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에 일렁이는 무늬들
지난 금요일 오름 9기 초청으로 피서차 찾은 학림천,
영천악과 칡오름 중간쯤에 자리한 조그만 폭포.
시원한 폭포와 물소리를 휴대폰 동영상으로 담다가
희한한 무늬가 일렁이는 것을 발견했다.
피카소의 작품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상상할 수도 없는 개성적인 무늬,
30여m 앞까지 밀려온 폭포수의 조그만 일렁임이
이런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 개울가에서 - 도종환
그때는 가진 것도 드릴 것도
아무것도 없어서
마음이 내 전부라 여겼습니다
당신도 마음을 어떻게 보여줄 수 없어서
바람이 풀잎을 일제히 뒤집으며 지나가듯
나를 흔들며 지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물 위에 비친 그대 얼굴
개울물이 맑게 맑게 건드리며 내려가듯
내 마음이 당신을 만지며 가는 줄 믿었습니다
마음은 물처럼 흘러가 버리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바람처럼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내 마음도 내 몸도 내가 모르면서
없는 것에 내 전부를 맡겼습니다
바람 속에다 제일 귀한 걸 걸었습니다
♧ 개울을 건너는데 - 나태주
개울을 건너는데 달이 따라 왔다.
징검다리 하나에 달이 하나,
징검다리 둘에 달이 또 하나,
근심스런 네 얼굴이 억지론 듯 웃고 있었다.
♧ 개울물 - 鞍山 백원기
개울물 건너왔지만
마음은 저편에 두고 왔네
개울물 건너기 전에
진초록으로 물들인
내 그림자 하나 거기 남겨뒀네
걷어내지 못하고 널어놓은
땡볕에 빛바랜 미련 한 자락
내일을 위해
오늘 나는 잊어야하는데
갔는지도 모르게 살아온
개울물에 발만 담근다
열두 개울 건너면서
첨벙거리는 소리와
꿈속 투정의 볼멘 역사
자꾸만 늘어지고 힘겨워
옛 모습 남아있는
멀어져간 개울물만
그리워 그리워집니다
♧ 개울물에 앉아 - 곽정숙
푸른 물인가 하였더니
오늘은 개울가에서
오색 물이 되어 흐르고 있네
쌓인 낙엽 삭히느라
쉬지 않고 흐르고 가네
바위에 앉은 까마귀
가는 세월만 쪼아 먹고
지나던 바람
무심한 말 한마디 던지고 가네
인연도
억만겁의 인연도
놓고 보면
한 손에 잡지도 못할 바람 같은 것.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버릴 일이 걱정이라며
흐르고 가네.
♧ 개여울 - 채영선
해바라기 잎만한 종이 한 장
글씨보다 빈자리 눈에 가득한
당신의 시를, 나는
슬그머니 읽고 지나가지 못합니다
징검다리 앞에서 머뭇거리듯
제목을 보고, 또 새겨보고 있습니다
발을 떼어도 징검돌은 멀기만 합니다
돌 밑 여울을 들여다보다
발끝을 디밀어 봅니다
발목을 적셔야 건너갈 다음 연 앞에서
난 기우뚱 흔들리고 맙니다
얕아보여도 넓어 개울은 소리쳐 흐르고
물살은 돌고 돌아 내려갑니다
치마폭을 휩싸 안고 내려다보니
내가 물인지 물이 나인지
건너고 싶은 마음은 아예 사라지고
주저앉아 온종일 물소리만 듣고 싶습니다
며칠 물가를 맴도는 사이
무릎이 잠기도록 물이 늘었습니다
물안개가 하얀 비단이라면
달빛에 젖어 첨벙이는 맨발을 감추어줄까요
♧ 개울 - 김시탁
개울을 자세히 보면
참 부지런하다
머리로 바위를 쳐 물꼬를 트고
분주하게 손을 움직여
풀을 제치고 길을 연다
목마른 이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물총새의 부리도 깨끗이 닦아준다
햇살로 반죽을 빚어
떡갈나무 잎으로 쌈을 싸먹으면서도
피라미새끼들을 톡톡 던졌다 되받는
장난질을 한다
물푸레나무 가지에 종아리를 얻어맞아
시퍼렇게 멍이 들면서도
촬촬촬 부르던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
♧ 여름, 그리움 - 임영준
뒷동산에 숨어 있는 하늬바람이
개여울을 엿보고 있었어
말벌에 쫓기는 꾸러기들이
깔깔거리며 텀벙거렸지
새참 이고 나르는 아낙들도
청매미 노래하는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고 입을 모았어
땀방울 스며드는 논두렁에선
잠자리도 함께 익어갔지
♧ 개울물과 오솔길 - 권경업
개울물과 오솔길은 흐릅니다. 방향만 서로 다를 뿐,개울물은 흘러가며 불어나고 오솔길은 흘러가며 야윕니다. 개울물은 하나를 이룬 무리가 되고 오솔길은 여럿이 만나 홀로가 됩니다. 개울물은 흘러가며 깊어지고 오솔길은 흘러가며 높아갑니다. 개울물은 흘러서 바다에 다다르고 오솔길은 흘러서 하늘에 이릅니다. 흘러가며 맑아지는, 개울물과 오솔길은 같은 모습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가을에, 내 지나갈 모든 길들은 개울물이 되고 오솔길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은 흘러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흘러가서 맑아지고 싶어서입니다. 맑아져서 하늘과 바다에 다다르고 싶어서입니다. 수줍어 몸을 감춘 자작숲 오솔길이 드러나고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조개골은 야위어갑니다. 간간이 품고 와서 돌 틈마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붉고 푸른 연서들이 누렇게 타들어가는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밤마다 소리 낮춰 돌돌거리는 걸 보니 취밭목의 가을밤이 깊어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