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洪海里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에서 2

김창집 2016. 8. 1. 07:13


풍경風磬

 

허공은 고요의 집이 아니다.

 

한겨울 지나며 울음이 더욱 견고해진 붕어

매화 가지에서 처마 밑으로 이사했다

여전히 눈을 뜨고 자고

뜬눈으로 꿈도 지으니 얼마나 버거우랴.

 

밤새 몸에 고인 고요를 이겨

아침 공양을 올리려 하니

바람아 불어라, 바람 불어라

나는 온몸으로 소리꽃이 되리라.”

 

종일 울어도 소리로 가는 길은

금빛 은빛 황홀한 꿈길이어서

귀에 길을 내는 이마다

고요한 마음 하나씩 놓아 주고 있다.

 

나를 떠나간 떨거지들 지금

길가에 앉아 떨고 있는 거지가 되었다

살아 있어 나는 운다

푸르고 깊은 하늘바다에서 운다.

 

 

 

감자

 

감자는 온몸이 눈이다

그래서 감자는 둥글둥글 세상을 본다

어둠 속에서도

온몸의 독을 모아 눈을 틔운다

그래서 새싹은 아름답다, 귀엽다

독은 힘이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힘이다

독을 함부로 쓰지 마라

덩이줄기에 나선형으로 나 있는 눈

달걀처럼 숨을 쉰다

눈에서 어린싹이 돋아난다

세상으로 나가

또 하나의 세상을 열기 위해 눈을 뜨는 것이다

그러나

감자는 눈의 뒤치다꺼리에 등이 휜다

그래도 눈이 수군대는 소리 들린다

비 오는 날 감자를 강판에 갈아

부추 호박 매운 고추 종종 썰어넣고

감자전을 부치면 땅속에서 달이 떠오른다

달에도 수없이 많은 눈이 있다.

   

 

 

동백

 

어느 해 여름

난을 찾아 남쪽 섬에 갔을 때

이른 아침 싸목싸목 걷히는 안개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산밑에 이르렀을 때

동백나무에 개 한 마리 매달려 있었다

장정들이 작대기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개 패듯, 개 패듯이란 말!

그렇게 맞아 죽은 개가

가지 끝에 잉걸불 피우나 보다

개가 내지르는 단말마斷末魔가 뜨거워

나무는 비명, 비명으로 뿜어낸

눈물 낭자한 적막이 땅을 덮고 있었다

그래서 동백은 그늘까지도 붉게 젖는다

그날이 복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동백이 피는 계절

남녘 하늘이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하늘 밥상

 

한밤이면 별이 가득 차려지고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 꿈을 떠 먹는다

하늘 열매를, 반짝반짝, 따 먹으며

아이들은 잠자는 사이 저도 모르게 자라고,

 

나이 들면 허기져도 그냥 사는 걸까

꿈이 없는 사람은 빈집

추억이 없는 이는 초라한 밥상인데,

 

시인은 생속에서 꿈을

꿈 속에서 별을, 별에서 꽃을 피우는 사람

사랑은 영혼의 꽃

꿈이 없으면 꽃은 피지 않아.

 

아이들은 별에 사는

꿈을 먹고 꽃을 피우는 시인,

하늘은 그들의 밥상.

     

 

낙타의 꿈

 

낙타는 자신의 짐을 지지 않는다.

 

늘 주인의 짐만 지고

주인의 시간 속에서 주인의 길을 갈 뿐.

 

꿈만 꾸어서는

낙타밖에 되지 못한다.

 

시간의 하녀와 함께

길의 하인인 낙타는 오늘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막막漠漠한 사막을 막막寞寞히 가고 있다.

     

 

문뜩, 일흔셋


일흔셋이란 나이는

이른 세 시

깜깜 새벽

맨발의 허공으로

홀로 낙타초를 씹으며

한 모금 선혈로

영혼을 잣는 시간

문뜩

헤아려 보는

일흔셋이란 여정의

새벽 세 시.


                                                           *사진 : 토요일(7/30) 서귀포 돈내코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