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을 보면서
8월도 다 가는 주말 아침에 비가 내린다.
지리한 폭염과 열대야를 식히는 고마운 비다.
그러나 조짐이 좋지 않다.
찔끔 내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오는 김에 더위와 가뭄으로 말라 비뚤어진
이런 식물들의 뿌리를 흥건히 적셔주었으면 좋겠다.
♧ 강아지풀 - 고정국
바람이 분량만큼
허리 굽혀 살아온 그대
묻지도 않은 말에
고분고분 답하는 그대
아무 일, 아무 일 없다며
꼭꼭 눈물 삼키는 그대.
♧ 강아지풀 - 김승기
정말 흔들렸을까
가냘픈 모가지에 수백 사랑의 씨를 달고
힘겨워 잠시 비틀리며
툭 건드린 것뿐인데
하늘이
땅이
얼마나 흔들렸을까
가슴 뿌리까지 떨려오네
여름 내내 하늘에서 꿈꾸는
별빛이 내려와
이슬이 내려와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가꾸어 온 사랑
단단하게 맺혀진 열매를
무슨 바람 들었다고
한 순간 비틀거림으로 흔들릴 수 있을까
나뭇잎 떨구려고 밤새 수선 피우던
빗소리에 멍든 산천이
이 고요한 가을 아침
떠오르는 햇덩이를
착시 현상으로 눈 깜박했을 뿐
쿵, 가슴에 내려앉는 낙엽 하나에도
놀라서 머리 치켜올리는 강아지풀을
그렇게 몰아세우지 말게나
♧ 강아지풀 - 김명석
길 잃은 철새도 흔하게 날아오른다던
텃새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콘크리트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리면서 세상은
처음부터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
夏至 작열하는 뙤약볕에 입술은 말라들어갔지만
뿌리조차 비틀어져 허리를 굽치고 지탱하고 있지만
더 큰 고통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리면서 가는
낮선 단어와 진지한 웃음이었습니다.
현기증과 미열에 비몽사몽 어둠이 오면
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수많은 별과
아늑한 미소로서 내려다보고 있는 달
그리고 실바람 질감으로 별과 달 아래 날아가고 있는
구름, 구름을 보다가
구름 타고 서녘 끝으로 달렸습니다.
♧ 여름 소나기 - 박인걸
지원군이 왔다.
더위와의 전쟁을 도우려
군단 급 공군들이
하늘 높이 진을 쳤다.
성난 뇌성이 던지는
빗발치는 화살에 쫓겨
맹렬한 폭염이 도망치니
가슴이 통쾌하다.
가슴이 확 트인다.
마음 가득한 불순물들을
자동세차장 물줄기처럼
흡족하게 씻어 내린다.
창문을 열고
촉촉한 빗소리에 젖는다.
행복 호르몬 도파민이
가슴 가득 고인다.
심장에 엉켜있는
지저분한 추억들과
언저리를 맴도는 불안들이
빗물에 씻겨 내린다.
맥박은 제자리에 왔고
호흡은 일정하다.
된 소나기 한 번에
세상이 온통 행복하다.