
버리지 못한 욕심이 뭉쳐있고
그렇게 아름다울 것 없이
살아왔어도
보이지 않은 저 편을 지우고
신기루처럼 다가오는
다시 저 편의 길
돌아보고 다시 지우며
뒷걸음 쳐보는 젊은 날
산딸나무에 내려앉았던
사랑이란 무수한 나비들
다 날아가 버린 이즈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 요즘 내가 궁금한 것들 - 최원정
가평에 있는
곤줄박이 어미새가
하필이면 렌지후드 틈난 곳에
둥지를 틀어놓고, 새끼들 걱정에
재재재재 우는 것
자주달개비가 아침이면
보랏빛 얼굴로 피어나
하루종일 방글거리며 웃다가
저녁만 되면 다시 초록 봉오리로
자취를 감추고마는 속사정
엊그제, 그 뻐국이는
하루종일 울고도 모자라
달빛 아래에서
밤새도록 울어야 했던 사연
산딸나무 꽃이
하늘을 향해 피는
어쩔 수 없는 이유
그리고 또 하나
그 사람 안부
♧ 밤에 우는 것들에 대하여 - 고정국
1. 황소개구리
꽃들이 잠든 묘역에
타다 만 향이 놓이고...
성대 다 도려낸
애완동물도 잠이 든 지금
여름내 물고문 당하던
사내처럼
저렇게
운다.
2. 밤뻐꾸기
행자승 삭발에 든 듯
온 산이 숨을 죽일 때
낭설처럼 피었다 지는
산딸나무 창백한 꽃잎
순전히 딴 세상 어투의
法名 하나가
내려진다.
3. 피리새
비오면 하루 벌이로
한 끼니를 때운다는
늙은 안마사가
젖은 지폐를 헤아릴 때
누군가 지붕에 올라
깨진 피리를 불고 있었다.
4. 청개구리
혹시 그 개구리마을
개구리소년이 돌아왔는지
백주에 생트집 같은
개망초 개화가 멎고
달빛도 나무도 꽃잎도
청개구리 소리로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