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도 함께해(海)길
이번 나들이에 처음으로 가본
강진만 깊숙한 곳,
가우도(駕牛島)라는 조그만 섬은
지금 양쪽에 출렁다리를 놓아
쉽게 건너 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작고 아담한 섬
섬 가운데 높은 동산엔
청자 모양의 탑을 세워
공중하강체험시설을 만들고,
국내 최장 ‘1000m 짚 트랙’을 3개를 설치했다.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산책로도 만들어 이른바 ‘함께해(海)길’이라 이름한 후,
한적한 곳에는 강진 출신 시인, 영랑 김윤식의 사색에 잠긴 동상도 앉히고
낚시터도 만들었다.
길을 걷다 지루하면
횟집에 들어가
전복과 소라, 아니면 가오리 회를 안주로
목을 축이며, 한두 시간 보내고 오면 좋을 곳이었다.
♧ 강진만 - 박후식
너 앞에 앉으면 바람이 분다
가슴 깊은 데까지 스며와 샘을 만든다
소나무 가지가 길게 내려와서
더 아름다운 곳
돛배 하나 억새꽃 꺾어간다
다산도
함께 간다
♧ 강진에서 살겠네 - 안수동
내 다시 태어 날 수 있다면
하루만
백일에서 하루 모자란 날을 살더라도
강진
요니 모습 그 바다에서 태어나겠네
꿈속의 청자 항아리가
잠깐만
속눈썹 한번 깜빡이는 순간이더라도
온전히 눈에 넣을 수만 있다면
강진
탐진만 갯벌에 바지락이나 캐며 살겠네
청정물빛 은비늘에 천불산 만덕산
억불산 그림자 잠방대는 강진만이
내륙 깊숙이 파고들었듯이
가슴 가득 따뜻한 바다를 품은
강진사람들이 사는 곳
백련사 동백숲 꽃색이 더욱 붉어지고
영랑생가에 모란꽃 소식 들리면
남으로 남으로 가서
강진
다산초당 약천에 차 끓이며 살겠네.
♧ 강진포구 연사 - 문병란
황포 돛대 옛 사연은
주막집 주모의 낮잠
코고는 소리에 묻히는 한낮
탐진강은 지금도
장흥골 굽이돌아
강진만 나루에 와서
선남선녀의 인연을 맺어준다
기름진 장어구이 몸보신하고
끼리끼리 어울리는
암내 풍기는 웃음소리도
밝은 5월 햇살처럼 아름다운 곳
강진은 장모집 안뜰처럼 아늑한데
연인들의 도둑 키스 흥겨울 때도
찬모는 설거지에 여념이 없고
뜰 위의 암탉들은
새 알을 품느라 꼬꼬고 수탉을 부르네
이중 삼중 경사가 겹친 한낮
무장무장 아름다운 봄
시름 풀리는 탐진강은
연인들의 꿈을 안고 곤곤히 흐른다
♧ 영랑생가에서 - 김종구
말갈기 휘날리며 달가닥대는 바람소리
뒤란의 대숲이 멀리 튕겨 보내면
말간 하늘에 병아리 눈빛 햇살들
다정히도 손잡고 걸으며
소곤소곤 어린 봄 이야기하고 있다
반짝이는 잎 사이 봉긋한 동백꽃
이제 막 말을 배우느라
빨간 입술을 달싹 달싹 거리고
가시나무 위 알금알금 노란 유자들
남도의 향기를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있다
영랑 시인의 시를 들으며
한 바퀴 돌아보는 사이
어느새 내 몸에도
오월의 모란이 피어날 것만 같다
♧ 강물 - 김영랑
잠자리가 설워서 일어났소
꿈이 고웁지 못해 눈을 떳소
베개에 차단히 눈물은 젖었는디
흐르다 못해 한 방울 애끈히 고이였소
꿈에 본 강물이라 몹시 보고 싶었소
무럭무럭 김오르며 내리는 강물
언덕을 혼자서 거니노라니
물오리 갈매기도 끼륵끼륵
강물은 철철 흘러가면서
아심찮이 그 꿈도 떠싣고 갔소
꿈이 아닌 생시 가진 설움도
자꾸 강물은 떠싣고 갔소
♧ 강진 가는 날 - 안갑선
길은 멀고 마음은 가깝구나
지도를 펴고 보면
한 걸음도 채 되지 않은 거리를
무거운 짐 짊어진 것 마냥
한 해가 저물어도
아직 강진 가는 날은 더디기만 하네
마음은 벌써 가마에 장작불 사르며
청자를 굽고 있는데
기다림이 길수록
심장엔 다듬이 두드리는 소리
차에 오르기도 전에
온몸이 누더기가 돼 있을까 싶다
♧ 바다의 문 57 - 문효치
차잎 뒤에 써 놓은
편지를 읽었다.
강진 뒤안
다산의 유배지 발아래
스산한 바람 맞으며
물묻은 별을 줍고 있다 했다.
청자 사금파리에 붙어
꿈 속 깊이 묻혀 있다가
때때로 축축한 흙을 들추고 튀어나오는
맑은 금속성 찰강거리는 소리 들으며
호젓하게 산다 했다.
탐진만의 물을 술이라 했다.
저녁놀 풀어 마시며 취한다 했다.
앞문 걸어 잠그고
바다쪽 뒷문만 열고 산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