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말복인데도 연일 열대야가

김창집 2016. 8. 16. 08:28



작년엔 그러지 않았는데,

올해는

하루도 빠짐없이 열대야가 계속된다.

 

작년엔 잊힐 만하면 태풍이 올라왔고,

비바람에 식혀진 대지가

뜨거울 겨를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피부로 느끼는 더위가 자꾸 의식되며

더욱 부담이 되어간다.

 

7호 태풍 찬투가 몰려온다고 솔깃했으나

48시간 이내에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돼

일본열도 동쪽으로 물러난다니

그 또한 실망이다.

 

하여간 오늘이 말복이고 보면

정말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가 일주일 남았다.

 

절기가 무색해지는 때이고 보면,

지난 일요일 찍은 숲 사진 정도 올려가지고

위안이 될는지?

    

 

 

말복 - 권오범

 

끈적이게 추근대던 열대야 따라 가출한

입맛 찾아 헤매는 저잣거리

북새통인 삼계탕집 지나

설렁탕, 돼지국밥, 보신탕집까지 뒤졌건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맥 빠지던 그 순간

무심코 눈이 머문 한우갈빗집 옆

보리밥집에 들앉아 날 부르는 저 못 말릴 변덕

헐수할수없어 문 열고 들어서자

고소하게 반기는 들기름 냄새

할머니 쥔장이

대중없게 분질러 넣은 열무부터

평소 친근했던 푸성귀 싸잡아

고추장 등쌀에 녹초가 되도록 썩썩 부추기다 보니

어느새 제집 찾아 들어와 추억에 젖어 고분고분

날 닮아 촌티 못 벗은 불쌍한 것

    

 

 

여름 나무 - 안재동

 

여름 불더위,

온몸 무기력해질 거라는, 어딜 가든

더는 피할 곳 없을 거라는 것

겨울 나목 앞에선

잘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

 

살벌한 열기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

우연히 알게 되는,

가전 매장마다 인기선풍기 품절.

 

철철 흐르는 비지땀,

짜증 난 사람들 이리저리 몸부림칠 때

푸른 잎 성성하고 기운 드높은

여름 나무들 현란한 가무歌舞.

 

초복 중복 말복

두꺼운 옷 몇 벌씩이나 껴입은 여름,

겨울 나목 같은 사람들.

        

 

 

말복 - 박승미

 

내 이럴 줄 알았지

밑도 끝도 없이 들이닥쳐서는

가진 것 다 내놓아라 하니

내 맘만 믿고 단속하지 않은

내 탓이나 하지

어쩌고저쩌고 아쉬운 소리 해봤자

편 들어줄 사람 없으니

세상 참 잘못 살았다 싶어

한여름 뜨겁게 달구었던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려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정 떼자는 데야

그러려니 하면서도

그러고 나면

마음 붙일 곳 없어

풀죽은 삼베 적삼 앞섶만

끌어내리고 있었다

        

 


8월은 - 성백군


한해의 갱년기다

건드리면 폭발할 것만 같은 감정을

삭이는 성숙한 달이다

 

말복, 입추 지나 처서 접어들면

생각 없이 마구 극성스럽던 더위도

치솟던 분수대의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뒤돌아 보며 주저앉고, 이제는

성숙을 위해 성장을 멈추어야 하는 때를 아는 것처럼

뻣뻣하던 벼 이삭도 고개를 숙인다

 

꽃 필 때가 있으면 꽃 질 때도 있듯이

오르막 다음은 내리막

밀물 다음은 썰물

이들이 서로 만나 정점을 이루는 곳, 8월은

불타는 땅, 지루한 비, 거친 바람, 다독이며 고개를 숙이고

가뭄 지역, 수해 매몰지구에 의해

시장에 나온 상처 입은 과일들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생의 반환점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고

집에서 기르는 누렁이 한 마리

담 그늘 깔고 엎드려 입 크게 벌려 혀 길게 늘어뜨리고

절은 땀 뱉어내느라 헉헉거린다.

 

 

잠자리를 찾다가 - 목필균


여름이 기울어간다

 

말복이 오고 입추에 들어서고

하늘이 퍼렇게 날이 서고

잠자리들이 낮은 비행을 하고

텃밭에 붉은 고추 달랑거리고

 

산들바람 들락거리다가

잠자리가 잠자리를 찾다가

낮게낮게 날며 잠자리를 찾다가

선잠에 날개도 접지 못하다가

 

여름을 떠나보낸다

    

 

 

바람에 실어 - 박남준


어찌 지내시는가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하늘의

, 지는 노을 저편으로 수줍게 얼굴 내어미는 아미

고운 달, 그곳에도 무사한지. 올 장마가 길어 지루할

거라느니 유별나게 무더울 거라느니, 그런가보다,

그런가보다.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었지 초복인가 했더니 어느덧

말복이 찾아들고 입추라니, 가을의 문턱에 들었다니 아,

그런가보다, 그런가보다. 이곳 모악의 밤도 이제

서늘한 입김 피워 올리니 따듯한 불기가 간절하구려.

 

보고 싶구려 내 날마다의 밤 그리움으로 지핀 등

따듯한 온돌의 기운 바람에 실어 보내노니 어디 한번

받아보시려나 서리서리 펼쳐보며 이 몸 생각, 한 점 해

주실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