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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향' 제6호의 시와 수련

김창집 2016. 8. 9. 00:02



동백꽃 - 고응삼

 

, 바람 깊을수록

벙그러진 순정들이

 

바닷가 아가씨가

입춘 맞아 깨던 꿈을

 

질그릇 붉게 물들이고

꽃샘 타는 눈 속의 꽃,

 

살며시 손을 녹여

섬마을 수를 놓고

 

대 이은 삶의 아픔

고목마다 새겼다가

 

어머니 밝히던 등잔불로

봄을 여는 섬 동백꽃

    

 

 

청명 날 - 김대봉

    -이장(移葬)

 

2백 년 잠든 할머니 묘에 할미꽃이 피었다

꼬부랑 나이 몇 번 지나도 아직은 젊었다며

혼자선 적적하다고 지아비 곁으로 모시랬다

    

 

 

대면(對面) - 김용길

 

눈빛 맑은 사람을 만나면

웃음 먼저 나와요

 

얼굴 반쪽 입가에 놓고

사랑니 빼물고

속마음 붉은 까닭을

어찌 말로 다스려요

 

마음 먼저 웃고

가슴 씻어내리라

그대 등 돌려 눕는다한들

        

 

겨울이 흘린 발자국 - 김정희

 

아침 공양 풍경이 흔들리는 시간

선림사 대웅전 앞 연못에

날개 파닥이는 바람 왔다 갔는지

빗질된 도량이 경건한데

백팔 배 마치고 나온 잿빛 두루미 한 마리

연못에 마지막 공양처럼 누웠다

찬 겨울이 흘린 발자국처럼

혼자 떨어져 나온 날개는

길 재촉하지 못한 채 얼어붙어

연못을 덮고

밤 동안 날개 아래 숨 쉬는 것들의

따뜻한 겨울을 녹여주고는

빈 몸으로 하늘을 올랐다

하늘에서 날개를 저을 때는

가벼운 바람으로 날았지

땅에 내려놓은 몸은

거대한 목탁처럼 도량을 흔들고

살아있는 것들은 합장으로

숨을 가둔다

        

 

 

그 세상은 - 윤봉택

 

저 언덕 아래

하늘문교회가 있고

언덕배기에 성당이

산마루에는 절 하나 있으니

참 좋다

 

문 하나만 열어 길을 나서면

천당 가는 길

하늘나라 가는 길

극락 가는 길

걱정 필요 없으니

참 편한 세상인데,

 

문을 닫고

대문을 열지 않으니

그 세상이 하 궁금하다.

    

 

 

광명사에서 - 이창선

 

광명사 범종 앞에 서 있는 일붕선사

 

반기듯 나를 보며 건네는 침묵의 말씀

 

모든 것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일침 하네.

        

 

이른 봄 햇살 - 정희원

 

아직은 시골티 못 벗은 색시입니다

낯선 도시를 벗어나

아무도 눈치 챌 사이도 없이

들창틈새로 굴리는

수줍은 눈동자

마루를 건너 부엌으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가

구수한 된장국향기 코끝을 적시고

졸고 있는 친정어머니 앙가슴에

그리움 두고 갑니다.

        

 

相思花 1 - 현주하

 

우리 할망 시대에

바다는 멍들멍 푸르고

기다림에 지친 상사화

만선되어 돌아온다던

하르방 소리

할망 귀에 쟁쟁 걸어 놓고

한평생 눈물 콧물 한 새가리로

겨울이면 벌러진 화롯불

여덟새 무명짜는 할망 눈썹 새로

동지 스무날 달은 차고 희어서

이어도 하라 떠나던 낭군 얼굴

설다 설다 하도 설어

하랑 무덤엔 올해도

상사화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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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향(慧香)'은 혜향문학회(제주불교문학인의 모임)에서 발간하는 문학지이며, 사진은

동백동산 옆 연못에서 굵은 빗방울이 듣기 시작할 때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